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의 꿈은 교사였다. 왜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막연히 선생님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고 난 누군가를 가르치며 내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 좋았다.
벌써 교대를 다닌 지 3년째에 접어들었다. 아직 나는 22살이고, 진짜 교사가 되어 현장에 나가면 24살이다. 밖에 나가면 성인이라고, 어른이라고 존중받고 존댓말을 듣지만 난 내 자신이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철이 없고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할 수도 없으며 가치관들이 확립되어있지 않다. 2년 뒤에, 내가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 우러러보는 대상이었고 크게만 보였던 선생님이 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또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벌써 실습을 2번이나 갔다왔다. 고작 일주일 밖에 안 되는 시간들이었지만 가서 뭔가를 얻고 느꼈다. 어색하기만 했던 ‘선생님’이란 호칭을 들으며, 책임감이 생기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 서는 직업이고,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본보기가 되기도 하고 또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힘이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속, 머릿속에 박혀버릴 수도 있다. 한 반의 분위기는 선생님이 좌우하는 듯 보였다. 쾌활한 반이 있었고 조용한 반이 있었고 경쟁적인 반도 있었다. 얼핏 담임선생님의 색깔이 묻어났다. 교사는 지식 전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나 그 의미는 매우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초등학생 과외를 한 적이 있다. 4학년 여자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담임선생님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너무 바빠서 같이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선생님이 너무 바빠서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많은 신경을 못써준다고 하였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도 있고, 나쁜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지만 선생님은 보고도 모른 척 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여자아이는 나에게 고민상담도 하고 교우관계에 관한 조언을 구하거나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선생님은 첫째로 아이들과 자유롭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한 학급의 방관적인 지도자가 아닌 하나의 같은 구성원으로서 아이들과 많이 부딪히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세심하게 신경 써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달걀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과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학생이 아무리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교사와의 소통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반대로 교사가 아이들을 끔찍이 생각하고 신경써주고 싶어도 서로의 소통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나중에 반 아이들과 메신저 대화도 하고 문자도 하고, 반 홈페이지를 운영하여 활발한 소통을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과 기억을 남겨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10년 전, 나의 초등학교 생활을 떠올려보면 그다지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나 추억이 없다. 부설초로 실습을 갔을 때,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많이 노력하시는 선생님이셨다. 칭찬스티커를 주고 학기말에 가장 많이 모은 아이들을 선생님 집에 초대하여 직접 요리해서 밥도 먹고 같이 놀러가기도 하고, 또 반 아이들과 사진도 많이 찍어서 게시판에 붙여 놓기도 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나는 아이들과 소통하며 교류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또 사제지간 그 이상, 인간과 인간으로서 삶의 한 페이지를 같이 쓰는 관계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추억과 인상으로 남고 싶다.
5년 후, 나는 아직은 모든 것에 서툴러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낼 것 같다. 이상적인 학교 생활을 꿈꾸며 학교라는 곳에 발을 디뎠는데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로 힘들어 할 지도 모르겠다. 시내에서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을 것 같지만, 시골에서 소수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한명한명에게 신경 쓰고 소통하는 방법 등을 익히고 싶다. 또 대학원을 다니면서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는 아동심리나 상담, 미술치료 등을 공부하고 싶다.
10년 후면 나름 교직생활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수업기술이 늘었다고 자부하며 수업준비에 소홀하고 자기계발에 소홀해질 것 같다. 자만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10년 후 부터는 시내에서 많은 아이들로 구성되어진 반을 맡아 아이들과 소통하고 친근하게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친구처럼, 이모처럼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20대의 활발하고 생기 넘치는 열정과 30대의 여유로움을 갖춘 선생님이 되고 싶다.
20년 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자기계발에 힘써서 경력과 실력을 쌓고 싶다. 그리고 40대가 되면 보수적인 학교에서 보수적인 생각에 찌들게 되어 아이들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것 같다. 내 잣대로 아이들을 재고 판단하고 보수적인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대하지 않도록 스스로 깨닫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과도 소통하고 활발하게 상호작용하고 교류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또 20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으니 내 스스로 노하우나 많은 경험을 토대로 느낀 것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초임 교사의 멘토가 되어 후배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기도 하다.
30년 후, 한 학교의 교감이나 교장이 되어 훌륭하고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하고 그냥 평교사로 계속 아이들 곁에 머무르고 싶기도 하다. 나이가 많다고 너무 권위만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에게 다가가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교감이나 교장이 된다면 아이들과 약간은 멀어질 것이다. 그때는 등교시간에 교문 앞에서 길건너기 지도 등을 하며 아이들 한명한명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아이들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 내 말만 하고 조언을 하기 보다는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니만큼 세대차이도 점차 커져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에 발빠르게 적응하고 아이들의 관심사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작년에 나이가 많으신 교수님께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시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시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그 교수님처럼 나도 나이는 많지만 마음은 소녀 같고 20대의 열정을 지닌 멋진 교감, 교장 선생님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