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교육과 오재연
제가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고 나에게 많은 영향을 선생님을 꼽자면, 단연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십니다. 젊은 여선생님이셨는데, 아직도 그때의 1년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너무 즐거웠고, 정말 재미있었으며 항상 친구같이 친근한 선생님이셨습니다. 학년이 끝날 때에는 1년 동안의 사진과 글들을 기록한 CD를 아이들 모두에게 나눠주셨는데, 지금도 그것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항상 새로운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려고 시도하셨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선생님이 된다면, 친구같이 친근하고,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교대에 들어와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교사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겨울방학 때, 한 초등학교에서 멘토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는 시 외곽에 위치하는 학교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나,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많은 학교였습니다. 제가 맡은 학생은 세 명이었는데, 그 중 한명의 부모님이 이혼하여 아빠가 맡아서 그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수업시간에 교실 안에서 공을 차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험한 말을 하기도 하고, 학습지를 풀지 않고 낙서를 하는 등 말썽을 많이 부렸습니다. 그래서 잔소리도 많이 하고, 혼내기도 해서 이 학생에게 미안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를 잘 따라와 주지 않아서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한 달 동안 수업을 하면서도, 이 아이에게는 많은 것을 전해주지 못한 것 같아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수업날, 이 아이가 학교에 ‘부루 마블’이라는 게임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랑 이 게임을 해보고 싶었어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때, ‘아, 나는 이 아이에게 많은 지식을 전달해주지는 못했어도, 많이 친해질 수는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말썽을 부리던 것은 저의 관심을 끌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작은아버지도 이혼을 해서 사촌동생을 혼자 키우셨습니다. 그러다가 사정이 생기셔서 우리 집에서 6개월가량 사촌동생과 함께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 사촌동생이 참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부러 말썽을 더 부리기도 하고, 수학 문제를 풀으라고 시킬 때는 문제도 읽지 않은 채로 아무 숫자나 써놓은 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는 이 사촌동생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커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엄마의 애정과 관심을 얻고 싶어 하는 잘못 사용된 표현방법 인 것 같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거나 이혼 가정의 자녀의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아이들이 관심과 애정이 결핍되어 있으며, 때문에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잘못된 방법을 사용해 관심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불쌍하고 딱한 일이지만, 분명히 이런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때문에 이 아이들이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이런 아이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느꼈던 많은 애정과 친근함을, 이런 아이들에게도 전달해주고 싶어졌습니다.
5년 후에 나는...
우선 저는 임용이 붙은 후 몇 년 간의 교식생활을 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대학원을 병행할 것입니다. 물론 초임 때는 새로운 학교와 환경에 적응해야겠지만, 몇 년 생활을 하다보면, 금방 적응되어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저는 교대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배우고 전문적인 지식을 늘려가고 싶습니다. 따라서 해외에서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를 위한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좀 더 찾아보고, 우리나라에 반영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석사과정을 준비, 혹은 취득할 것입니다. 또한 제 마음속의 가장 훌륭한 교사이신 6학년 담임선생님을 다시 만나서, 많은 조언도 얻고 마음을 다잡을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10년 후 나는....
저는 한 가정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정말로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다면, 그 지식은 쓸모없는 지식일 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제 아이가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그 경험으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정말로 사랑을 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아이들도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노력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싶고, 과거에 가르쳤던 제자들이 커서 저를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박사 과정 공부도 마저 하고 싶습니다. ‘교육자’이자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20년 후 나는....
시골이나 시 외곽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상대적으로 혜택을 덜 받은 아이들에게 교육을 해주고 싶습니다. 풍족한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었을 때보다 부족하게 가진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었을 때 더 크고 더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법입니다. 저는 부족한 아이들도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또한 시골 학교를 다닌다면 아무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을 테니, 이때까지 공부하고 아이들을 지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한권 쓰고 싶습니다. 책을 쓰는 것은 예전부터 꿈꿔왔던 일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제 오랜 꿈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30년 후 나는....
저는 한 학교의 교감선생님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에도 예전에 목표했던 것을 잊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가 있는 학교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은데, 부모가 없거나 한 부모 가정 자녀를 위해서는, 우애남매맺기 프로그램(형제, 자매가 없는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 1년 동안 서로의 형제, 자매가 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과 같이 봉사 활동하는 사람들을 통해 일일 부모 만들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들 뿐만이 아니라, 학교 모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줄 것입니다. 한명의 아이도 빠짐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체벌은 절대 하지 않고, 상담이나 기타 방법을 적극 장려하는 등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또한, 조금은 여유롭게 지내면서, 내 교사로서의 인생을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훗날 내 모습을 돌이켜봤을 때, 지나온 길에 대하여 부끄러움과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22살, 지금 이 순간에 세운 비전을 잊지 않고, 나름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할 만한 교사의 삶을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