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과 유하영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남들이 물불 안 가리고 좇는 입시, 돈, 명예, 권력 등이 나 역시도 당연히 죽는 날까지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되었다. 성적표의 숫자에 따라 학생들에게 대우를 달리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인생이 성적표의 숫자처럼 여겨졌다. 또 점점 그게 당연한 것 같았다. 그 때 내가 바라봤던 상황에서는, 교육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지독한 것이며 그저 내 성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학생들은 뜨거운 용광로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교사라는 직업도 학생의 성적만을 보면서 성적에 따라 교장선생님이나 학부모에게 시달리는 것으로 보였다.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삶과 학교 안에서의 삶이 분리되어 있는 듯 보였다. 평생 매일 매일 이런 교육 환경 속에서 교육의 흉내를 내면서 학생들을 바라봐야 하는 직업으로 생각되었기에 이 직업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서 꿈꿔왔던 선생님이라는 장래희망을 3학년 때 접었던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하고 궁금해 하며 공상하고 혼자서 힘들었던 날들이 있어 그 당시에는 그냥 철학과에 가서 별 생각 없이 이런 저런 공부를 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다짐하면서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수능을 치렀다. 부모님과 철학과를 걸고 약속했던 성적이 나오지 못하면서 평소에 교사가 되길 바라셨던 엄마와의 끊임없는 대전 끝에 그렇게 교대에 던져졌다. 나에게 깊게 자리잡아있던 학교와 교사, 그리고 교육환경에 대한 이미지와 또 경쟁과 나 자신만을 위한 공부에 익숙했던 나인지라 교육대학교는 당장 벗어나야하는 곳이었고 그 동안의 학창시절을 통째로 잃은 기분에 내게 1학년은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남부시장에서 남천교를 지나 학교를 오는데 피부에 느껴지는 바람조차도 우울했던 것이 생생하다.
그런 시간 동안 나를 벗어나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홀로 여행을 떠나 보기도 하고 이 곳 저 곳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기도 하고, 또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나의 있는 그대로를 마주할 수 없다는 것, 그러기에는 내 스스로가 누군지 모르고 나를 나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뭔가를 노력하고 무언가를 이룬다고 해도 뿌리와 기본이 나한테는 없다는 걸, 그렇기 때문에 그저 이를 끊임없이 채우려고 몸부림쳐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설령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영원토록 내가 꽉 붙들고 절대 놓지 않는 이런 것이 나한테는 없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보고 경험하는 것들, 매 순간순간 이끌려 쌓는 지식이나 성취는 초점 없는 축적이 되어버린다는 것과 나를 끊임없이 흔들 것이라는 생각에, 나의 매일 매일이, 내가 가는 곳이 어디일 지라도,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나의 모든 길을 연결해주는 그 무언가는 도대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지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빨리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만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렸을 적부터 “커서 어떤 직업을 가질거니?”, “너는 뭘 잘하니?” 등에만 대답하려고 한다. 물론 너무나도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오로지 그것에만 매여 갇혀있기에는, 특정한 직업과 그로부터의 특정한 이미지만을 생각하고 여기에 나를 가두기에는, 삶이라는 것은 내가 원해서 주어진 것도 아니고 내 능력으로 주어진 것도 아니기에 그 자체의 뜻을 먼저 물어야 하는 것 같다. 무언가 미래의 것을 간절히 바라고 좇아 살면서 불안 속으로 파고들고 경쟁으로 불을 지피기 이전에,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또 내가 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도 사실은 나를 가르쳐 주려는 스승이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해서도 돌아봤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에 대해서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했다. 나 역시도 많은 사람에겐 작아보일 수 있는 아픔을 겪었지만 지나고 보니 아이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내게 가슴 아프게 주어진 선물은 아니었을까 싶다. 또 주변 사람들에 더 귀 기울이고 배려하는 것이 부족했던 나의 성격은, 교대에 안 맞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벗어나야하는 또는 시간만 때워야 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깨어있어야 하는 곳이고 끊임없이 나를 가르쳐주고 배우게 하는 곳이기에 너무나도 필요한 곳이었다. 누군가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그것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부족했고 또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삶을 지금까지 여기로 이끌어 온 힘에 감사했다. 앞으로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은 이기적이게 행동하고 남을 돌볼 줄 몰랐던 어린 나에게 누군가가 준 보석과도 같은 선물인 것 같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그리고 내가 있는 이곳을, 나와 가까이 늘 함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싶다. 늘 노력하지만 항상 부족하다. “여기는 나와 적성에 맞지 않아. 내 타입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나 스스로를 불평하고 내가 만들어 놓은 스스로의 틀에 나를 맞추려고 했던 지난날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다시, 어디에 있던지 나는 변하지 않는 나라는 것, 그리고 내가 보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너무나도 귀중한 선물, 나와 함께하며 나를 가르치고 이끄는 스승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음악에는 칸타빌레도 있고 파시오나토도 있다. 어떤 시기에는 잔잔하게 흐르지만 어떠한 시기에 가서는 매섭고 강하게 흐른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폭풍처럼 몰아치는 힘든 순간에도 이 자체가 사실은 내가 알지 못하지만 계획 속에 전개되면서 여러 가지 얽혀있는 멜로디와 박자, 하모니 속에서 아름답게 흐르고 있는 나만의 음악이 아닐까. 각자의 아름다운 음악을 가진 우리의 아이들이, 또 자신만의 향기를 지닌 꽃과 같은 아이들이 지난날의 나처럼 경쟁과 시험의 소용돌이에 갇혀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조차도 남과 비교의 틀에서 느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에 하나뿐인 향기를 지닌,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꽃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으로 아이들 앞에 서고 싶은 것이 나의 꿈이다. 교사의 삶 역시도 가르치고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학습자의 자세로 말이다. 교사가 아니라, 동료 학생의 자세로 교사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함께 학습하는 탐구자, 친구로. 또 인생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뒤를 돌았을 때에만 이해된다는 어느 한 철학자의 말처럼 “나는 5년 뒤에는 무엇을 할 거야, 10년 뒤에는 무엇이 될 거야.” 등과 같은 것보다는 그저 이렇게 매일 매일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살고 그렇게 주어진 길을 걸어 왔을 때 뒤를 돌아보며 그 의미를 묻고 계속해서 묵묵히 걸어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