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교육과 장한슬
나와의 약속
세상을 살면서 이따금씩 가슴속에 무언가 뜨거운 무언가를 느낄 기회가 있는데 그 중 한번인 날이었다. 누군가가 만든 UCC 영상이었는데 그 내용인 즉슨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좋은 교육을 해주십사,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십사 부탁드리는 내용이었다. 교실 안에 와글대는 30여명 남짓의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면 저마다 하나뿐인 귀한 자녀들이며 학교에서의 교사의 말 한마디가, 교사의 관심 하나가 아이들의 마음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꿈을 꾸게 하며 미래를 바꾼다는 것. 매일매일, 그것도 하루 종일, 서른명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육십개의 눈망울이 ‘우리 선생님’의 행동을 주시하고, 교사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할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까지도 아이들은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모방하며 ‘어른’의 모습으로 배워나간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있어 선생님은 사회를 살아가는 ‘이상적인 어른’이다. 직육면체의 교실안에서 교사는 곧 아이들에게 세상을 받아드리는 통로요, 적어도 그 1년동안 만큼은 어쩌면 부모님들보다도 더 오랜시간을 함께하는 존재이다. 순간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이전까지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지!’ 라는 막연한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또 그럴 자신이 있다고 여겼었지만... 위 영상을 접하고 나니 그동안의 내 자신감은 그저 추상적인 감상에 불과한듯 싶었다.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설 자격이 있을까... 내가 그런 엄청난 자리를 맡아도 되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내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과연 내가 목표로 하는 교사상으로 다가가게 해줄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 이내 곧 머릿속이 실타래 꼬이듯 복잡해졌다.
그 후 나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전부터 막연하게나마 내가 바라던 참된 선생님의 모습이 있었고. 내겐 그것을 실현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 인생 최대의 기회아닌가...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참 많은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세상에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듯이 선생님의 모습도 참 다양하다 싶다. 어떤 선생님은 승진을 위해 교실은 어찌돌아가던지 관심 없다기도 하고, 어떤 선생님은 촌지로 사든 삐까번쩍한 백을 삶의 낙으로 느끼기도 하고...(아마 아이들이 돈으로 보이겠지 싶다.) 반면에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공부에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 또 고민하는 선생님도 있고, 답이 없는 공교육 현실에 쓰디쓴 술잔을 기울이는 선생님도 있을 것이고 ... 참 다양하다 싶다. 이 중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가 하는 건 무척 중대한 일이지만 선택할 수는 없는 일, 지극히 운에 따르는거다. 이렇듯 운명의 주사위에 따라 누군가의 인생에 1년은 나에게 맡겨지게 될 것이다. 1년에 30여명의 아이들이 나를 거쳐갈 것이고 나는 1년에 30여명....... 2년엔 60여명.... 5년엔 150여명..... 20년 뒤엔 600여명.... 30년뒤엔 거의 1000여명의 아이들이 나를 안경 삼아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이담에 그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장한슬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어!’ 라고 느끼게 하는 교사이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가야할 길은...? 어떻게 해야 그런 교사가 될 수 있는가?
분명한 건 누구나 그러하듯, 그저 똑같은, 아무 감흥없는 그런 뻔한 교사가 되선 안된다는 거다. 물론 현시대의 교사들이 다들 정말 바람직하다 싶을 만큼의 모습들을 하고 있다면 나 역시 그렇게 뻔한 교사이고 싶다고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현교육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그렇지 않다. 물론 다행히도 현교육현장에 존경받아 마땅할 바람직한 선생님들도 꽤 계신다 싶지만(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 내가 무엇보다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학교를 다른 여느 직장처럼 생각하는 교사들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단지 돈벌이를 위한 직업이어선 안된다. 일부측에선 학교라는 곳 자체를 교육을 서비스로 파는 시장일 뿐 아니냐고, 공부나 똑바로 가르치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건 정말 엄청난 오해이다. 지식 전달만이 학교에 역할이라면 학교라는 것 자체가 필요가 없다. 요즘같이 인터넷 전산망이 탁월하고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저 가정에서 배우면 그만이다. 물론 지식 전달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이지만 학교의 진짜 역할은 다른 것들에 있다. 다만 지금의 학교가 그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이리라.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을 지지해주는 수업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학생들이 편안하고 정직하게 선생님에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을 때 선생님과 학생들 간에 든든하고 친밀한 느낌이 생기고 서로 신뢰할 수 있다. 이 신뢰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 수업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동기가 되어줄 것이다.
학생들에게 효용성 있는 공부를 시킬 것이다. 과제를 내줄 때에도 “무조건 해와!” 가 아니라 사소한 과제 하나에도 그 과제의 효용성을 함께 설명해 줄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학습시키는 모든 자료의 효용성에 대해 설명해 줄 전문인으로서의 의무가 있다고 본다. 만약 학습내용에 효용성을 설명할 수 없다면 그 학습 내용은 효용성 있는 공부라 볼 수 없는 것이므로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만약 합리적인 판단 하에 효용가치가 없는 공부는 어느 것도 시키지 않겠다. 그러한 판단이 보다 정확하기 위해선 교사인 내가 학습내용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효용성 있는 내용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은 물론 졸업한 뒤에도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이번 학기 특히 좋아하고 있는 국어과교육이론 수업 시간에 즐겨하는 학습인데 그동안 생각했던 ‘교과서는 바이블이다.’라는 생각을 깨는 공부이다. 교과서는 많은 노력에 걸쳐 완성된 질높은 학습 자료이긴 하나 이는 내가 수업 시 참고할 많은 자료 중 하나일 뿐이다. 교사는 많은 자료중에서 아이들에게 효용적인 내용을 선별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분야 만큼은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담에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내가 최고야!”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싶다. 물론 이것은 결코 혼자만의 착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실력을 말하는 거다. 교육대학교 통폐합 반대를 외칠때만 교사양성의 전문성을 들먹일게 아니라 진짜로 전문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춰야 한다. 비전문인들에게는 일을 단지 무사히 마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전문인은 일이 완성되어 가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나간다는 것에 분명 차이가 있다. 현재 학교에서 교사들이 전문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저 교육 경영인들이나 학교 운영위원, 의회 교육 위원회나 교육부 공무원, 장학관 등 누구나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교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과 평가까지도 관리할 권한을 갖고 있다. 계속해서 논쟁 거리가 되고 있는 일제고사만 해도 그렇다. 선생님들은 그저 교육방침에 따라 휘둘리고 있다. 교사는 민주적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발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곧게 세워야하며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선생님을 아이들도 보고 배울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많이 존경하는 선생님에게서 시작한다. 즉, 존경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첫째요,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정당성을 주장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궁극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많은 선생님을 뵈어왔고 물론 훌륭하신 분들도 많았지만 씁쓸했던 건 자기 발전에 대한 노력을 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수년전, 수십년전 머릿속에 넣었던 지식으로 되풀이, 또 되풀이,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 하지만 세상은 분명 변하고 발전하고 있고 아이들도 예전과 다르고 또 세상이 원하는 지식도 차츰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껴야 한다. 위에서 문제라고 했던 직업으로, 단지 생계수단의 목적으로 교사란 직업을 한다면 아무 발전 없는 건 당연하다. 아이들은 미래를 이끌고 짊어져야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떤 것이 진짜 효용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가 십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론, 학생들에게 각자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하도록 늘 격려할 것이다. 여기서 각자 능력에 따른다는 건 실력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저 누가 조금 더 빠르고 느린가의 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준다면 공교육만큼은 누구나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이라 본다. 그저 “빨리 빨리~”라는 서두름 때문에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가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따라서 나는 충분히 기다려주고 싶다. 수업시간 중에 해결이 안된다고 닦달할게 아니라 “괜찮다, 괜찮다.” 하며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 주는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기를 꺾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갖고 있고 이를 아이들에게 누누이 강조할 것이다. 학교 안이나 밖에서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어려움과 마찰의 대부분은 남이 난처하도록 비난하는데서 생긴다고 본다. 좋은 관계란 조화와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성취된다.
또한 아이들의 문제는 교사인 내가 해결해주기보다 아이들 자신이 직접 해결하도록 할 것이다. 하지만 이때 그냥 둬서는 안되고 아이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선생님이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 아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인식하게끔 해주어야 할 것이다.
진짜 질적인 학습은 행복감을 수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정규 수업에서 행복을 느끼는 학생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좋은 물건을 받거나 사는 것에서 행복이 크다고 한들 자신이 직접 열심히 노력해서 지식을 성취함으로써 얻는 행복감에는 비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유익한 일을 하고,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도 동의해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제일 큰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가슴깊이 새기고 아이들의 능력을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든든한 지원자가 될 것이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느껴진 행복은 또 다른 학습의 동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굉장히 아쉽게 생각하던 부분인데 인문과목들에 비해 예능 과목들이 ‘덜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은 학습하기로 선택한 것이 무엇이든 각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질적학습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실제로 인문과목보다 예능을 통한 질적 학습이 더 쉽게 이루어질 아이들에게 그럴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 사회의 현실은 예능계 직업이 굉장히 많고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수출 부문이 연예 사업이기도 하다. 또한 예능부분에서 공동작업을 하는 것을 배우면 인문과목 학습에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미술이라던가 연극 등은 협동심을 가르치기 좋은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교육을 하기위해서 내가 공부해야 할 내용은 몇 개 더 늘어난 셈이 되겠다. (;;)
위의 내용들과는 좀 이질적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매년 꼭 해야겠다 싶은 일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독서’ 교육이다. 물론 독서교육은 항상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 ‘뭐야, 뻔한거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실은 좀 다른 것에 초점을 둔거다. 내가 어렸을 적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항상 교실 한켠에는 학급문고가 있었지만 항상 먼지가 쌓이기 일쑤 였다. 크지도 않은 교실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 함께 읽자고 모아놓은 책들이 왠지 버려진 책을 모아놓는 기분이 들었던 건 왜였을까... 독서의 중요성은 아마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난 그 중에서도 특히 독서의 효과를 맹신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책은 마법과 같다. 시대를 거슬러가게도 해주고 다른 사람이 되어보게도 해준다. 책속에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세계가 들어있다. 하지만 이런 책의 매력을 느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그저 책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직사각형 종이 조각일 뿐이다.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이 ‘책에게 다가가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계속 근처에서 맴돌게 하고 자극을 주면 물가에 갖다놓은 아이가 물장구를 치듯 그렇게 어느새 다가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때 다른 방법으로 얻을 수 없는 가치를 지니기 시작한다. 이 건 내가 언젠가 책에서 읽고 이거다! 싶어 메모해 놓은 것인데 지역 사회 주민들을 수소문하여 방문해서 적당한 것들을 기증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출가시킨 나이 많은 어른들이 사는 동네를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은 책들을 구하는 한 방법이다. 이 때 학생들에게 직접 자기 반의 학급 도서 기증을 부탁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상대를 납득시키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잘 훈련시켜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설득을 하고 책을 기증받거나 빌릴 수 있는데 빌리는 경우 학년 말에 돌려주겠다는 약속이 담긴 영수증을 만들어 빌려 준 사람이 원할 때 주도록 하게 한다. 그리고 빌린 책들의 경우 책꽂이에 주인의 이름을 표시해 별도로 보관하게 한다. 학생들이 어리더라도 문고 책임자나 차례를 정하면 책의 입출을 기록하는 유익한 일을 배울 것이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대화의 기술을 가르칠 수도 있는데 자기가 많이 좋아하는 책을 다른 친구들에게 선전하여 읽게 하거나, 책에 대한 느낌을 말해 보도록 격려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학급문고 운영이 가져다 주는 이점중에 하나는 바로 실제 도서관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학급도서는 주인 의식에 대한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일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소유한 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모든 것이 그저 학교 혹은 선생님의 소유일 뿐이다. 아이들에겐 자기 소유물이 아니어서 ‘질’적으로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학교의 주인은 분명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학교나 학급 결정사항에 가능한한 학생들을 많이 참여시키고 많이 제안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보다 내가 바라는 교사상의 밑그림이 너무 길어졌는데 5년뒤, 그리고 10년 뒤... 20년, 30년 뒤를 내다보자면... 나는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에 공부를 하고 있어야겠구나 싶다. 아마 그 끝은 없지 않을까... 제일 앞선 5년 뒤를 내다보자면 다양하고 재미있는 학습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정신 없을 ‘나’ 였으면 싶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속한 컴퓨터 교육과와 관련해서 학과공부도 게을리 해선 안되겠다. (사실 어려움이 많지만...;;) 아직 배울 게 너무 나도 많기에 나도 학생의 입장으로 행복감을 느낄 성취요소가 너무 나도 많아 앞날이 밝다. 10년이든 20년이든 간에 시간이 가는 만큼, 새로운 시대가 오는 만큼 난 더 부지런히 한걸음, 또 더 한걸음 더 앞서가서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교사가 되어야 겠다. 내가 나태해질 때마다 이곳에 들어와 내가 대학시절 부푼 꿈을 안고 쓴 이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를 채찍질하고 반성하고 나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