비전 선언

초등교육과 고두리

미래 교육 2009. 5. 29. 16:14

 

 

나의 비전 선언


 나에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자신감은 아직은 가져보지 못한 아득히도 멀게만 느껴지는 어려운 것 이다. 내게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교대에 진학하면서 부터 끊임없이 탐구해야하는 인생의 가장 큰 방향이자 나아갈 길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사람이다. 교사는 사람의 삶,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직업이다. 그래서 나는 교사가 되려고 한다.


 내가 교대에 진학하면서부터, 나의 진로는 초등교사로 정해졌다. 고3때 수능을 봐서 점수를 맞춰서 교대를 온것이 아니라 다른 종합 대학교를 1년 6개월을 다닌 후, 몇 달 동안 공부를 해서 지금 재학하고 있는 이곳, 전주교대! 단지 부모님의 바람이라던가, 남들이 흔히 말하는 교사라는 직업의 안정성 때문에 전공을 포기하고 교대에 진학한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교대를 진학하지 않은것은 성적이 되지 못하여 원서조차 쓰지 못하였다. 재수를 하고싶었지만, 집안 형편상 재수를 하기는 어려운상황이였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선생님에 대한 꿈은 버리지 못했고 대학을 다니면서 차곡 차곡 벌어두었던 돈으로 2학년 2학기를 휴학하고 수능 공부를 시작하여 이곳 전주교육대학교에 들어왔다.  


 선생님을 하고자하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인 한선화 선생님의 영향이 아주 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초등학교 재학 당시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몇몇 선생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면 잊혀지지 않는 표정이 생각난다. 1번부터 5번까지 차례대로 소리 내어 교과서를 읽으라고 하고는 자신의 업무를 보던 3학년 때 담임 선생님. 그것도 못하냐며 면박을 주시던 5학년때 선생님,그 시절의 내가 생각하기에 선생님은 ‘귀찮고 하찮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전혀 즐겁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불행한 인생의 표상처럼 각인이 되었다. 하지만 중학교에서 나의 생각은 뒤바뀌었다. 중학교 3학년때 나는 학급 반장을 했고, 다른 학생들 보다는 선생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기 초 가 지나고 학급생활에 적응 하고 있을 즈음, 갑작스런 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당시 나의 충격은 말이 아니였다. 하지마 나는 밝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에게 힘이 되주신 분은 담임선생님밖에 안계셨다. 내가 상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을때 선생님께선 나를 달래주시기는 커녕 그동안 밀린 필기를 베끼고, 학급 일을 시키셨다. 또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게 담임선생님의 적극 추천으로 충청남도 발명품 대회 까지 나가게 되었다. 아무 정신이 없었다. 슬퍼할 틈도, 생각할 틈도, 선생님은 나를 더욱더 채찍질하셨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줄 몰랐다. 선생님의 도움이였는지 하늘에 계신 어머니의 도움이였는지 도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았을땐 선생님이 주신 조그만 편지가 생각난다.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말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한다. -토마스 칼라일-』 딸 두리야, 사랑한다, 네 꿈을 펼쳐라!” 어쩌면 그때의 코멘트가 나를 여지껏 이끌어준 믿음이 아니였나 싶다.  한선화 선생님에게 내가 얻은 참다운 교사상은 자신의 가르치는 학생이 단지 학업에 어려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생활면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을 때 그것을 이겨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격려를 해주는것이다. 또한  자신의 학생이 할 수 있다고 믿어 주는것 이다! 누구나 한번은 겪을 경험이지만 어린 나이에는 너무 감당하기 힘든 것 이였고 조금이라도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것, 그리고 그 사람이 매일 보는 담임 선생님 이라는것, 그것이 나에게 선생님이란 꿈을 가지게 해준 시발점이다.  아마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의지할곳을 찾지 못하고 세상에 대해 온통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를 꽉 채웠을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나는 이렇게 내가 되고자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을 수 있었을까? 단언 하건대, 절대 그럴수 없었을 것이다. 한선화 선생님은 내게 선생님이란 꿈을 주고 참다운 교사상을 그릴수 있게 해주신 분이다.



그러면 이런 선생님을 떠올리며 미래를 떠올려보면,


5년뒤 나는, 새내기 교사로 부푼꿈을 안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것이다. 교사로서 부족한 점이 많을것이기에 선배교사에게 조언을 구하며, 나의 크고작은 시행착오들을 고쳐 좀더 나은방향의 수업을하기위해 노력하고, 그때는 아직 아이들을 잘 이해못할것이기에, 조금이라도 그 아이들의 시선을 맞추고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새내기교사 일것 이다.


10년뒤 나는, 34살로 결혼을 했을것이다. 이때쯤 되면 어느정도 선생님으로서의 노하우가 생겨서 조금더 수월하게 아이들을 가르칠수 있을것이다. . 저는 이때쯤 대학원을 가고싶다. 나의 공부에 어떠한 다른것이 개입을 하지 않고, 경제적 정서적으로 안정되었을 이 시기에 대학원을 가서 좀더 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아직은 무엇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부해볼지 생각하지 못하였지만, 이때쯤이 되면, 현장에서 지내며 분명 더 깊게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생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동기부여가 되었을때 대학원에서의 공부를 더 열심히 할것이라고 생각한다.


20년뒤 나는,  베테랑 교사가 되어있을것이다.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무슨생각을 하는지, 이러한 상황에선 교사가 어떻게 행동해야 아이에게 가장효과적일지 등등 누가봐도 전문직으로서의 교사를 실현하고 있을것이다. . 이때쯤에 오기쉬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며, 절대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교육방법을 시도하며 늘 공부하는자세로 교편을 잡고 있을것이다.


30년뒤 나는, 50대 중반일 것이다. 이때는 학교의 중견교사로서 후배교사에게 도움을 주고,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고싶다. 교육청으로들어가거나 교장이 된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다. 나는 그냥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며 즐겁고 재미있고, 무엇인가를 줄수있는 "수업"을 계속 하고싶다.

그것이 내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기 때문이다.


내가 되고싶은 교사를 차근차근 그려나가다 보니 조금씩 두근거린다. 이것이 예비교사의 막연한 설레임이 되는것이 아니라 이러한 고민을 소중히 간직하여, 간혹 방향을 잃고 헤맬 때, 초등학교 교사로서 첫 마음이 희미해질때 꺼내어 다시금 읽어 힘을 얻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