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젼>
나의 인생과 나란 존재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던 적이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이 있듯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게 무엇이 있을까? 꼭 남들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 등등,,그 때의 나는 갓 청춘의 길목에 들어선 그들처럼 고민하고 방황하며 청춘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었다. 난 더 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좋아하는 일에 미친 듯이 에너지를 쏟아 붇고 싶었다. 일 하고 있는 과정이 나에게 가치가 있고 재미와 보람이 있는 일이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런 일은 없는 것처럼 보였고 거기에서 오는 허탈함이 나의 청춘을 더 힘들게 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초등학교 선생님 이라는 직업이 막연하게 하고 싶어졌다. 원래 성격을 보면 선생님이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란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처음엔 많이 당황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답답하고 재미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다. 비행기를 타며 온 나라를 다 가보고 싶었던 그 때의 나는 갑자기 드는 이 생각이 일시적인 것 이라고 무시했다. 그러나 막연하게만 여기던 이 생각은 그 때의 모든 나의 상황을 멈추게 하였고 다시 교대라는 곳을 들어오게 할 만큼 강렬한 꿈이 되어버렸다.
그러고 2년 반이 흘렀다. 2번의 교생실습을 마쳤고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던 이곳에서의 생활과 일반대학과는 전혀 다른 교대만의 교육과정과 분위기는 나를 여러모로 지치게도 만들었고 ‘내가 왜 다시 이 길을 택해야 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흔들리는 그 때마다 다시 나를 중심 잡을 수 있게 한,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었다. 처음 아이들을 대할 땐 그냥 덤덤했다. 하지만 점점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직은 어떤 교사관이나 신념을 지향해야 할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 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도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양이 이쁘지 않아도, 반짝 반짝 빛나지 않더라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석이기 때문에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본연의 모습이 지닌 가치대로 빛나게 닦아주고 다듬어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간과하면 특출나게 아름답거나 단단한 보석만이 빛을 발하게 하고 나머지 보석들은 그 몇 개의 뛰어난 보석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돌맹이에 불과하게 만들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조금 모나고 쉽게 깎여지지 않는 보석을 만나도 내가 받아왔던 이전의 교육 방식대로 똑같은 길을 가라고, 그게 최선의 길이라고 장려해주는 그런 뻔한 선생님은 되고 싶지 않다. 무엇을 못하고 잘하는 것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너니까. 가장 너 다운대로 올바른 인성을 가지고 자라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누구에 맞서도 부족함 없는 나의 능력을 키워 교사로서의 전문성도 인정받고 싶다. 아무리 마음이 따뜻하고 아이들을 위하는 교사여도 내가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게 설 수 없을 것 같다. 교사로서의 전문성 없이는 현실적으로 이런 나의 소신과 신념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교육에 대한 신념과 앞으로 교육 현장에서 실현시킬 나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세워보겠다.
5년후 - 교직 4년차. 어느 정도 학교 일이 손에 익고, 아이들을 대하는 법에도 익숙해지겠지만 여전히 우리 반의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는 늘 설렘을 간직하고 싶다. 5년 후면 내 인생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될 시기이다. 교사로서 뿐만 결혼을 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도 태어났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극성인 학부모들이나 다루기 힘든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 더 깊어져 있을 것이다. 3년 동안 학교생활로 처음의 열정을 잊어가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그 시기를 기회로 대학원을 다니며 영어교육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 담임에 안주하지 않고 남들보다 조금은 더 특별난 능력을 키워 앞으로 교육현장에서 이루고 싶은 나의 꿈들을 위한 준비 기간이 될 것이다.
10년후 - 대학원을 졸업하고 남들보다 더 노력한 결과로 그토록 꿈꿔왔던 영어권으로 파견교사를 가게 된다. 아마도 나의 인생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을 하고 바쁠 시기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일이나 성공을 위해 가정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 바쁜 엄마와 아내로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미안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쉽지는 않겠지만 육아와 교사생활과 초등영어교육에 대한 연구를 함께 병행하겠다. 그리고 영어권의 파견교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공부 중에서도 특히 초등 영어 분야에 대한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고 오겠다. 외국에서의 생활은 교육에 대해서나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나 안목을 다시 한 번 더 키우게 될 것이다.
20년후 - 40대의 중반을 보내는 나이가 된다. 집에서는 중/고등 학생을 둔 엄마로, 학교에서는 영어 전문 교사로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파견교사를 갔다 온 후, 터닝 포인트가 되어 더 심도 있게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 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학교의 모습은 많이 바뀔 것이고 영어교육은 10년 전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동안 부단히 노력한 결과로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는 일이나 대학 강의 등 나의 역량을 학교 안팎으로 많이 펼칠 것이다. 간간히 나를 스승으로 찾아주는 제자들을 보며 아이 한 명 한 명을 가치 있는 보석으로 여기며 올바르게 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이 되어야지. 했던 나의 초임 때의 다짐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10여년의 교사생활에 대한 계획도 세우는 시기가 될 것이다.
30년후 - 30년 가까이 교직생활을 천업으로 여기고 몸담아 왔다. 이때쯤이면, 나의 고향인 곳에서 한 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거나 아니면 도시를 벗어난 작은 학교로 지원하여 교장을 맡겠다. 이때가 되면, 내가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게 한 처음의 그 이유를 다시 찾으려 할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지위나 나의 지난 성과물이 아닌 그냥 ‘아이들’ 그 자체만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노는 모습,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떠드는 모습들은 초등영어교육의 발전을 위해 이리저리 애쓴 나를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할 가장 큰 이유와 내가 30년 동안 교직을 천업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뻔한 선생님이 되지 말자던 처음의 다짐대로 다른 교사와는 유별난 교사로 30년을 보냈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나는, 정년퇴임을 한 후에도 젊은 교사들이 나보다 더 좋은 교사로 < 아이들에게 영향력 있는 교사, 전문성 있는 교사 >두 가지를 다 잡을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며 나의 교사생활을 마무리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