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의 친구나 웃어른들은 내가 교대를 다니게 될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교대를 올 때에 나 자신과 그리고 가족과 내외적으로 많은 갈등을 하였다. 그런 상황은 교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여전하였고 많은 갈등 끝에 우선 군대를 가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지금 교대를 계속 다녀야겠단 마음을 다짐하게 된 계기는 군대에 있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일을 하다가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며 많은걸 느끼게 됐다. 앞길에 대한 청사진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다 입대한 사람, 당장 재대하면 뭐 해야 할지 진로를 고민하던 사람,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자신의 꿈을 포기한 사람. 물론 금수저의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이고 대다수가 전자에 속했다. 내가 교대생이란 이유로 이러한 사람들이 나에게 고민상담도 하고 나의 미천한 상담능력으로 나름대로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어쩌면 내가 교대를 다니는 것에 대한 고민이 사치라는 것이다. 정말 세상물정을 하나도 모르고 부모님의 그늘에서 자란 나에겐 나보다도 어린 그들의 생각의 깊이가 나의 세포 하나하나를 바늘로 찌르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한 생각을 하니 자동적으로 내가 다시 전역하고 교대를 다니는 것과 나중에 교사가 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자동적으로 하게 되었다. “나란 놈이 과연 학생들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면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하다 보니 답은 나의 학창시절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학생 때 무엇을 느꼈는지를 생각해보니 ‘소통’이라는 답이 나왔다.
12년의 학창시절동안 나에게 인상 깊었던 선생님들은 모두 나와 적극적으로 소통을 해준 분이셨다. 내가 힘들 때에 무엇이 힘들었는지, 어떠한 해결방법이 있는지, 어떤 식으로 실행할 지등 자신의 일인 듯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진정성이라고 생각했을 때에 그것의 외적인 표현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통이다. 그러면 내가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소통하기 이전에 지금 현재의 나는 소통을 하는지 반추 해 봤을 때 불행히도 그러지 않다고 확신한다. 나의 가장 친한 몇 명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겐 나의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나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아니, 나는 나의 친한 친구에게도 나의 속사정을 터놓지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 혼자 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친한 사람들에게도 시원하게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내가 학생의 인생을 책임지는 교사가 될 자격이 있는지 지금까지도 계속 고민하게 된다. 정해진 답은 있다. 지금부터라도 내 주변 분들에게 다가가 소통을 하면 그들은 나에게 진정성을 느끼게 되어 나에게 신뢰를 줄 것이다. 학생과 교사간의 신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의 나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함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