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세이

자기 발로 서는 신앙인이 되자

미래 교육 2008. 3. 7. 01:32

             " 자기 발로 서는 신앙인이 되자! "


"형제들아 . . .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 (빌3;13)

우리는 과거지향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서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신앙을 가져야할 것이다. 나의 선배 중에는 좋은 조건을 갗추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과 결혼했지만 여전히 불행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선배는 과거의 여자에 대한 미련과 기억들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과거의 여자와 현재의 아내와 자꾸 비교하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과거의 여인에 대한 추억에 사로잡혀 있기에 현재의 아내의 모습은 모두 마음에 안 들게 된다는 것이었다.

과거는 항상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누구에게나 과거에 대한 미련과 향수가 남아있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다."몇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몇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잘할 수 있을텐데" . . . . 그러나 이렇게 과거에 미련을 갖고 과거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현재의 사테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불평과 불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에 적극 대처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게 된다. 그저 과거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런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지향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은 발전하기 어렵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과거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신자는 더 발전할 수 없다. "왕년에는 나도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묵상하고 전도했었는데", "엣날에는 00목사님의 풍성하고 힘있는 설교로 인해 많은 힘을 얻고 일주일을 살 수 있었는데 . . . " 이렇게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신자는 이미 신앙과 영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고, 자신의 나약함과 게으름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권했던 말을 기억하자. 빌립보 지역은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로마만큼 번영하였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였다. 그 지역에 세워진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선교에 많은 재정을 지원할만큼 선교에 열정적이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던 교회였다. 그러나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장기화된 투옥생활로 인한 불안과 비관, 그로 인한 교회내의 갈등과 분열과, 율법주의자들의 분쟁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문제들이 그냥 방치된다면 교회자체가 붕괴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부드럽지만 강력하게 요구했다." 과거의 일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빌3:13-14). 또한 바울은 주 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교회의 평화를 유지하고 기도에 힘쓰고 말씀대로 살 것을 권하고 있다(빌4:2-9).

우리는 의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서 자기 발로 서는 신앙인이 될 필요가 있다. 어린아이의 삶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어린아이는 부모가 먹을 것을 준비해 주어야 먹을 수 있고 옷을 사주어야 입고 다닐 수 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뭔가를 가르쳐 주어야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너는 어떤 사람이 되라(어떤 직업을 가진)고 말해주면, 어린아이들은 그것이 자신의 꿈이나 진로라고 믿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을 알게 되고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게 된 후에는 그들의 진로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시기가 있다. 영적인 어린아이는 위대한 목사님이 훌륭하게 설교를 해주어야 성경을 이해할 수 있고, 말씀을 입에 넣어주어야 겨우 먹는 신자이다."00 목사님의 힘있는 설교와 말씀에 힘을 얻고 일주일을 살아간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종종 듣곤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진수성찬이라도 한 끼만 먹고 어찌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들의 신앙은 목사님에게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어서 목사님이 없이는 온전히 성장하지 못 한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목사님이 그럴 둣한 비전이나 삶의 모습을 제시해 주면 그것이 마치 자신의 비전인 것처럼 믿고서 그런 비전을 가진 것으로 만족해한다. 목사님이 선교를 강조하고 자신의 교회에서 해외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면, 마치 자신이 선교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한국에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교회에 다닌다는 생각에 스스로 흐뭇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교회에 다니고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선교의 사명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만이 선교는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셔서, 한 가정의 자녀로, 또 직장의 일꾼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세우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그 자리에서 주님이 보낸 목적에 적합한 삶을 사는 것도 선교라 할 수 있다. 이런 후자의 선교가 대부분의 신앙인이 가져야 할 선교의 임무인 것이다.

선교(mission)는 헬라어로 아포스텔로(apostello)이고 라틴어로 미테레(mittere)이다. 두 단어 모두 "어떤 목적으로 위해 어느 곳에 사람을 보내다"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신자들을 세상에 보내서 하나님을 말씀을 실천하게 함으로서 세상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요17:18-21). 선교란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에 적합한 삶을 살아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도 역시 선교이다(엡4:1-4).

그동안 한국 교회는 경쟁적으로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몰두하고 세상 속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잊어버리고, 악과 부정의와 싸우는 것을 포기하였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정치지도자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 교회가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사명을 소홀히 하였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부정과 악으로 가득찬 것이다. 결국 짠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사람으로부터 외면 당하고 조롱받고 짓밟히는 것처럼, 한국교회도 세상사람들로부터 '외형만 키우는데에 애쓰는 기업체와 다를 바 없다고 비난을 받으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지 않는가.

만민교회와 이재록 목사의 사건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목사님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서 자기발로 서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얘기하던 선지자요 많은 기적과 능력을 행하던 지됴자였다. 모세는 하나님이 인정한 가장 위대한 선지자요 지도자였다(신34:10-12).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지 못했고, 그가 행한 기적들을 직접 보았고 그의 훌륭한 설교와 지도를 받던 백성들도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위대한 선지자(목사님)의 설교를 드고 신앙지도를 받는다고해서 저절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신앙이 저절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우리 스스로 매일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영어책을 볼 때는 사전을 찾아가면서 공부하면서 왜 성경을 읽으면서는 다른 주석이나 신학서적들을 참고하면서 연구하지 않는가. 그런 주석이나 신학서적은 목사님이나 신학자들이나 보는 것인가. 모세의 말처럼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 모두가 선지자가 될 수 있고(민11;29), 베드로의 말처럼,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직접 예배할 수 있는 제사장이요 또 되어야한다(벧전2:5).

목사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뜻을 전하고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틀과 방향을 제시해 주시지만, 우리 개개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과 비전은 스스로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노력을 하지않고 성직자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때 교회는 죽게하고 사회는 타락하게 된다. 중세의 교회를 생각해보라. 중세 카톨릭의 신부와 교황은 예배도 라틴어도 진행하였고 헬라어와 라틴어로 스여진 성경을 모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자신들만 읽었다. 당연히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신부와 교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함으로서 신부와 교황은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사도 바울이 권하듯이, 우리는 스스로 복음, 진리, 의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기를 갖춘 하나님의 군사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모든 일에 먼저 스스로 기도하고 행하는 신앙인이 되어야한다(엡6:13-18). 예수님의 명령처럼, 우리 자신이 주 앞에 온전히 서야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들 한사람 한사람이 온전하라고 명하셨다(마5:48).

이제 우리는 과거의 지도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자기 발로 서는 신앙인이 되어 남서울교회공동체를 다시 세우고 발전시키기 위해 협력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서 지키라"(신4:7).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 . . " (사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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