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어렸을 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날짜까지는 아니지만 언젠지 정확히 기억난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그 장면이 아른거린다.
초등학교 5학년, 마냥 어리기만 했던 12살에 나는 남들보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많았다. 학원을 다니기는 했지만, 그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배우는 학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오롯이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그랬을까, 나는 교과서를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열심히 보고, 정말 배우는 것이 즐거워서 공부를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중학교 때부터 공부는 나에게 힘들고 짜증나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을까. 당시 공부를 좋아했던 나의 성격 덕분에도 있겠지만,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 선생님을 만난 5학년 때부터 교사의 꿈을 키웠으니까.
선생님은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으셨다. 그렇다고 너무 무뚝뚝하지도 않으셨다.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할 때는 애정을 주시고 단호하게 대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하시는 분이셨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이 제일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다른 부분에서 큰 감화를 받았다. 그 선생님께는 다른 분들과 다른 어떤 것이 있었다. 그것이 피아니스트였던 나의 어릴 때의 진로까지 바꾸게 하였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게 했으며, 여전히 나의 길로 삼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다림’이었다. 내가 5학년일 당시에 그 전까지는 못 느껴본 기다림이었다. 물론 다른 선생님들도 나를 어떤 방식으로든 기다려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독 그 선생님께서 기다려준 그 시간이 나에게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그만큼 그 선생님께서 기다렸다는 것이 나에게 크게 보일 정도였다는 뜻이었겠지. 아무튼 내가 학업에 열정이 많던 그 때, 나는 수학을 배우다 모르는 개념이 생겨 방과 후에 선생님께 여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다리꼴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이 왜 그렇게 되어있는지 궁금했었다. 사실, 선생님도 사람이니까 방과 후에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 귀찮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선생님께서는 어떤 질문이든지 좋다는 얼굴로 나에게 그것을 다시 설명해주었다. 설명하실 때도 문장으로, 주입식으로, 답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공식을 유도할 수 있게끔 힌트만 주고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하지만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 선생님이 전혀 재촉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져서 나를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후, 내가 몇 번의 틀림 끝에 옳게 공식을 유도하자 선생님께서는 아주 잘했다며 환하게 웃어주셨다. 그 기다림과 그 웃음으로 인해 나는 더욱 공부를 재밌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그 선생님을 나의 롤모델로 삼고 있다. 나는 교육에 대한 질문이 나에게 올 때마다 그렇게 생각한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지식만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것이 교육일까. 어쩌면 교육이란 근본적으로 생각해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도록 기다려주고 옆에서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교사가 되면 나의 교육관이나 교육 철학 등 더욱 많은 것을 자세히 생각해야겠지만 그것을 생각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내 주관, 교육은 기다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직접 학생의 입장에서 깨달은 것이니까. 교직 생활이 힘든 날이 와도 5학년이었던, 내가 학생이었던 그 날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