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

체육교육과 이희정

미래 교육 2010. 5. 29. 00:39

  나는 어렸을 적부터 주변사람들이 “네 꿈이 무엇이니?”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마다 진지하게 대답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돈 많이 벌어서 부자되는 거요”라는 식의 허무맹랑하고 구체적이지도 않던 대답들을 내뱉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올해 3월 우연히 한비야작가가 쓴 책을 읽게 되었다. 서점에 들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떡하니 놓여있던 한비야 작가의 책에 눈이 가게 되었고, 작가의 이름과 명성하나 믿고 턱하니 구입해 버렸다. 나는 기대반, 설렘반으로 그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겨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을 넘겨갈수록 한비야의 삶을 알아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내 삶과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고 있었다. 한비야 작가는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이라는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이뤄내는 한비야의 모습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자신에게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 역시도 교대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대학생활을 보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교대를 다닌 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은 입학할 당시 지녔던 좋은 선생님에 대한 간절한 희망은 퇴색되어 버린 것 같다. 단지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학교 수업을 듣고, 과제를 제출하는 지금 내 모습은 목적과 수단이 전치되어버린 상태인 것 같다. 이러한 지금의 내 모습은 참 된 교사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준비하는 예비 교사의 모습이라곤 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퇴색되어 버리고, 교사의 소명에 대해 무감각해진 나에게 한비야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비전 선언문에 어떤 내용을 담을까 고민했던 시간들은 나의 예비 교사로서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했다. 또한 막연히 ‘좋은 교사’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이 아닌 조금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까지도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교사라 하면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를 떠올릴 것이다. 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교사를 생각 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좋은 교사의 자질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나는 가장먼저 아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동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고 해서 훌륭한 교육자가 될 수는 없다. 때문에 훌륭한 교사는 아동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동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실질적인 교수법적 능력을 키우고, 아이들을 이해하는 교사가 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구상을 해 보았다.

 

  5년 후, 나는 우선 산골이나 섬에 있는 작은 학교(또는 분교)의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원한 시골 학교에서 도시의 분주함보다는 농촌의 평온함과 한가로움 속에서 자연을 배우고 순수함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또 나는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은 작은 학교의 선생님으로써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갖는 기회를 많이 가질 것이다. 즉, 아이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할 것이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수업내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서 주로 배웠었다. 그러다 보니 직접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지 못했었다. 때문에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아동을 대하는 방법, 아동과 대화하는 방법 등을 직접 경험해가면서 배우고 있을 것이다.

 

  10년 후에는 나도 교직 경력 10년 차의 교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풋내기 선생님 꼬리표를 떼고, 어느 정도 수업 능력도 갖춘 연륜있는 교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교직 생활을 20~30년 한 선생님들에 비하면 아직은 턱 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10년이면 강산이 변할 수 있는 시간인 만큼 많은 성장을 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선 대학원을 졸업하여 석사과정을 마쳤을 것이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수업을 위해 연구하는 선생님들 몇몇과 모여 모임을 만들고 활동할 것이다. 한 달에 두 세 번 정기적으로 모여서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어떤 과목에 어떤 교수법을 적용시켜 보았더니 효과적인 수업이 되었다는 등에 관한 토론을 하고 연구를 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도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도전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나의 꿈은 교육자이었다. 그것이 교대에 들어오면서 초등교사로 정해지긴 했지만, 교사의 생활을 하면서도 대학 교수의 꿈도 버리지 못하고 준비하고 있을 것 같다.

 

  20년 후에는 40대 중반의 아줌마 선생님이 될 텐데, 그 때쯤이면 나의 가정도 생기고 자식들도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다 보면 학교에서 선생님으로써의 역할에 소홀해 질 수 있는 소지를 마련하게 된다. 또한 교직 생활을 20년 동안이나 하게 되다보면 교사로써의 소명의식도 많이 퇴색해 버릴 수도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회의를 느낄 수도 있고, 평교사가 아닌 보직 교사의 자리까지 오르다 보면 교사라는 직업을 단순히 생계수단으로 여기는 경향도 나타날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나태해진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젊은 교사들이 수업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초창기의 모습도 떠올려보고, 또 처음 부임했던 학교를 다시 찾아가보는 시간도 갖고 싶다. 20년 동안 앞만 보면서 빠르게 달려왔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은 속도를 늦추고 나의 20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또한 이때쯤에는 앞으로의 나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선택을 할 상황에 서 있을 것이다. 즉, 앞으로 계속 교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아마 대학 교수라는 직업으로 전향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만큼 대학의 강단에 서는 쪽이 될 듯하다. 좋은 선생님으로써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좋은 선생님을 발굴해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도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이때쯤엔 대학의 강단에 서서 대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대학 교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30년 후에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덧,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나의 직장에는 선배들보다는 후배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후배들의 패기와 젊음을 시기하고 부러워하기 보다는 그들의 발전 가능성을 격려하고 지지하면서 후배들에게 내가 겪었던 경험과 그러면서 배웠던 것들을 나누어주고, 후배들이 내가 지키고 있던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다면 내어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30여년 동안의 교육자로써 살았던 것에 만족하며,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도 얻는 행복을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 삶은 어떤 것을 위한 삶이 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50대 중반이 됐을 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그 때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교육자 이희정으로서의 삶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서의 이희정을 꿈 꿀 뿐이다. 그리고 30년 후의 나의 삶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지난 날의 삶들에 만족하고 있을 내 모습을 꿈 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