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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과 김보은

미래 교육 2018. 12. 2. 02:42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대학을 선택하던 그 날까지 역사교육과 진학을 꿈꿔왔다. 그 배경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주말이 되면 청소년 지도 활동을 하시던 아버지와 동네 친구들과 함께 지역 탐방을 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즈음 찾아가는 역사 탐방을 주제로 1년간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제주 4·3 사건의 피해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동굴에 직접 들어가 보기도 했고, 제주어 수업을 전문적으로 받기도 했다. 때로는 가정에서의 ‘나’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된 것 같아 속이 많이 상하고, 서운했을 때도 있었다. 가족 여행 대신 친구들을 데리고 서울 놀이동사네 가셨던 일, 동네 친구들과 소풍을 가셨던 일, 정말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몸소 나에게 무언가를 계속 보여주셨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서 벗어나며 더 시야가 넓어졌던 순간들이 찾아왔고, 나보다 더 힘든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교육 접근 기회가 한정된 아이들을 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막연하게 그들을 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을 위한 사람은 교사라는 직업으로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교사 중에서도 역사 교사가 되어 ‘우리나라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노라고’ 희망을 전달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6년간 갈망해왔던 학교를 포함한 대학들의 합격자가 발표되고,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경험, 한 가지의 전문 분야, 둘 중 어느 것이 내가 만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일까. 다양한 경험을 선택했고, 교대에 진학했다. 다양한 경험을 이유로 교대에 진학했기 때문에 입학하고 근 2년간 정신없이 보내왔다. 봉사 활동, 자치기구 활동, 대외활동, 동아리 활동, 여행 등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보냈다. 다양한 경험을 한 교사일수록 아이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또한 교사의 다양한 경험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있어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려 했던 이유는 가르치는 교사보다는 학생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사가 단순히 오래 살았던 이유만으로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보다는 학생들 개개인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학생들과의 삶 속에서 학생들에게 배울 점을 배우는 등 그들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학생들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학생들은 서로를 이해해 주기 시작할 것이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법을 알게 될 것이고,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성적이라는 단일한 기준이 아닌 아이들 각각에 맞춰 바뀌어 나갈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런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내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깨닫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하고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 않냐. 쉬면서 해라.’라고 물었을 때 ‘힘들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언가를 하는 과정을 한 번도 노동의 과정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내 자신이 성장해 가는 것을 느꼈고, 변화하는 모습을 체감했다. 미래에 만날 아이들이 이러한 나의 영향을 받을 생각을 하니 힘도 났고, 가까이에는 나의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같이 변화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힘이 나는 것 같다. 그래서 교대에 입학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도 없고, 많은 직책에 있으면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선택했던 내 자신을 원망했던 기억도 없다. 하루하루 성장한 것처럼 배워가는 기쁨을 알며, 최대한 많은 것을 겸허히 배워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겸손하게 삶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배워 나가고 싶다. 나를 부르신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만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 사람 냄새가 나는 교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