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교육과 정주리
아직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본 적도,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 나의 꿈은 자유로웠다. 화가, 요리사, 의사, 간호사 등 내 흥미를 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에 인사했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그것을 평생동안 할 수 있게 하는 직업을 갖는 것이 내 미래의 목표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때만 해도(전적으로 주관적인 내 입장이지만) 자고로 초등학생이란 학교생활 즐겁게 하고 방과 후엔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며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 심지어 유치원생까지 영어공부다, 피아노 레슨이다, 체력 길러준다고 태권도 학원이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끊임없이 뭔가를 익히기에 바쁜 현실이지만.
나는 그랬다. 커서 내가 하는 일들은 나를 아주 행복하게 만들어 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학교을 다니면서 어느샌가 나의 원대한 꿈들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 3년을 의미없는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보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달라질게 없었는데, 항상 성적표를 받아 보곤 한숨만 쉬었던 내가 어느 순간 정말 깨달아버렸다. 무엇을 깨달은 것인지 지금도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말로 나를 180도 바뀌게 해 준 무언가가 있었고 그 날 이후로 난 끈질기게 그러나 즐겁게 공부를 했다. 중하위권이었던 내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 걸 보는 즐거움에설까 기대감에설까, 믿기 힘들지만 공부하는게 즐겁고 행복했다. 좋은 성적만 받아내면 뭐하랴. 하지만 다행히도 몇년만에 내게도 꿈이란게 생겼다. 선생님. 대게 학교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가진 학생들에게 다른 학생들이 모르겠다며 문제의 해답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고 친구들과 문제해결을 함께 해 가며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 내 경우엔 문제해결, 즉 지식전달이었고.
아는 것을 가르치고 나누는 것에 대한 즐거움. 그것만이 내가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아니다. 그것은 내 개인적인 욕망이었다고 하면 나의 부모님, 내 주변 친인척들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교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문 앞에서 경제적 이유로 발을 돌려야 했던 아버지,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하시고 고되게 일을 해 오신 어머니께서는 당신들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인생을 살게 하고 싶었으리라. 부모님 입장에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여자인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직업이 교사라고 생각하신것 같다. 사실 나 역시 내 미래생활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갖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이 점은 내가 평생직업으로 교사를 택한 이유에 포함된다.
교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대학에 들어온지도 언 3년.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 대학이라는 것에 실망도 많이 했다. 내가 꿈꾸던 잔디가 넓게 깔려있는 대학 캠퍼스의 모습과 현저히 다른 전주교대 캠퍼스도 그러했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학교행사와 과 행사,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수업들. 1학년 땐 새로 생긴 남자친구와 지내는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 버렸고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공부만 했던 내가 대학생, 성인이 되었다는 자유에 도취되어 놀고 마시는 데 또한 많은 시간을 들였다. 당연히 내 학점은 바닥을 기었지만 그에 대한 후회는 없다. 1학년이기에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조금 걱정 되는 것은 이제까지 내가 교사로서의 나의 모습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막연히 생각은 해봤다. 과거 내 어린시절의 나에게 상처를 안겨주었던 몇명의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또 무서운 선생님이 아닌 아이들과 동등한 눈높이를 가지고 친근하게 허나 만만하지는 않은 선생님으로 내 학생들과 1년을 보내리라고. 누구나 가지는 이상적인, 좋은 교사의 모습을 희미하게 그려왔다. 그렇지만 그 막연한 이미지를 넘어서 수업은 어떻게 진행할 것이며 학기가 아닌 방학중에는 무엇을 할지, 그리고 아주 먼 미래에 내가 중년의 선생님이 되어 있을 땐 어떤 비젼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을지 같은 구체적인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이번 학기 박상준 교수님의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학기 중 과제들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교사 비젼에 대한 글을 써야 하니 시간을 두고 자신의 미래 계획을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난 하지 않았다. 못한 것인가 안한 것인가 그 조차 모르겠다. 구체적이지 않은 나의 미래는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부임을 받아 30명 혹은 더 적은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이 됐을 때의 느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직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인데, 정말로 상상이 안간다. 설렘? 기쁨? 떨림? 두려움? 이보다 더 많은 세상의 모든 감정들을 섞어 놓은 느낌일까? 아니면 아무렇지 않을까. 내 아이들과 첫 대면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담담함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 대한 별 생각이 없단 것이고 무엇이 닥치든 자극받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짧으면 2년 안에, 길면 3년 이후에 내 아이들과 조우하게 될 텐데 나는 그들을 절대 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알지도 못하는 내 미래 제자들을 만날 상상에 가슴이 떨리기 시작한다.
성적, 1등에 매달리는 현대사회이지만 난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생각하는 초등학생은 노는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세상과 인사하고 발을 들여놓을 시기에 암기식 공부로 그들의 무한한, 천하에 대한 호기심을 덮어 버린다는 것이 그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한 일인가. 나는 최대한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을 우선으로 삼을 것이다. 정신적 성장이라고 인지능력만 포함하는 것이 아닌, 인지와 정서적 부분을 합칠 수 있는 그런 성장 말이다. 이를 위해 빠지지 않고 예체능 수업을 꼭 할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학문을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장이 바로 나와 내 아이들이 함께 하는 수업 현장에서 만들어지게끔.
교사로의 나의 비젼은 여기서 짧게 끝난다. 몇 십 년 후의 모습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나의 미래 모습에 대한 의심은 없다. 아이들을 우선으로 삼고 그들의 가능성을 키워주리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다면(물론 좋은 쪽으로) 그것은 교사로의 역할을 다 한것이 아닐까. 학생들의 귀감이 되고 그들 인생에 감화자가 될 수 있도록 꾸준한 노력과 고민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