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선언 - 나는 나이길 소망한다.
영어교육과 곽인혜
나는 항상 꿈을 꾼다. 좋아하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꿈을 꾸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 꿈이 평생을 두고 이뤄야할 원대한 꿈이든 매시간 조금 더 나은, 조금 더 따뜻한 걸 그리는 꿈이든 그것이 어떠한 크기로 어떠한 마음을 담아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 가슴 속에 무언가 기대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마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내게는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다. 아무리 척박해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를 가져야 살 맛이 난다.
지금까지 꿈을 꾸는 것을 거칠 것이 없었다. 그저 꿈이었으니까.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목표와는 사뭇 거리가 먼 꿈, 정말 꿈을 꾸곤 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허무맹랑한 꿈을 꾸고 그 허무맹랑함에 따뜻해하고 즐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내 허무맹랑함을 즐기기에는 내게 현실이라는 것이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는 나 한사람으로서 살아도 족했지만 이제는 나 한사람으로만 살아서는 안 된다. 교사로서, 한 사람만의 몫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것을 내가 감당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열심히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나는 허무맹랑한 한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
허무맹랑한 나를 넘어서기 위해, 아이들의 몫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내고 싶다. 예전에 남궁연이라는 사람이 꿈은 명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형용사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형용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로 눈과 마음이 열렸다. 그때부터 나는 나만의 형용사를 붙일 명사를 찾아왔고 교사라는 명사를 얻었다. 그 명사에 어울릴 나만의 형용사를 찾아야 하는데 좋은 뜻을 담은 형용사가 너무 많다. 처음에 교대에 왔을 때 나만의 형용사에 좋은 뜻을 모두 담아내려고 욕심을 몹시 부렸다. 좋은 뜻이란 좋은 뜻은 모두 담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는지 모른다. 너무 잘하고 싶으면 실수하고 좌절하기 쉬우니 말이다. 이제 삼년이 되어가는 즈음이 되어 조금씩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조금씩 덜어내서야 나만의 형용사와 명사가 보인다.
나는 ‘항상 노력하는 교사’를 꿈꾼다. 솔직히 내가 좋은 교사가 될 것이란 확신도, 자신도 부족하지만 적어도 항상 노력하는 교사이고 싶다.
5년 후, 나는 이제 신출내기 티를 조금씩 벗어가고 있다. 여전히 갑작스런 일들에 당황해하고 아이들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과 사뭇 가까워지고 아이들에게 마음을 주고 아이들을 보내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1년 전부터 교원대학원에서 교육심리를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멀지 않은 미술치료센터에서 미술치료 공부도 병행하고 있는 중이다. 학교 수업과 일, 공부를 함께 하자니 시간이 항상 부족하고 마음이 바쁘다. 하지만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즐겁다.
10년 후, 이제 제법 선생님 티가 난다. 굳이 선생님이라 말하지 안하도 다들 선생님이라 생각한다. 학교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아이들과 있는 것이 가끔 지겹고 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제일 나다운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더 잘 보인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행동에 화가 나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조금씩 보이고 있다. 학교에 상설 상담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학교와 가정, 그리고 전문 상담기관까지 연계를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내년쯤에는 상담프로그램이 제대로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교원대학원에서 교육심리 박사과정을 마치고 이제는 새롭게 다른 공부를 시작해볼까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20년 후, 이제는 정말로 선생님이구나 싶다. 안이든 밖이든 스스로가 선생님인 것을 잊으려 해도 표가 난다. 이것도 직업병인지 아이들이건 친구이건 자꾸 설명하려고 해서 민망할 때가 많다. 선생님을 오래하다 보니 이런 증상이 생기나 보다. 이십년이란 시간이 내게 제법 관록과 여유를 준 모양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며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아이들의 순수함과 따뜻함을 보며 미소를 짓게 된다. 나이가 드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나이든 선생님이 되는 것은 꽤나 매력적이다. 요새는 나이 들어서 아이들과 공감할 부분들이 적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아이들 프로그램들을 챙겨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30년 후,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 학교로 출근하지 않는다. 삼년 전, 아는 분들과 함께 시작한 아동 심리 센터가 나의 일상이다. 학교에 있을 때는 그곳처럼 바쁜 곳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더욱 바쁘다. 아이들이 대부분 상처 많고 아픔이 많은 아이들이라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하고 심리 센터에서 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도 함께 참여 하다보면 하루가 항상 부족하다. 그래도 이곳에 있으면서 좀 더 아이들을 알아가고 점점 아이들이 웃음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내 스스로가 대견할 때가 많다. 시간이 항상 부족하지만 짬짬이 공부를 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상담공부와 아동 관련 법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곳에 있으면서 필요한 공부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독려하고 있는 중이다. 항상 시간이 부족해서 내일이 어떨지 생각할 여력이 없지만 그래도 좀 더 나은 내일이기를, 좀 더 웃는 이들이 많아지는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
아마 시간이 많이 지나면 나만의 명사와 형용사도 변해가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마음만은 잊지 않고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리고 인생을 마감할 때 슬쩍 웃을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