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래의 나의 삶으로 교사를 처음 꿈꿨던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가졌던 가장 처음의 꿈은 이순신 장군이 되는 것이었고, 갓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공룡을 연구하는 고고학자였다. 그러다가 만화가로, 다시 만화가에서 곤충 학자로 꿈이 바뀌곤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일까? 종교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자기소개서의 장래희망 란에 선교사라고 써내게 되었다. 그 꿈이 더 부풀은 것인지, 아니면 선교사라는 직업이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서였는지 목사가 되는 것으로 나의 미래의 이상을 바꾸었다.
그렇게 고등학생 때까지 목사라는 꿈을 간직한 채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간의 지조 있는 태도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나의 마음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나는 신앙심이 부족해서 온전히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것 같다.’라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가? 아니,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 고민 끝에 나온 답은 바로 ‘교사’였다.
왜 하필이면 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진로를 고민하면서 나의 모든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부모님, 친구, 그리고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그들은 나에게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은 내 곁에 있으면서 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떠올리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것이었구나.’ 다른 이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최선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내가 받은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해주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제야 ‘그래서 내가 연애 상담하는 걸 좋아했구나.’, ‘누군가 나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거나 고민을 털어놓을 때 그렇게 기분이 좋았구나,’하며 내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가장 중요한 때에, 가장 중요한 삶의 방향을 잡는 이들에게 내가 긍정적으로 봉사하고 기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지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초등학생들에게 내가 선생님으로서 정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이런 과정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의 그 다짐을 잊었는가? 좋은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도움을 주어 삶의 선택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게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그 다짐은 어디 갔을까? 그리고 바라본 현재의 나는 학교 공부와 과제에 끌려가고 있는 모습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시 다짐하게 되었다. 다른 이들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학생들을 마음 깊이, 그들의 입장이 되어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그래서 정말 그들이 원할 때, 그들이 필요로 할 때, 그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교사가 되자. 곁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인내하며 사랑할 줄 아는 교사가 되자. 그래서 그들이 그들의 삶의 방향을 더욱 더 아름다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사가 되자.
5년 뒤, 나는 막 군에서 전역해 교직생활에 적응하고 있을 것이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 1년여 간의 짧은 교직생활을 보내긴 했지만 그때마저 파악하지 못했던 교사로서의 실질적 업무, 그리고 노하우에 대해 알아가고, 다시 학생들을 마주하면서 그들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대접받고자 하는 욕심을 온전히 버리고, 진정으로 포용하고 인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직 연륜이 묻어나지 못하고 아등바등 애만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10년 뒤, 나는 휴직을 한 뒤, 원래 군 대체 복무로 가려고 했던 코이카에 지원해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소망하기에는 몽골이나 네팔, 이마저 안 된다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고 있을 것이다. 국어교육을 전공한 교육대학 졸업생으로서 한국어 교육 봉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교육하는 기술을 개발시키는 목적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목적은 아직 버리지 못한 내 욕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나를 내려놓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을 보낸 뒤 나는 마치 득도한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이해해줄 수 있고 진정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교사의 모습을 띄고 있을 것이다. (성과급이나 연금에 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할 것은 하는 진취적인 교사일 것이다.)
20년 뒤, 코이카에서의 봉사활동이 끝난 뒤 나는 이전부터 해오던 교육 분야의 공부를 재개하고 있을 것이다. (정치와 교육 분야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뒤, 초등교원으로서, 혹은 일이 잘 풀렸다면 장학사나 교육연구원으로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전보다 더 의욕이 불타올라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다. 탁상공론의 연구가 아니라 교육 제도와 교육 내용, 교육 환경 등 실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 농업정책을 세우고 있는 작은 누나와 함께 당국의 교육 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농업과 관련하여 식량주권을 지키고, 녹색 성장을 지향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는 교육 정책을 세우고자 하고 있을 것이다. (타국에 지나치게 종속되지 않고 자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의식을 길러주고자 한다.)
30년 뒤, 나는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전원학교(나이 제한이 없음)를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자연과 함께 자라고 그 자연 속에서 노작활동을 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태도, 순수한 심성, 자연 친화적인 심성을 길러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책상에 앉아있는 선생님이 아니라 직접 수업도 하고 같이 노작활동도 하는 아버지 같은 선생님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 교육은 기본적인 소양 수준까지 이루어지도록 해 자유로운 시간을 늘려줄 것이다.(물론 검정고시는 필수적으로 치루게 할 것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학생이 스스로 장기적인 자기개발 계획을 세우도록 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흥미를 기르고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 알아서 각자 하도록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들을 지도하는 교사로서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적절한 방향과 수단에 대해 끊임없이 강구해야할 것이다.
(재원은 학생들의 과외 활동이 가급적 생산적인 활동이 될 수 있도록 해 이 활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충당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국가와 연계해 특성화 학교로 신청하여 국가의 지원을 받는 방향으로 비용을 감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