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신다. 그래서 나는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분을 통해서 내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선생님을 만난 건 정말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선 굉장히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정말 그걸 아니?”라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도 “네. 정말로 알아요.”라고 말씀드린 게 기억이 난다.
나는 중3 때까지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다른 또래 아이들과는 어떤 측면에서 꽤나 상이한 어린 시절과 사춘기를 보냈다. 중 2쯤 돼서야 그렇게 자신이 어딘가 결핍된 상태에 있고, 어쩔 수 없이 불행하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모님을 너무 많이 원망했다. 하지만 나중엔 포기한 동시에 받아들였다. 어느 정도 부모님도 불완전한 분들이라는 걸 조금은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원망만 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계속 불행할 거라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다. 중 3이 되어서는 조금씩 내가 인지하는 범위 안에서는 계속 바뀌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1이 되었고,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났다.
의외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힘든 일에 직면할 때마다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생님이나 어른을 만나지 못하고 어른이 된다. 하지만 나에겐 힘든 일에 직면할 때마다 ‘선생님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 ’ 라고 떠올릴 수 있는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신다. 그 분은 학교 선생님은 아니시지만, 나에게 존경하는 어른의 일면을 보여주신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에게 ‘교사로서의 비전’은 그 분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어른이자 교사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분명히 많이 있다. 물론 그것들을 아직 전부 알 수는 없고, 또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22살 예비 교사인 내가 지금 아이들을 위해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몇 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첫 번째로,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나는 그런 교사야말로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교사상이다.
두 번째로, 수업 시간에 교과서뿐만 아니라 다른 외부의 자료도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과서는 국가에서 검열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 교과서만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건, 수업하는데 있어 교사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수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자료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자료들을 보면서 직간접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교생실습 갔을 때, 담임선생님께서 닉 부이치치의 동영상을 수업시간에 틀어준 적이 있는데, 참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 두 가지에서부터 좋은 교사가 되려고 시도할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 즉 시도 또한 일종의 ‘창조’라고 본다. 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창조를 하려고 한다. 창조를 하는 데는 고통과 긍정적인 경험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삶의 특정 시점에서 영원히 끝나는 것도 아니다. 새삼스레 어렵게 느껴지지만, 나는 나 자신을 긍정하는 바로 그 ‘가장자리’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