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과 양수현
- Muss es sein?
중학교 때부터 나의 꿈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아동심리치료 분야도 생각해 보았지만 내가 중학생일 때 국내에서는 미술치료를 배우기란 쉽지 않았고 유학을 가는 수밖에 없어서 일단 교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망설임 없이 교대에 원서를 냈고 “3월에 꼭 다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뒤로 하고 면접실을 나온 나는 꿈에 그리던 교대생이 되었다. 입시를 함께했던 친구들을 보면 몇 십년 후까지 나름의 목표를 가진 아이와 대학만 가면 된다는 아이 두 부류가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일단 선생님이 되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어떤 선생님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총 2주간의 실습 기간 동안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잠시, 이름을 외울 때쯤 되면 헤어져야 했고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러다 작년에 교육봉사활동으로 2박 3일간의 캠프를 다녀오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과 관심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인솔했던 조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남자 아이들 5명이 있었다. 일정에 따라 ‘아이들과 재밌게 놀아주면 되겠지?’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아이들도 장난을 치긴 했지만 잘 따라와 주었다. 중간에 한 아이가 자신만 관심을 못 받는다고 생각했는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잘 그려서 칭찬해 주었더니 수첩에 그린 그림을 뜯어서 준 아이였는데 자기만 김밥을 먹여주지 않았다고 토라진 것이었다. 생각지 못한 아이의 반응에 아차 싶어서 사과를 했지만 캠프가 끝날 때까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관심을 고루 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선생님의 관심은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그게 교육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갖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고 사랑을 고루 나누어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다. 가르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이다. 우리가 서게 될 교실에는 여러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다문화 가정(다문화 가정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그림을 그린 전시회에 가 봤는데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거부당한 것에 상처를 받은 내용이 많았다.), 한부모 가정,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인해 가정에서 방치되는 아이, 통합교육의 실시로 장애아동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경우, 왕따나 히키코모리와 같은 성격상의 문제, 큰 범죄를 저질렀는데 처벌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가 어린 경우, 부적응아동, 그리고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 교사의 눈에 띄지 않고 졸업하는 아이...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최소한 우리 반에서 함께 생활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이해하고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교사가 될 것이다. 사랑 받은 아이가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안다.
2학년 때부터 문화원에 다니며 프랑스어를 배우던 와중에 교수님께서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 물으시며 유학얘기를 꺼내셨다. 자격증 시험도 보고, 교대에만 눌러있지 말고 꿈을 크게 가지라고 격려해주셨던 분이었다.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미술치료가 떠올라서 알아보았는데 이제 국내에서도 학회가 생겨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교육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유학제도도 있으니 지금은 준비를 하고 유학은 일단 보류하기로 하였다. 어른들은 자신을 감추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림을 통해서는 덜 방어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아이들은 그리는 것을(낙서하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아침시간이나 미술시간에 그린 작품, 그림일기를 통해서도 아이들을 파악할 수 있고 부작용 없이 치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누구나 한가지씩은 아픈 기억이 있다. 어릴 때 큰 상처를 받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지워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나타나면 크게 문제가 된다. 그런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치유해주는 방법의 하나로 미술치료를 택한 것이다.
5년 후, 나는 임용시험에 합격한 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발령받은 지 3~4년 된 초임교사로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하여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데 열정을 불태우며 교직경험을 쌓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이라 탈도 많고 실수도 하고 선배 교사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한국미술치료학회의 정회원 신청을 한 후에(정회원 자격은 관련학과 4년제 학사학위를 받은 사람.) 틈틈이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지식도 쌓을 것이다. (현재 미술치료프로그램이 행해지고 있지만 일주일 등의 단기간에 걸쳐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수여하는 이수증은 전문적인 치료사가 되는 것과는 조금 멀다고 하여 한국미술치료학회의 단계를 기준으로 하였다.)
10년 후, 학회에서 하는 기본연수, 전문가 워크샾 및 외국인 워크샾 등을 이수하고 (가능하면 기타 국제 학술대회도), 어느 정도 배우고 나면 미술치료를 학교에서 조금씩 시도해 볼 것이다. 이때는 우리 반 아이들 중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집안형편이 어려워 어두운 아이, 형제 중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부모님이 이혼하여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 왕따를 당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 등)을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실시하고 치료가 잘 된다면 정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더 많은 아이들을 대할 계획도 세울 것이다. 아직 전문가가 아니고 심리 관련 분야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닌 오랜 연구와 시험을 필요로 하므로 배워 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방학 등을 이용하여 교직생활을 하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갈 것이다. 워크샵과 연수(기본연수 240시간 강의)를 이수하고 나면 임상수련을 받을 수 있는데 수련시간은 약 1000시간을 해야 하므로 장기간에 걸쳐서 계획을 세워 실행할 것이다. 나의 단점 중 하나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미술치료는 꼭 남을 치료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교사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하여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기분이 좋은 날은 아이의 잘못에 대해 분명히 체벌해야 할 일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교사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심리치료 분야를 배워 나가며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 뿐 아니라 나 자신도 이해하고 다듬어 나가는 시기가 될 것이다.
20년 후, 임상수련을 끝내고 필기시험을 통과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을 것이다. 이 자격증은 미술심리치료사로서 전문성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보다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고 현장에서도 아이들을 파악하고 상담하는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쓰일 것이다. CA시간이나 방과 후 활동, 방학 중 캠프를 통해 아이와 학부모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니는 아이가 있다면 보통 교사는 아이를 타이르거나 체벌하거나 그래도 안 될 경우 학부모와 상담을 하는 정도에 그친다. 미술치료를 통하여 아이의 심리를 파악하고 미술활동을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면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때로는 학부모도 같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문성을 취득하였으므로 보다 효과적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쯤 되면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져 대학에서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국가공인 자격증도 생길 것이므로 유학 문제는 상황에 맞추어 결정할 것이다. 만약 유학을 간다면 교육청에서 교사장기연수제도로 지원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미국(현재 미술치료분야에서 유학을 가장 많이 가는 나라라고 한다. 대학과정에서도 가르치고 있다.)이나 프랑스(현재 기준으로: 올해 안에 가능하면 DELF자격증을 취득할 계획이다. B1단계면 유학을 갈 수 있는 수준이고 실질적인 학사과정 편입이나 대학원 입학은 TCF자격증이 필요하겠지만 파리 5대학(미술치료과정이 개설되어 있음)에서 쓰는 대부분의 교재를 만드는 학교는 정식대학은 아니어서 이쪽으로 간다면 유학 시 현지에서 단기간동안 집중적으로 어학에 신경을 쓴다면 자격증 요건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쪽으로 생각해 볼 것이다.
30년 후,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얼마 안 남았지만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교사 생활을 하며 조금씩 쌓아온 미술치료관련 지식을 온전히 적용할 수 있다면 교직경력에 따른 능숙함과 맞물려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감싸주는 교사의 모습을 갖추었으리라 생각한다. 일찍 퇴직을 하게 된다면 미술치료학회에서 활동하거나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구소를 세워 현직 교사들이나 아동들이 미술치료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현행 교육과정상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방법은 다룰지라도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이나 심리 면에서는 부족하다. 일본의 경우 교육학 외에도 학년별 아이들의 심리와 특징,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법 등 교사로서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꼭 치료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으로서 미술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보급하고 이로 인해 미래의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이 계획에서 조금 어긋날지도 모른다. 20년 후에 계획했던 일을 10년 후에 하고 있을 지도, 더 미뤄질 지도, 다 실행하지 못할 지도.. 하지만 비전을 세우는 것은, 이렇게 한 번 더 되새겨 보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에 가까이 가도록 한걸음 더 내딛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힘내자,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내 미래는 나의 것이니까.
- Es muss se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