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

음악교육과 조은희

미래 교육 2008. 7. 9. 15:51
 

   나의 비전 : 음악교육과 조은희


초등학교 1학년 때가 생각납니다. 게시판에 장래희망을 붙일 것이니 모두 장래희망 한가지씩을 적어오라고 선생님이 숙제를 내어주셨습니다. 8살의 나이에 장래희망의 뜻이 뭔지도 모르겠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뭘 적을까 고민을 하다가 ‘선생님’이라고 적었습니다.


선생님이 엄하신 분이었는데, 학생들에게 모두 티슈를 들고 오라고 시킨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되면 티슈를 마음껏 쓸 수 있겠구나..’ 하는 부러움에 적은 것입니다. 참 단순했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은 변호사, 판사, 의사 같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는 각종 직업을 써왔습니다. 고작 선생님이라고 적은 내가 너무 초라해보여서 내년부턴 꼭 다른 것으로 적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그때도 선생님이라고 적어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막연하게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녔습니다. 3학년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서 경상남도 창원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 인생의 큰 변화가 왔습니다. 경상도로 이사를 가니 말투도 다르고 문화도 달라서 학교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친구들을 텃세도 심해서 학교에 잘 적응을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담임선생님이50~60대 할아버지이셨는데 저와 매우 맞지 않아 고생이 심했습니다. 저는 일기를 적어오는 것이 너무 싫어서 매일 안 가져 왔다고 거짓말을 쳤고, 선생님도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학급 친구들 앞에서 공부 못하는 꼴통학생으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 이후 아이들은 저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 차가워졌고 친구가 한명도 없는 이른바 왕따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두 자리 수의 곱셈을 배우는 수학시간이었는데, 저는 학습지의 힘을 빌어(선행학습) 100점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문제도 쉬웠고, 적당히 공부하는 아이들도 100점을 맞을 수 있는 난위도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시험지를 둘러보시더니, 제 시험지를 들고 “야~ 애도 백점 받았다....”라며

 

마치 저능아가 백점 받은 것 마냥 아이들 앞에서 저에게 수모를 주었습니다. 이런 일 외에도 생각하면 상처가 되는 일이 많지만, 생략하고 초등학교 3학년은 저에게 있어 암흑기와 같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저는 꼭 선생님이 되겠다고 확실히 다짐했습니다. 첫번째는 나는 저런 선생님 안 되어야겠다는 이유에서, 두 번째는 저 선생님보다 더 높은 선생님이 되어서 다시 만나겠다는 각오 때문이었습니다.

 

초, 중학교시절을 보내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은 제가 아이들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니 민망하지만, 저도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도 제가 그들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선택과목으로 물리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문과 반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물리 공부를 힘들어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도 물리가 끔직이 싫습니다.) 물리 시험 범위 중 유난히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 있었는데, 여자저차 이해를 하게 되었고, 선경이라는 친구가 저에게 설명을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선경이는 저보다 물리를 더 못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설명을 하면서 말이 술술 잘 풀리니까, 설명이 끝나고 난 뒤 작은 희열감이 마음에 뭉클하게 생겼습니다. 선경이도 저에게 설명을 참 잘했다는 조그마한 칭찬 한마디를 던져주었습니다. 그 때 느낀 것이 “가르친다는 것이 이런 희열감을 느끼는 것이라면 참 할 만하겠다...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가 교사를 꿈으로 품게 된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희 어머니는 잠이 들기 전에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기도 때 마다 빠뜨리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은희가 지도자로써 큰 그릇으로 쓰이게 해주세요.”였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의 이 기도가 저에게 참 부담이 되었습니다. 저는 큰 그릇이지도 못하고, 리더쉽도 뛰어나지 않은데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고등학생때 어머니에게 이런 고민과 부담스러움을 털어놓았더니, 어머니께서 저에게는 교사의 은사가 있는 것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교사라는 것이 학생의 지도자의 역할이라며 제가 교사가 되는 것이 저의 적성으로 보나 은사로 보나 참 어울리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 저의 진로는 확실히 결정되었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없지만, 그 중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것에 희열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졌기에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저는 제 자신이 정신적으로 나약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고등학교 때의 그 치열한 입시경쟁도 싫었고, 대학에 와서도 과제와 시험과 족보와 같은 것들 때문에 친구들과 경쟁하고 눈치 보는 각박한 세상을 제가 잘 이겨낼 수 있을지 많이 걱정이 되곤합니다. 더군다나 사회에 나가면 더욱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텐데, 제가 잘 할 자신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럴 때 위안이 된 것이 교사라는 직업을 제가 꿈꾸는 것이 제가 세상을 살면서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회사원이 일을 하면서 상대하는 것이 직장상사와 동료, 고객과 같은 매말라 버린 어른들이라면, 교사가 일을 하면서 상대하는 것은 아직은 그래도 순수한 아이들입니다. 경쟁으로 치열하게 사는 것이 매우 고통인 저에게 평생을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교사를 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대학교 3학년이지만 23살입니다. 1년을 더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왔다는 것이지요. 1년을 더 공부한 것이 제가 교대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교사가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임을 잠시 망각하고 좀 더 이름 있고 멋진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에 눈이 멀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 원서를 넣을 때, 어머니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교육대학교를 한군데도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저의 욕심 때문인지, 낮은 점수때문인지 합격에 모두 실패했고, 저는 입시학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이 그때 어느 한 곳의 대학이라도 합격되었다면, 지금쯤 많이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1년 동안 공부하면서 저의 진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면서 신중하게 원서를 넣었고 결국 전주교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주교대에 입학해서 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진데 까지는 하나님이 저를 위해 많이 고생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가고 싶어 눈이 멀었던 대학이 있었습니다. 재수를 마치고 원서를 넣으면서도 교대와 가고 싶은 대학 두 곳 다 붙으면 가고 싶은 대학에 갈 것이라는 마음이 80%쯤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고 싶은 학교에 합격하면 교대 면접 시험을 보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교대 면접 시험 전에 (가)군 대학 합격 발표가 나야 하는데, 일정이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교대 면접시험을 어쩔 수 없이 경상도에서 전라도까지 멀리 와서 보게 되었습니다. 신기한건 교대 면접시험을 보고 나와서 핸드폰을 켜는데, (가)군 대학 발표가 떴다는 문자가 온 것입니다. 제가 교대 면접시험을 꼭 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노력 하신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주교대에 입학금을 입금하고 입학하기 전 까지 참 많은 생각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겠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하고, 이런 아이들은 어떻게 다루고, 이런 공부 저런 공부는 더 하고..... 하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슬픕니다. 입학만 하면 다 된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회 개념발표를 위해 조모임을 끝내고 조원들끼리 점심을 먹으면서 광우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민우오빠가 광우병 때문에 10년후에 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인터넷 기사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반석이라는 친구가(벌써부터 임용공부를 하는 친구..) 자신은 빨리 죽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120살까지 무엇을 할 것인지 벌써 계획이 다 짜여져 있다며 빨리 죽으면 절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조원들은 그러는 반석이가 정말 웃겨서 120살까지 무엇을 할 것인지 짧게 이야기 해달라고 하자, 반석이는 교육에 대해서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나이가 들면 개발도상국에 가서 교육학자가 되어 교육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반석이가 부러우면서 머리가 띵했습니다. 저는 인생에 대한, 교사 생활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머릿속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음악관에서 자꾸 지갑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도난 사건의 범인을 우연히 잡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몇 번이나 더 그 친구가 지갑을 도난해가는 일이 있었지만, 우리 음악과 사람들은 이제 그러려니 하고 스스로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권민지라는 학생인데 남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어쩌다보니 저와 친해졌는데, 민지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머리에는 쉰 냄새가 나고, 옷은 너덜 너덜한게 한눈에 봐도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민지를 보면서 제가 어떤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희미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저는 공부를 잘하고 모범적이고 예쁜 학생들보다, 공부가 뒤떨어지고 환경이 불우한 학생들에게 더 정이 갑니다. 제가 위선을 행하기 위해서, 착한척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에게 자꾸 불우하고 못난 아이들에게 정이 가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저는 좀 뒤떨어지고 모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의 교사상이 추상적이라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지금 드는 생각은 제 스스로 인격적으로 더 따뜻하고 마음이 풍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임용고사에 무슨 과목이 있고, 교사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릅니다. 제가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단순한 것들입니다. 인격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 사람의 영혼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첫 목표입니다. 제가 이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음악과 친구 시온입니다. 시온이는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시온이는 하나님과 매우 친하고 하나님과 항상 소통하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성경도 잘 보지 않고, QT도 가끔 보는 불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가장 큰 계획, 첫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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