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우선의 것 "
유다왕 히스기야의 통치 14년에 앗수르왕 산헤립이 유다의 성읍들을 공격하였다. 히스기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앗수르왕에게 무릎을 꿇고 그에게 여호와의 전과 왕궁에 있는 금과 은을 모두 내어주었다. 그러나 앗수르왕은 금과 은에 만족하지 않고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왕하18:13:35).
이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애굽을 의지하는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에게 경고하셨다(사30:8).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시기를 기다리시고, 그들이 돌아오면 은혜를 베풀 것을 약속해 주셨다(사30:18-19).
그러나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은 겁에 질려 하나님게 기도할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애굽에게 도움을 구하러 갔다(사30:1-2). 하지만 애굽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앗시리아 군대의 포위로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굶어 죽게될 위험에 처하였다.
그 때서야 히스기야는 앗수르왕의 선전포고문을 여호와의 전 앞에 펴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왕하19:14-20). 그럼에도 불구하고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 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을 치셨고 하나님을 모독했던 앗수르왕 산헤립은 자신의 부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만드셨다(왕하19:35-37).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이 자기자신이나 애굽을 의지하지 않고,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였다면, 금과 은을 빼았기지 않았을 것이고 경제적 어려움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이와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고 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먼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애쓰고 사람들의 도움을 청한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때서야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으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완전한 해결이 되지 못 하고 여러가지 손해와 후유증이 남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우리가 제일 먼저 하나님께 모든 일을 의논하고 맡겨 주시기를 원하신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살전5:17) 바로 우리가 모든 일에 있어서 매일 하나님께 먼저 의논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게 의지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우선의 것이요 최선의 것이다.(The prayer to the God is not the last but the first and the best.).
" 기도 : 선택이 아닌 필수 "
최근 경제침체로 인한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사태, 신용 불량자 급증, 정치적 혼란 등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영적 상태도 아주 침체되어 있는 것 같다.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을 믿고 그 분의 거룩한 일을 하는 우리들이 왜 이렇게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고 힘들어할까? 아마도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서 우리의 상태를 아뢰고 힘든 짐을 완전히 맡기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적 침체의 원인을 다른 것들-경기침체와 대량 실업사태, 지도자, 교회 전체-에 돌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우리가 영적으로 너무 가라앉아 있고 일에 지쳐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 조차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문제해결을 받을 수 있다. 기도는 우리가 하고 싶을 때, 여유가 있으면 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항상 해야하는 필수(의무)이다. 바울의 지적처럼,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명령이다" (살전5:17).
우리가 이렇게 침체되었고 지쳐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기도하지 못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기도를 선택사항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 또는 어렵고 힘든 문제가 있을 때에만 기도해왔다. 그러기에 기도하는 것이 익숙치 않은 것이다. 단 몇 분, 길어야 몇 십 분 기도하고 나면, 그 다음에 할 말이 없는 것이 우리의 영적 상태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 분과의 대화인 기도가 그렇게 힘들거나 짧게 끝나지는 않을텐데.
이제 기도에 대한 좁은 생각을 바꾸고 기도에 대한 부담을 벗어버리자. 기도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과 서로 의사소통하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두 연인이 정답게 얘기를 나누듯이 말이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되심(Lordship)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제 사무엘의 고백을 기억하자(삼상12:23)! 기도는 선택이 아니요 필수이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알고 싶어 하시고 그 분께 온전히 맡기시기를 원하신다. 이제 아침, 저녁에 10분씩이라도 기도하는 일을 시작해 보자! 나머지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응답하시리라!"
제가 어릴 때에 저희 집에서 과수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포도나무에는 일손이 많이 필요하기에 저도 학교를 마치고 가끔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봄에 싹이 나기 시작하면 포도순을 솎아 주고, 가지치기도 해주고, 약도 뿌려 주고, 포도송이에 일일이 봉지를 씌워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저에게는 너무 지루하고 힘든 일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포도가 몇 일만에 다 익어서 수확할 수 있다면 이런 수고와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될텐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자연법칙에 어긋나고 포도가 제맛을 내지 못 할 것입니다. 봄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여름의 무더위와 비바람을 잘 견디어 낸 후 가을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서 포도는 "서서히" 익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면, 우리의 기도에 빨리 응답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고 낙심하여 기도조차 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때에 역시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 주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시고,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드시고, 우리에게 기다릴 줄 아는 인내를 기르도록 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1년 안에 이방민족들을 모두 쫓아내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일까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기도를 듣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잘 정착하고 그 땅을 충분히 지켜낼 수 있을 정도로 번성하고 강해질 때까지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하시고, 그 백성들이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little by little) 쫓아내리라." (출23;30)
정리해고와 경제침체로 불안해하고 있으며 혼기를 놓쳐서 또는 진로문제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꾸준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조금씩"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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