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과 배예리
모든 아이들이 구체적이고 이상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을 때, 나는 꿈이 없는 아이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던 나에게, 텔레비전에서 경찰이 비행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이것을 보고, 나는 잘못된 길을 가려는 아이들을 선도하는 경찰이 되고 싶었습니다. 잘못한 것을 벌주기보다는 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바른길로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경찰대라는 높은 관문은 저에게 허락되지 않았고, 남들은 한참 공부할 시기인 수능 100일 전부터 저는 수능을 포기하고 재수할까도 생각했었습니다. 깊은 슬럼프에 빠져있던 저에게 담임선생님께서 하나님이 다른 길을 계획하셨을 수도 있다며, 경찰이라는 하나의 길을 보는 게 아니라 너의 목적, 비전을 되짚어 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사실 저의 비전대로라면 교사가 되는 것이 더 적합했지만, 여전히 교사라는 직업에 맘이 열리지 않은 저는 다른 학교를 목표로 공부해서 수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원서를 쓸 시기가 되자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경찰대를 다시 목표로 잡고, 저는 반수를 목적으로 교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처음엔 그저 노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저는 언제든지 다시 수능 공부를 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랬던 저를 바꿔놓은 것은 4월 교생실습 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마냥 싫어할 것만 같았던 저는 어느새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담임선생님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실습이 끝나던 마지막 날의 아쉬운 마음과 내가 이 직업을 평생 직업으로 갖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수요 아침예배에 가서 나의 비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교직은 “1년에 30명씩, 30년을 교직생활을 하게 된다면 1000명의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 말씀하시던 서관석 교수님의 말에 저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물론 교직이 나의 소명인가 의문이 들 때마다, 저는 항상 생활 속에서 답을 얻곤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단순히 용돈벌기에서 시작했던 과외 아르바이트에서 저는 아이들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들, 누군가 잡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아이들, 그리고 너무나도 순수한 영혼을 지닌 아이들의 모습은 저에게 교사로서의 소명에 대한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저에게 교사란 인도와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굳이 차도로 걷지 않는 이유는 차도 옆에 마련된 “인도”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동행하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긋난 길을 가기 전에 올바른 길을 보여주어 그 손을 붙드는 교사가 될 것입니다. 공부 잘하고 예쁘고 착한 아이들만을 사랑하는 교사이기 보다, 주위의 손이 필요한 소외되고 상처 입은 아이들을 더 챙겨주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5년 뒤, 나는 교직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해외 봉사활동도 가보고, 특수아동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가해 보고, 내가 근무하는 지역사회를 위한 교육봉사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독서를 생활화 할 것입니다. 이렇게 쌓은 경험과 지식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전문성을 갖게 해 줄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파견근무 발령을 받아 전문성을 더 키우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앞으로 가르칠 아이들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덧붙여서 교직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일기를 쓸 것입니다. 나의 교단일기는 나중에 나의 삶을 돌아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0년 뒤, 나는 아이들을 지식적으로 가르치는데 성공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가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학부모님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 아이들을 이해할 것입니다. 특히 10년 뒤에 나는 나의 아이를 키우며, 학생들을 내 아이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여전히 교단에 서서, 겪게 되는 부분들,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학생들과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서 나는 상담연수를 받을 것입니다.
20년 뒤,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일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삭막해질 사회 가운데에서 학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선생님이 될 것입니다. 20년 차가 되다보니, 성인이 되어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 나의 교직생활을 되돌아보며, 초년이었을 때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미숙했던 모습이 웃음이 날 수도 있지만, 진지하게 반성하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또한 40대의 나이에서 가장 보이기 쉬운 나태함을 극복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만약 나태함에 빠지게 된다면, 내가 초년에 썼던 교단일기를 보며, 초심을 되찾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30년 뒤, 나는 실력 있는 베테랑 교사로서, 교직과 병행하며, 교육연수원에서 강연을 하고 있을만한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주위에서 승진하는 동료들을 보며, 승진에 대한 욕심도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초심대로, 아이들의 가까운 곳에서 붙잡아 주는 존재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을 연수원의 강의를 통해 다른 선생님들, 또는 허락한다면, 교육대의 강단에 서서 예비교사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실력이 있을수록, 아이들 옆에서 더 헌신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저는 저의 과외생에게 네가 화려한 휴가에 나오는 교사라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곧바로 제게 당연히 학생들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겠지만, 저는 그 말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교사란, 사회의 정의를 외쳐야 되는 존재이며, 학생들이 가는 길이 올바르다면 함께 동행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아직 교사로서의 의무감이나 책임감보다는, 사회라는 더 큰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예비교사이지만, 적어도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사회적 정의를 외칠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의 경험을 통해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더 배울 것이 많은 부족한 예비교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훗날 교단에 서서도 나는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가도록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교학상장이라는 말처럼 나 스스로가 그들에게서 더 많은 교사의 모습을 배워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