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

수학교육과 손성원

미래 교육 2014. 5. 31. 12:06

내 아주 어렸을 적 꿈은 신부님이었다. 신부님이 돼서 많은 신자들에게 세상을 올바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생활에 평화를 주고, 그들의 속 이야기를 듣고 같이 힘들어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는 것이 내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신부님이 되는 것은 나에게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과정들이 너무 많았고, 또 엄청난 인내를 요구했다. 물론 이러한 것 외에도, 결혼을 하지 못한다던가, 성직자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제약이 따랐기 때문에 쉽게 성직자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점점 흘러서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내 꿈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정은 교사였다. 사실 내가 이 같은 결정을 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분은 중학교 2학년 때 영어 선생님이었다. 영어 선생님이 하는 수업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흔히 영어 수업을 생각하면 무조건 암기하고, 딱딱한 과목이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선생님 수업은 정말 독특했다. 그냥 영어를 주입식으로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 당시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을 들어보면 거의 주입식으로 가르치고, 무조건 받아 적으라는 식의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이 선생님께서는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준비하셨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영어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일단 낯선 영미 문화권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메울 수 있는 것을 찾아봐야겠구나.’ 그렇게 해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여러 팝송을 들려주기도 하였고, 팝송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구문들을 쉽게 가르쳐주셨다. 또한 그 나라의 문화권이 어떠한지 자세히 알려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흥미 없어하는 과목을 흥미 있게 만들어 주셨다. 이 선생님은 수업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훌륭하셨다. 5.18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고, 우리나라 현재의 정치에 대해서 안타까운 부분도 자세히 알려주셨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과의 상담을 즐겨하시고, 아이들과 깊은 마음 속 이야기도 나눌 줄 아셨다. 이런 선생님을 보면서, 성직자와 비슷한 어떤 소명의식이 있는 영어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때까지 그 꿈을 가지면서 생활해왔다. 하지만 수능 시험을 본 결과 나는 내가 원하는 사대 영어교육과에 가기에는 성적이 조금 모자랐다. 그래서 그보다 조금 낮은 교육대학교에 지원했다. 교육대학교도 마찬가지로 교사가 되는 곳이긴 하지만 나는 원래 중,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교육대학교에 온 큰 이유 중 하나는 사실 안정성 때문이다. 사범대학교는 임용에 합격하기도 어렵고, 중,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생각했던 것이 교육대학교였다. 교육대학교는 임용에 합격하기도 쉽고, 상대적으로 중, 고등학생보다는 지도하기가 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교육대학교에 지원한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선생님의 모습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가 되면 아이들과 같이 뛰놀고, 소풍가고 운동하고, 여러 곳을 여행해보고 싶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이 많이 남아야 하는데, 중, 고등학교는 수업도 늦게 끝나고, 여러 업무에 치이다보면 시간이 많이 모자랄 것이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는 수업도 일찍 끝나고 상대적으로 업무도 적기 때문에 이런 활동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교육대학교에 입학했고,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다. 3년 동안 나는 초등학교 교사에 적합한가 끊임없이 고민했다. 교대 생활을 하면서 많은 실습도 다녀왔고, 멘토링도 해보았고, 교육봉사도 해보았다. 그렇게 다양한 초등학생들을 만나고 지도하면서, ‘정말 초등교사가 쉬운 일은 아니구나, 내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를 느꼈다. 그 어린 아이들, 예쁜 눈으로 나만 바라보며 ‘선생님!, 선생님!’하는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아이들이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첫 단추를 잘 꿰어줘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며,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소중한 초등학교의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직 내가 교사가 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교사가 됐을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은 많다. 초임교사가 되었을 때에는 주변의 많은 선생님으로부터 관심을 받으며 생활할 것 같고, 아직은 처음이라 많은 업무나 수업이 익숙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업무에 쫓기다보면, 아이들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지 못할 것 같지만 내 여가 시간을 조금씩 쪼개서, 수업 연구도 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보고, 다양한 학부모와도 교감을 나누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지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지금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 지 아직은 막막하다. 멘토링을 통해 여러 학생들을 가르쳐본 결과 내가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그에 따라오지 못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정확히 알아야 배우는 사람도 혼동하지 않고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지식만 전달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과 진정으로 교감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공부만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꿈을 실현하게 도와주고 싶다. 그 꿈이 바뀔지라도, 자신이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또한, 아이들은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모른다. 틀에 박힌 예절은 아니더라도, 어떠한 상황에서 해야 하는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을 구분할 수 있게 도와주고는 싶다. 이렇게 인성교육을 강화해서, 착한 어린이, 사회에 해를 끼치기 보다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어린이로 길러 주고 싶다. 퇴직 후에는 다양한 단체에서 봉사하며, 마지막 생을 아내와 함께 자연에서 농사를 지으며 보내고 싶다.
이 꿈들이 비록 거창해 보일 수는 있지만 하나하나씩 실현해갈 것이다.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또 시간이 많이 흐른다면 나도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되어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초심 잃지 않고 변함없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아낄 줄 알고, 아이들이 사랑 속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사랑이 가득한 교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