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그동안 만났던 선생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두 명의 선생님이 떠오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 첫 번째 교사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으로,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게 해주신 분이다. 선생님은 열정이 대단한 분이셨다. 몇 시간 계속 수업하다보면 지쳐서 나중에는 설렁설렁 가르치거나 컴퓨터로 대충 때우고 넘어가려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항상 활력이 넘치고 미소를 띤 얼굴로 우리를 대하셨고, 우리가 수업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그 방법을 고민하며 항상 새로운 수업재료를 준비오셨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지만 내가 무엇보다 이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편견 없이, 차별 없이 진심으로 대하셨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집이 잘 살든 못 살든, 얼굴이 예쁘든 예쁘지 않든 편애하지도 않으셨고, 소홀히 대하지도 않으셨다. 우리 반 아이 두 명이 싸웠을 때가 있었다. 한 명은 말썽꾸러기였고, 다른 한 명은 말썽을 피운 적 없는 조용한 아이였다. 그때 선생님은 싸운 이유를 들어보시고 그 두 명에게 똑같이 벌을 주셨다. 그동안 말썽을 많이 부렸던 아이를 혼낼 것이라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이 빗나간 결과였다. 선생님은 싸운 이유가 무엇이었건 싸운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교실에서 소란을 피우고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준 아이 두 명에게 똑같은 벌을 준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나는 '아, 선생님이란 저런 것이구나. 훌륭한 선생님이란 차별없이 모든 학생을 대하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꼈다. 난 이 선생님을 보면서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처음 갖게 되었고, 어떤 교사가 좋은 교사인지를 생각해보며 교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두 번째 교사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왜 선생님이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열정도 없어 보였다. 그 선생님은 컴퓨터로 학습내용을 띄워놓고 우리에게 그것을 받아 적으라고 해놓고는 밖에 나갔다가 2,30분 뒤에 다시 와서 약간의 설명을 하고는 수업을 끝내었다. 그리고 그 분은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만 좋아하고 신경써 주었다. 그것을 다른 학생들이 모두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학생들 거의가 그 선생님을 싫어했다. 난 그 선생님을 보면서 '내가 꿈꿔왔던 교사라는 인물은 저런 사람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교사라는 직업에 약간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저런 교사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을 바로잡고 교사의 꿈을 놓지 않았다. 이 선생님 때문에 좋은 교사가 되어야 겠다는 나의 꿈을 한층 더 발전시킨 계기가 된 것 같다. 내가 교사가 되어서도 가끔씩 나태해지는 날 발견할 때 모두가 싫어했던 이 선생님을 떠올리며, 그렇게 되지 않으려 부지런히 채찍질 할 것이다.
차별, 편애, 낙인, 나태, 안주, 무관심, 열정부족…. 모두 교사가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학생들 모두를 각각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그들의 조건에 따라 차별대우 한다면 그것은 교사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특정 학생을 편애하여 다른 학생들에게 소외감과 사랑받지 못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잘못을 몇 번 한 학생이라고 해서 문제아로 낙인 찍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교사는 더더욱 문제이다. 그리고 교사는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되며 나태해지는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교사가 되고 나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고 발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교사들이 너무나 많다.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아도 계속 유지되는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이 만들어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철밥통'이라 비유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만큼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 사회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식과 태도, 인생관 등 삶의 모든 영역에 관해 가르치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사가 자신의 안정된 지위에 안주한 채 학생들에게 무관심하고 열정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진정 교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데 뭐' 하면서 스스로 합리화 시키기 보다는 '나 먼저, 나부터 좋은 교사가 되어야지'라는 마음으로 항상 노력해야 할 것이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5년 후에는 나는 아직은 부족한 현장경험과 통찰력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교사가 된지 오래 되지 않아 어떤 것이 정말 아이들에게 좋은 것인지,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인지,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등 아직은 구체적인 방법을 확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수업 재료와 방식, 학생을 대하는 방법 등을 고민하고 시도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 눈앞의 문제해결과 대처에만 급급해 수업 전반에 대한 통찰이나 아이들을 원만하게 통솔하지 못할 수 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는 말처럼 숲을 보기 위한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10년 후에는 어느 정도 교사라는 직업에 익숙해지고 자신만의 노하우나 경력이 쌓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고 더 이상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아 나태해지는 자신을 경계하고 채찍질해야 할 것이다. '발전 없는 교사는 죽은 교사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을 때의 포부,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의 열정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교육대학원이나 어학연수, 유학 등의 새로운 배움의 장에 뛰어들 것이다.
20년 후의 나는 어느새 40살이 훌쩍 넘은 나이일 것이다. 내 자식도 어느덧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일 것이고, 그래서 나는 교사이자 학부모일 것이다. 전보다 학부모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학생에 대해서도 내 자식처럼 보다 더 애틋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학부모가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해주는 것이므로 정말 모두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무한한 관심을 갖고 잘못을 했으면 혼내어 바로잡고 착한 일을 하면 칭찬하고 격려해주어 학생들에게 선생님이자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30년 후에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일 것이다. 나이 든 교사에 대한 시선은 두 가지이다. 그 동안의 경험에 대한 존경, 그리고 나이 들어 자리만 채우고 있는 늙은이라는 무시. 나는 후자에 대한 평가를 듣지 않기 위해 그동안 노력했을 것이지만 더 노력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왜 교사가 되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그 신념을 잊지 않고 아이들을 모두 포용하고 이해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비록 젊었을 때보다는 그 노력이 더딜 수는 있겠으나 항상 학생에 대해 고민하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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