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

윤리교육과 20140009 문재웅

미래 교육 2016. 5. 29. 19:51

  비전이라는 단어를 몇 번 곱씹어 봤는데 입속에서 맴도는 것이 단물 빠진 껌을 씹는 것 마냥 괜히 불편한 감이 있다. 내게 있어 비전이란 단어가 너무 낯설기 때문인데 독서와 거리가 좀 있어서인지 몇 번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이고, 그렇기에 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드물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드물다는 표현도 약간 과장이다. 어쨌든 계속 불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비전이 나의 인생의 설계도, 밑그림을 뜻한다고 했기에 구체적인 꿈이나 목표를 의미한다고 이해했다. 꿈이라고 하니까 조금은 낯선 감이 덜어지긴 한다. 교사로서의 꿈이라고 한다면 작년 2학기 교육철학 수업에서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아주 가끔씩 했던 생각들을 여기에 정리해봐야겠다.

  난 교사가 되고 싶어서 교대에 온 것이 아니다. 2 때까지만 해도 전주교대가 한옥마을 너머에 있다는 것만 알았지, 내가 교대를 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가끔씩 차를 타고 전주교대 뒤편의 도로를 지나갈 때, ‘저기가 이모, 이모부가 나온 학교구나.’ 딱 이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대는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곳인데, 초등학생 때 나는 학교에서 손에 꼽히는 문제아였다. “선생님! 누가 누구랑 싸우고 있어요!”와 같이 반은 걱정이 담겼고 반은 들뜬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지면 거의 나와 내 친구들에 대한 말이었다. 선생님들 중에는 나를 체벌로 통제하려는 분들도 있었고, 아예 손을 뗀 분들도 있었으며, 오로지 말로 타이르는 분들도 있었다. 중요한 점은 선생님들이 날 대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 나 때문에 고생하셨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랬던 내가 선생님이 된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눈을 몇 번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어느덧 고3이 되어 있었다. 내 주변도 바뀌었는지 내 의견을 존중해주던 부모님이 태도를 바꾸어 날 교대에 보내고 싶어 하셨다.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안정적인 수입 때문이었다. 짜증은 났지만 별다른 저항 없이 공부만 했고 또 몇 번 눈을 감았다 떠보니 교대에 입학해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내 수능성적은 적어도 상위권 대학을 할 수 있는 성적인데 왜 난 교대에 와 있는 거야?’ 이런 불만만 가득한 채로 1학년을 보냈다. 불만이 가득한데 표출할 데는 없으니 거의 모든 수업을 3번씩 빠졌다. 그리고 2학년이 되었다. 불만은 조금 누그러져 있었고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고등학생 때 의견을 표현하지 않았던 내 잘못이 큼을 인정하고 군대로 현실 도피를 해야 하나 고민하며 병무청 사이트를 드나들던 습관도 버렸다.

  수업을 빠지는 횟수를 줄여가며, 습관을 바꾸며 2학년 1학기를 보냈고 2학기가 왔다. 2학기 수업 중에 교육철학이 있었다. 그때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각자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를 써보라고 하셨다. 처음엔 그냥 별 생각 없이 체벌하지 않는 선생님이라고 끄적였다가 곧바로 지웠다. 이건 성의 없지 않은가. 생각 좀 해보자.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을 하던 와중에 문득 생각이 옆길로 새서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떠올랐다. 친구들과 초중고 시절을 얘기할 때 항상 나오던 선생님에 대한 얘기가 떠오른 것이다. “그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었다.” 딱히 별 이유 없이 이렇게 끝나는 몇몇 선생님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그때 구체적인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일단 큰 목표를 학생들이 나중에 커서 학창시절을 돌이켜 볼 때 문재웅 선생님은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다.”고 얘기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로 정했다.

  나의 교사로서의 목표가 너무 막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은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 1, 2학년 때 교생실습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의 나처럼 끔찍하지도 않고 각자 나름대로 고민이 있다는 것을 느낀 후로 아이들에 대한 거부감이나 교사란 직업에 대한 불만도 거의 사라졌다. 여전히 모르겠는 것은 어떻게 해야 내가 세운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이다. 체벌을 하는 선생님을 무조건 싫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 말로만 타이르는 선생님을 무조건 존경하고 따랐던 것도 아니다. 나는 무슨 이유로 어떤 선생님은 존경하고 어떤 선생님은 싫어했던 것일까. 다행히 한 가지는 찾았는데 선생님이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였다. 중요하지 않은 주제라도 나와 자주 대화를 하고 내가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관심을 가지는 그런 선생님을 난 지금도 좋은 선생님이라고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었다.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가능한 대화를 많이 나눠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뭔가 부족하다. 나 스스로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나의 행동과 말을 고치자고 생각은 한다만, 생각과 다르게 몸이 바로 따라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비속어가 가끔씩 튀어나오고 있고, 행동 또한 중학교 시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철없는 행동이 가끔 튀어나온다. 차차 바뀌어간다면 교사가 됐을 때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다. 실습을 나갔을 때, 아이들에게 담배 냄새를 맡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실습이 끝나고 완전히 그 동네를 벗어날 때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또한 아이들 앞에서는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비속어를 쓰지 않고 2학년 교생 실습일주일이 다 끝나갔는데, 마지막 날에 쉬는 시간에 복도에 나와 친구와 통화하는데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짧게 비속어를 뱉었고 그것을 우리 반 아이에게 들켰다. 그때 아이가 날 쳐다보는 눈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교생실습이 끝나고 집에 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더욱 말과 행동에 조심을 해야겠다고 곱씹었다.

  목표와 방법이 조금이나마 정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남들은 교사를 목표로 해서 교대에 왔기에 고민을 한 시간도 많을 것인데, 나는 이렇게 짧은 시간을 고민해놓고 이것이 나의 비전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의 나의 목표는 이렇지만 내가 공부를 더 하고 많은 것을 배워가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일단은 막연한 목표를 품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