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없음을 부끄러이 여겨야 하며,
소신이 있더라도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고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해 눈앞의 것만 보면 안 된다는 것을
모든 세상이 소리쳐서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
나는 모든 귀를 연채 담담히 그 동안의 나를 조용히 찢고 있다.
한 순간의 불꽃이 아니기를, 냄비가 아니기를.
내가 간절히 원하며, 그러니 이루어질 것이다.
2009년 05월 26일 화요일 새벽. 그 때 썼던 다짐하는 짧은 글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내게 짧지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일 자체로서도 그렇지만, 자신이 뜻한 바를 굳건히 이끌고 나가셨던 그 분의 행적을 되짚어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껏 나는 어떤 삶을 살아 왔는가. 어떤 소신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 왔는가. 교대를 들어와 직업이 정해졌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저 멀리에 직업이라는 깃발을 하나 찍었으니, 내 미래가 정해진 것이라고. 이제껏 (교대를 들어오기 전까지)가지고 있었던 꿈들은 너무나 크고 아름다웠으나 이제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좌절감에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직업이 삶의 목표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때였으니 더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학기에 들어서면서(정확히는 한 살이라도 더 많아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직업이 다, 는 아닐 거라고. 직업은 내 최종적인 삶에 있어서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뭔가 더 큰 명제의, 좌우명- 소신-이 필요했다.
그 후로의 나의 모든 행적은 그 명제를 찾아다니고자 한 것이었다. 일기를 쓰는 것도, 하다못해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모든 일에서 내 삶을 위한 단 하나의 명제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삶의 목표를 갖고자 하는 노력을 쉬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적을 되짚어본 지난 며칠 동안, 나도 그 분처럼 소신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회 과제(화려한 휴가 관련 레포트)를 하면서도 예전과 다른 답을 쓰게 되었던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당장 힘들기 싫어서, 혹은 귀찮으니까, 와 같은 이유를 가지고 현실을 외면하겠다고 썼을 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것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 같았다. 더 이상 이렇게 숨어서 비겁자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그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내 삶의 명제는, 소신 있는 삶을 살겠다. 라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보다,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려 한다. 이 명제는 굉장히 포괄적인 것이니, 세부적인 일에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교사로서 소신 있는 모습을 무엇일까, 라고 자연히 생각하게 된다.
나는 소신 있는 교사는, 교사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진부하고 평범한 말 같지만, 교사로서의 소임을 다해 결국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선생님을 만나본 것이 드물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교사로서의 소임이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이들이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주고, 자신과 함께하는 공부에 누구도 뒤처지지 않게 모두를 챙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교실 안팎의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년 뒤에(27살-교대를 졸업하고 4년 후) 나는,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몇 년째 수업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미숙하고 실수가 많았겠지만, 그 시행착오를 하루하루 기록해 축적하며, 보다 더 전문적인 교사로서 거듭나 있을 것이다. 전문적인 교사란, 교대에서 배웠던 여러 수업모형을 수업에 실제로 적용해 보고, 어떤 모형이 어떤 수업에 적합한지 알아 선택할 줄 아는 능동적인 교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킬 수 있어야 하며, 뒤떨어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격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교사가 되기 위해, 보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면 대학원을 다닐 것이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활동을 가서, 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한 청소년들이나, 학업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는 아이들을 돕고자 한다. 또한 촌지를 절대 받지 않겠다. 조그마한 선물도 받지 않고자 한다. 재작년에 고3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진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싶으면, 학부모로부터 검은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학부모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걱정이 많아서 그렇게 하셨을 테니 대신 진심이 담긴 상담을 해드리고자 한다.
10년 뒤에(32살) 나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고 있을 것 같다. 결혼을 했을 가능성이 크니 아이들이 있다고 가정해보면, 내 아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 반 아이들을 보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을 것 같다. 5년 전에는 수업을 잘 하려고 아등바등 애쓴다면, 이제는 노련해 졌으니 모든 아이들을 엄마의 마음으로 대하는 약간 더 여유 있고 너그러운 교사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여유있음이란 나태함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나는 사회적 약자 위치에 있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방학 때 급식을 받지 못해 점심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방학 때 아이들을 모아 식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
20년 뒤에(42살) 나는, 교사로서 전문가의 위치에 있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진정한 선생님이었으면 한다. 20년 동안 제대로 교사생활을 했다면, 여러 제자들을 거느렸을 것이고, 인품을 잘 쌓았다면 능력 있고 소신 있는 후배들도 나를 따르고 있을 것이다. 또한 20년 동안 쌓은 경력과 전문적인 지식, 실무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면 한다. 나 스스로 모범이 되었다면, 예비 교사들을 대할 태도를 갖출 수 있을 테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자 계획하는 것은 20년 동안 나태하지 않고 항상 노력하기 위함이다.
30년 뒤라면 52살이다. 22살이 52살을 가늠하려니 잘 되지 않지만, 늘어 있는 주름만큼 노련한 교사일 것이며, 대학에서도 모범이 되는 선배 교사일 것이다. (나는 꼭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교사로서의 모범이 되고자 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초임부터 저축해 두었던 것을 가지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학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거나 삶을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 또한, 상담 자격증을 획득해서 공적으로 상담해줄 수 있는 자격을 받고, 학교 안팎에서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안아 줄 수 있도록 상담센터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자원봉사 형태로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