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
" 포스스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철학에서는 이미 쇠퇴했으나 정치, 문화, 일상생활 등에서는 크게 유행하고 있다. 특히 문화의 영역에서 "포스트모던"이란 용어는 "최첨단의", "가장 좋은", "가장 바람직한" 등의 의미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배후에 깔려있는 비기독교적인 관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올바르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던"이란 용어는 토인비의「역사의 연구」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서구문명을 분류하면서, 19세기 후반을 기준으로 그 이전 시대를 "근대"라 부르고, 그 이후 시기를 "근대 이후"(post-modern)라고 불렀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근대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와 단절되고, 모든 분야에서 상대주의가 유행하는 시기로 특징지워진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은 먼저 건축, 미술, 음악, 문학 등에서 유행하였다. 서구적인 형태와 사각형의 건축양식에서 벗어나서, 동·서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나타나고, 비대칭적인 모양의 건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술에서는 사실적인 풍경화나 인물화에서 벗어나서 추상화가 등장하였고, 키치나 혼성모방 같은 화법이 사용되었다. 소설에서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같이 전통적인 기승전결의 형식을 깨고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을 보다 정확히 알려면 철학에서 논의되는 주제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를 定義하는 것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적인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주요한 쟁점들을 중심으로 간략히 소개할 것이다. 편의상 서로 분리해서 설명하지만 3가지 문제들은 상호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 주체성의 비판
"모든 것을 인식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 주체는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서양철학은 긍정적인 주장을 해왔다.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까지 서양철학은 인간의 이성적 능력과 합리적 주체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갖고서 철학을 해왔다.
특히 중세의 암흑기를 지난 후 근대의 합리주의는 중세의 신(神)-하나님-의 권좌에 이성적 주체를 대신해서 올려놓았다. 근대철학자들은 지금까지 神이 하던 역할을 인간의 이성이 대신해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데카르트는 방법론적 회의를 통하여 인식의 "절대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믿었다. 나(인간)는 하나의 실체이고 나의 본질은 생각하는 것이며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정신(의식)이란 것이다. 그리고 칸트는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법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근대철학자들은 인간을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라고 보고, 그러한 인간주체의 이성적 능력을 통해 이 세계를 개조하고 지상낙원(paradise)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적 철학자들은 근대철학이 가정한 합리적 주체에 대한 확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푸코(M.Foucault)는 자율적인 인간이라는 이상은 허구이고, 인간의 본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제적·정치적 관계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 주체(본성)는 이제 모든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토대 또는 근거가 아니라, 단지 사회에 의해 구성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로티(R.Rorty)도 인간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샤르트르의 주장을 받아들여 인간 본성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2. 반진리론
"절대적 진리가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두 입장이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철학에서는 실재(實在)가 있고, 그 실재에 관한 참된 진술, 즉 眞理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재가 존재하는가' 또는 '진리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면 시대와 장소에 관계없이 참된 진리는 존재하지 않고, 그런 "보편적인" 진리 주장하는 것은 그 배후에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권력(의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진리의 이름하에 자기와 다른 집단이나 민족을 억압(통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진리(사실)이라는 것은 사회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포스트모던적 사상이 도덕과 규범의 영역에서는 윤리적 상대주의와 회의론으로 나타났다. 회의론은 도덕이란 것은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상대주의는 도덕이란 것은 개인의 생각이나 선호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고 지켜야 할 보편적인 도덕 또는규범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위 보편적이라 불리는 도덕(규범)을 내세워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란 것이다. 이런 윤리적 상대주의와 회의론은 오늘날 도덕성의 상실과 가치의 혼란을 가져오는데 기여하였다.
3. 反본질주의
"절대적인 본질은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두 입장이 서로 대립되고 있다.
전통적인 서양철학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그 현상 뒤에서 그것 을 존재케 하고 움직이는 실체 또는 힘인 본질(本質)을 구분하고 본질을 더 중요시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런 본질을 부정하고 현상만을 인정한다. 데리다(J.Derrida)는 이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태도를 해체하였다. 이런 본질과 현상의 구분을 해체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본성)에 대해서도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본질은 존재하지 않고 현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현상(사실)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사상은 불교와 도교의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배후에는 인간을 절대시하는 인본주의(humanism)와, 본질과 진리를 부정하는 상대주의가 깔려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無神論 또는 종교다원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뒤에 놓여 있는 비기독교적 관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포스트모던적 문화에 대하여 올바르게 대처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 포스트모더니즘과 정치 "
근대 모더니즘은 보편적인 진리와 도덕규범이 있다고 믿고 그 기준에 따르는 획일적인 생활방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해왔다. 그러나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런 사실을 부정하고 진리와 도덕규범의 상대성을 주장하고, 여러 가지 기준-진리, 도덕규범, 종교적 구원의 길이 다양하다-에 따라 다양한 생활방식을 장려하고 있다.
이런 포스트모던적 사상이 정치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고 우리의 교회생활에는 어떤 시사점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근대의 정치
근대(17-19세기) 유럽에서는 시민혁명을 통하여 민주정치가 시작되었다. 이런 민주정치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 사회계약론이다. 계약론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 �민주권 등을 이념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 수립된 정부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 아래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렸고, 가난한 자들-아동과 부녀자를 포함하여-을 노동자로 공장에서 혹사시켰다. 또한 유럽 국가들은 원료를 공급받고, 상품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약소국들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또한 식민지국가에 자신들의 발달된 민주정치제도와 문화를 강제적으로 전파하였다.
이와같이 근대 유럽국가들은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구호 아래 실제로는 백인 남자들과 가진자들을 위한 정치를 해왔다.
근대 민주정치에 있어서, "동등한 인간존중"의 원칙은 사람들을 차이가 없이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도록 요구하였다. 이 원칙은 "동일한 지위와 능력"을 기준으로 그런 지위를 갖춘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른 특권을 주었지만, 그렇치 못 한 사람들-노동자, 농민, 빈자, 여성들-은 非市民 또는 2등시민으로 차별대우를 받거나 억압받아 왔다.
예를들면 근대 미국사회는 모든 인간의 평등이라는 이름하에 아메리카 토착민이었던 인디언들을 백인사회로 이끌어내서 백인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백인문화에 따라 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인디언들의 고유문화를 파괴시켰고 그들의 자존감을 상실시켰고, 인디언들이 백인과 "진정으로" 동등하게 살 수 있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지도 못 했다.
이런 비판에서 현대의 정치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어서 인디언들이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며 살도록 허용하고 있다. 나아가 인디언 뿐만 아니라 다른 인종과 소수 민족들이 자신들의 고유 언어와 생황방식에 따라 사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현대의 정치: 차이의 정치
이러한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정치질서 속에서 억눌려 왔던 흑인종, 소수 민족과 집단들이 自治와 자신들의 고유 문화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차이의 정치"(politic of difference)이다. 차이의 정치는 우리가 모든 문화들- 특히 소수민족과 집단의 문화-을 보존하고 그 문화들의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C.West에 의하면, 차이의 정치는 다양성과 이질성의 측면에서 전체성과 동질성을 깨드리고, 구체적인 것과 특수한 것에 비추어서 추상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이러한 현대(20세기 이후) 차이의 정치는 개인이나 집단의 "독특한" 정체성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근대의 정치가 소위 "동등한 인간 존중"이라는 명목하에 해왔던 인종이나 민족차별의철폐에서 그리고 1등시민과 2등시민의 구별을 거부하는 것에서 차이의 정치는 출발한다.
차이의 정치는 각 개인의 정체성이 서로 다르고 각 집단의 문화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따라서 각 문하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모든 인종이나 민족들은자신들의 독특한 정체성과 고유문화의 가치를 존중하고 보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차이의 정치가 충분히 실현된다면, 소수 민족과 집단-특히 흑인종, 인디언, 여성, 소수민족들-은 백인 남성들에 의해 무시되어 왔던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한 권리와 힘을 갖게 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집단이나 민족의 차이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생활방식을 보장해주는 차이의 정치를 방전시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 그러나 "왜 우리는 다른 집단이나 민족의 다양성과 차이성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가",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갖고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나 민족 사이에 갈등(분쟁)이 발생했을 때, 그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 한다. 이것이 보편적인 진리와 도덕규범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이다.
하지만 차이의 정치는 우리의 교회생활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고 구원의 길은 분명히 하나뿐이지만, 신앙생활의 방식은 매우 다양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과 성경적 지식을 "절대적인 잣대"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제 나와 다르지만 다양한 신앙생활의 방식들을 인정해주고 교회 안에서 함께 공존하려는 성숙한 신앙인의 태도가 필요한 때이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 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 를 받으셨음이니라" (롬14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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