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네 명의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멘토를 하고 있다. 부진아 지도라는 명목으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같은 학년도 아닌 4,6학년을 2시간동안 가르치려다 보니 엉덩이 한번 못 붙이고 아이들의 책상을 오고가기 바쁘다. 게다가 아이들이 기초학습도 부족하고 집중력도 떨어져 수업에 제대로 응해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화를 내는 일은 매번 벌어지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과외도 해보았고 교육실습, 교육봉사도 다녀왔지만 나도 가끔 아이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쏘아대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 함께 하는 아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엔 나도 유순한 대학생 선생님이었다. 부진아 지도가 뭐라고, 나도 차라리 맘 편히 이 아이들과 놀다가 헤어지면 좋겠지만 구구단도 못하는 모습을 볼 때엔 한숨과 동시에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방정맞게 촐싹대는 꼴을 보고 있자면 화가 치미는 것도 당연하다. 덕분에 머리가 좀 컸다 싶은 6학년 아이들과는 항상 대립 상태이고 그렇게 2시간을 채우고 학교를 나서면 나는 녹초가 되어 발걸음 옮기는 것도 벅차기 일쑤다.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들도 그랬을까. 초중고 시절 선생님들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갖는 편도 아니었고 되레 반항심에 적대적인 행동을 일삼던 적이 꽤 많았다. 그에 대한 내 변명이라고 한다면 매스컴의 노출을 즐기는 교사가 싫었고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교사가 싫었으며 수업 전에 술 마시고 들어와서는 도저히 비판으로 볼 수 없는 뒷말을 즐기면서 실력도 없는 교사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교사가 학생을 놀림감으로 대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교사상에 대해 꽤나 까다로운 기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교사가 되리라 생각해본 적은 재수하기 전까지 해본 적이 없었다. 교사는 정말 인격의 완성이 이뤄진 지식의 전문가, 학생의 심리를 꿰뚫고 올바른 안내자이자 상담자가 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던 내게 막상 학생들과 뒤섞여야 한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들 말도 귀담아 들어줘야 하고 아이들을 감정적으로 대하지도 말아야 하고 아이들에게 효율적인 학습이 이뤄지도록 노력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현직에 나가기 전에 깨달아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가 되기 위해 3년의 시간을 도로 물릴 수도 없는 판이다. 지금까지 숨 막히는 교대생활이 싫어 일탈을 꿈꾸고 시도하기도 했었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초등교육에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통해 초등교사가 고귀하면서도 책임감이 따르는, 무엇보다 바르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보람을 느끼는 직업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되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이들이 그 자체로 좋다. 내가 이 길을 가야 한다면 기왕이면 적어도 아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상과 현실을 절충해 인간적인 교사가 되고자 한다. 교직을 너무 어렵게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아이들과 즐길 줄 아는 교사가 되고 싶다.
5년 후, 글쓰기 지도에 주력하는 교사로서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교사로서의 임무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글을 읽고 써봄으로써 아이들과 소통할 줄 아는 교사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 아동 글짓기 지도에 관련된 다양한 서적과 교육을 접하여 체계적인 지도방법의 기반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학원 진학도 당연히 필수일 것이다. 우리 반의 학급목표는 ‘책 읽는 어린이’가 될 것이고 아침자습시간에는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는 반 아이들의 모습이 일상생활이 될 것이다. 가끔 아이들이 쓴 동시에 멜로디를 붙여 다함께 노래 부르는 일도 참 재밌을 것 같다.
10년 후, 계획대로라면 아마 내가 맡는 반은 ‘글 잘 쓰는 반’이 될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만큼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참신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면 이것만큼 값진 성과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10년 후가 되면 교수법에 대한 숙련된 노하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소통하는데 보다 쉬울 것이다. 학업에 얽매인 아이들에게 글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방과 후 글쓰기 활동을 맡거나 교내 업무를 맡아 좀 더 전문화된 모습을 갖춘 교사가 돼 있을 것이다.
20년 후, 지난 20년간 아이들의 작품을 함께 읽고 지도한 경험을 토대로 글쓰기 지도를 원하는 동료교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강연의 형태가 됐든 무엇이 됐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아이들의 작품과 멜로디를 붙인 동요를 묶어 발표회를 한다든지 동요집을 내는 것도 좋겠다. 아이들이 단순히 공부하기 위해 학교 다니는 것이 아닌 세상을 이해하고 그들이 어린 나날을 즐기기 위해 소풍 가는 마음으로 학교에 발을 들였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때쯤이면 단순히 가르치는 입장을 뛰어넘어 보다 아이들에게 가깝게 다가서는 교사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30년 후, 아마 시골 작은 학교에서 몇 안 되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을 것이다. 교감이니 교장이니 직책에 얽매이는 것보다 그저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글 쓰고 노래 부르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돕는 교사이고 싶다. 물론 학업적인 측면도 세세하게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나는 학업도 중요하지만 유년시절의 풍부한 감성 표현이나 여러 가지 경험이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전까지는 아이들이 학원에 쫓기고 내가 업무에 쫓겨 이러한 일들이 가능하진 않았겠지만 시골에서는 아이들의 생활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실 나는 무언가에 얽매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자유롭게 발길 닿는 대로 다니고 싶은 소망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이런 성향을 가진 내가 교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 큰 짐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도 나쁘지만은 않다. 교사라는 직업처럼 아이들에게서 순수함을 배우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기에 좋은 직업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글을 읽고 쓰고 싶다. 동시에 아이들이 매사 즐겁고 기운찬 학교생활을 보낸다면 학업적인 성과도 뒤따라오지 않을까. 초등학교 시절의 기분 좋은 추억은 훗날을 살아가는데 버팀목이자 기쁨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 또한 그러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으므로 성적에 목매는 선생님이 아닌 아이들에게 추억을 심어주는 선생님이 된다면 이것은 내 꿈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