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

국어교육과 최치영

미래 교육 2012. 6. 9. 22:39

  아주 먼 옛날부터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자'는 멸시당한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옛날 마을의 훈장부터 성균관의 대제학까지, 가르치는 자들은 어느 곳에서나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진 않았다. 왜일까? 그들은 충분히 무지한 군중을 사로잡을 능력이 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교사는 천직이라는 말이 있따. 바로 여기에 이 의문의 답이 존재하는 듯 하다. 성품이 올바르고 곧으며 인류의 역사가 올바른 길로 진행하도록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은둔자들의 의무인지도 모른다. 교육자들의 노고가 없었으면 동방예의지국의 예절, 국가의 의무 뿐만 아니라, 심하게는 불을 피우는 방법까지도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은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교육자가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하면 인류의 보편적인 발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보다 미래의 인재를 위해 살아야 하는 삶, 이것이 바로 참교육자가 아닐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로 올라와보자.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사교육을 많이 받는 자들이 나중에 세상의 중심에 올라가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자신이 가진 교과서적인 지식의 정도가 능력으로 평가받고, 그 능력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의 보편적인 발전은 일어나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불아 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무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오로지 교육만이 할 수 있다. 정책을 펼친다고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를 거쳐 점진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는 현 대한민국 상황에선 전 국민 의무교육인 초등, 중학교에서밖에 불가능하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을 택한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것이 일차적 의무라 평가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나는 '더불어 사는 삶'을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 외부적으로 드러난 조건들로 상대를 평가하지 않고 한(韓)민족이 아닌 한(一) 민족임을 느끼게 하여 장애인, 영재, 학습 부진아 할 것 없이 각자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알게 하여 모두가 동등한 인간임을 느끼고 더불어 사는 삶의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교사의 의무이고, 나의 의무라 생각한다.

 

  돌려 말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면, 나는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교육보다 인성교육을 제 일의 목표로 두겠다는 것이다.  학업 성취도는 개인차가 날 수 밖에 없다. 교사가 정규 수업시간 안에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지식의 양을 주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다수의 과외 경험과 12년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히 느껴진다. 영어단어 하나 모른다고, 지도와 그래프를 읽지 못한다고 세상 살아가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 알맞은 역할과 위치를 찾고, 그 위치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획득하기 위해 교사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공부든, 체육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학생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을을 알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어야 하고, 그 뒤에 그 깨달음은 저절로 오는 것 혹은 부모와 교사의 도움에 의해 오는 것이다. 공부가 제일시 되는 현 상황은 직업 획득의 필수사항이 대학이고 대학은 제도권 교육의 '성적'만을 요구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로 인해 성적에 따라 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발생하고, 서로 '친구' 이전에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나 '혼자'의 성적이 높아져야 나의 대학이 좋아지고, 나의 직업을 구하기 편해지는 이 대한민국 현실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성적을 강조하는 학교에서 획득하기란 무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교사가 아닌, 학생과의 인간적인 교류를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것, 즉 예절을 습득하게 하고 더불어사는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학생과의 관계를 선생과 학생의 수준을 넘어서, 인간적인 교류를 바탕으로 학생을 파악하여 학생이 가진 능력을 120% 발휘할 수 있는 위치로 가고자 하는 '의지'를 갖도록 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필요성을 느낀다면 공부하려는 자세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사회의 한 톱니바퀴이고, 똑같이 한 생명을 가진 인간임을 인식하여 타인에 대한 존중감을 길러주도록 할 것이다.

 

  이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시골학교로 가야 할 것이다. 내가 판단하는 나의 역량으론 내 한계는 15명 이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몇년 후에 나는 어떤 모습일 것이다 하고 나의 모습을 예상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난 경력에 상관 없이 한결같이 아이들과 직접 살을 부딪히는 선생님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 있다.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일대의 중요한 사건이 없는 한,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리라 믿는다.

  교장이든, 교감이든, 한 학급의 담임이든 아이들과 인간 대 인간의 교감을 바탕으로 때로는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때르논 교사의 엄격함으로 그들을 잡아주고, 함께 축구하고 노래하고 물놀이, 눈싸움하며 친구이자 인생의 인도자로서 살아갈 것이다.

 

  어느 학교를 가든 그들의 생활에 녹아들고, 학부모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성적이 아니라 학생의 능력과 잠재력을 파악하여 올바른 길로 이끄는 인도자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