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

미술교육과 이건희

미래 교육 2014. 5. 30. 23:35

초등학생 때부터 내가 수능을 보고 원서를 쓰는 시기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초등 교사를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쯤에야 친구들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쳐 주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보다도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게 훨씬 재미있었고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저 정도는 그릴 수 있는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학원에 다니면서 뒤늦게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들보다 내가 그린 그림이 훨씬 나았다. 단지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 입시를 준비할 수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한참 내가 정시 원서를 쓸 때쯤 미대로 유명한 홍익대가 실기 점수 없이 성적만으로도 미대 학생을 뽑겠다는 공고를 냈었고, 정시 원서를 모두 미대 쪽으로 내볼까하는 고민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시 원서를 쓰기 직전에도 나는 초등 교사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미대가 아니더라도, 워낙 학벌이 좋았던 언니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에 서울의 상위권 대학 중에 한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교대는 전혀 고려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인생은 자기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수능을 망쳤기 때문이었다. 재수를 할까하고 낙심하고 있는 와중에 엄마 아빠를 보니 도저히 재수는 할 짓이 아니었다. 고3 수험생활 1년 만으로도 가족들을 지치게 했는데, 한 해를 더 할 자신도 없었고 재수하는 건 가족들에게도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국의 대학교 중에서 교대는 가장 현실적으로 안정적이고 갈 만한 곳이었으며, 대학 이름을 말했을 때 부끄럽지 않을 만한 곳으로 적절했다. 동기들이 들으면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교대를 선택한 이유는 고작 그런 것이었다.


등 떠밀리듯 교대에 입학하고 나서 한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다른 학생들은 미술이나 음악 체육 등을 힘들어했는데 그런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어린 아이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싫어했다. 귀찮고 성가시다고만 생각했다. 6살 5촌 조카하고도 눈도 마주치지 않을 만큼 어린 아이를 안 좋아하는데 내가 초등 교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계속 생각했었다. 솔직히 1학년 첫 실습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웠었다. 하지만 첫 실습에서 만난 9살 학생들은 날 좋아해주었고, 성가시다고 생각했던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나에게 아낌없는 호의를 보여주었다. 내 손가락을 잡던 그 조그만 손에 의해, 아쉬웠던 수능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을 수 있었다. (근데 지금도 나는 어린 아이들을 싫어한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좋아하지만.)


교대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을 한 이상 교사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 때 도움이 된 것은 독서였다. 고향의 도서관이나, 우리 학교의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 본 책은 현직 교사들이 쓴 수기였다. 현직에서 느끼던 선배 교사들의 감정이나 돌발 상황 등에 대해서 일기처럼 적혀 있는 책들을 아주 많이 읽었다. 현직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할 수 있었고, 내가 교사가 된 후를 상상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그런 질문을 수없이 많이 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나는 참된 교사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정의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교수님들이 말씀하시는 참된 교사상에 맞는 교사는 나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학생들에게 교과 지식을 잘 전수하고,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정도의 교사가 되고 싶지 학생들에게 모든 걸 헌신하는 그런 어머니같은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런 나를 비난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약속하건데, 나는 학생들을 방임하고 외면하는 교사는 되지 않겠다. 물론 그것은 교사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도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 도리도 지키지 못하는 교사가 현직에 얼마나 많던가.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나처럼 하고 싶은 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반대나 환경의 제약으로 하고 싶은 재능을 싹틔우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정말로 미술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있다면, 담임교사로서 그 학생을 격려하거나 북돋아주는 것만으로도 재능을 내보이고 그 길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하고 싶은 길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이 원하는 길로 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턱없이 모자란 목표라고 비난한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지만, 이런 생각들을 마음에 갖고 무사히 교사가 될 수만 있다면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