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두 달 만에 나는 학생에서 선생님이 되었다. 물론 진짜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일주일간의 교생실습에서 처음 보는 담임선생님, 아이들, 그들의 부모님 그리고 같은 반 교생들까지 모두들 나를 학생이 아닌 선생님이라 불러주었다. 솔직히 정말 부담스러웠고 부끄러웠다. 나는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스무살도 안된 철없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했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는데 선생님이라니,..... 처음엔 당황스럽고 매우 어색했지만 며칠 듣다보니 점점 익숙해지기도 했다.
대학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3년 동안 입시에 목매다 원하던 대학에 지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능에 실패하고 결국 포기하는 심정으로 쓴 학교가 지금의 내가 다니는 이곳이다. 이상적인 교사상 하나 없이 그냥 막연히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 하나로 교대에 지원했고 그래서 면접에서 나올까 가장 두려웠던 질문이 어떠한 교사가 되고 싶느냐 하는 것이었다. 교사는 내가 꿈꾸었던 직업이 아니었고 교대 또한 내가 원했던 대학이 아니어서 1학년 1학기의 수업은 최악이었다. 수업에 전혀 흥미를 못 느꼈고 3년 내내 지겹게 하던 공부에서 벗어나 나한테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단 자유가 주어졌다는 생각에 제대로 들은 수업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성적표 또한 최악이었다. 내 뒤로 50명도 채 안되는 등수를 확인하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래도 2년이라는 시간동안 교대에 다니면서 내가 느꼈던 바를 떠올리며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교사와 학생의 모습은 이렇다.
내가 꿈꾸는 교사의 모습은 첫째, 관심과 애정을 아끼지 않고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다. 더 많은 지식을 나눠주기 보다는 더 깊은 인정을 나눠줄 수 있는, 인간미 넘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둘째는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진실로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선생님은 아이들보다 한 발 앞서 세상에 나아간 사람이며, 세상은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싶다.
반대로 내가 꿈꾸는 나의 학생들의 모습은 첫째, 누구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사랑을 받을 줄도 알고 베풀 줄도 안다.
둘째, 누구보다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꿈을 크게 가져라, 보다 큰 꿈을 꿔라 모두 맞는 말이지만 꿈이 크던 작던 간에 자신의 꿈을 당당히 말하고 그 꿈에 다가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5년 후, 체격이 나만한 고학년 아이들이 우글대는 시끌벅적한 교실의 한편에서 수업하랴 공문쓰랴 바쁜 나의 모습이 상상된다. 의욕 넘치고 열정있는 젊은 여교사가 때로는 짖궂고 장난스런 아이들 때문에 때로는 웃기도 울기도, 감동받기도 상처받기도 하면서 나름 교사가 되길 잘했다 또는 못했다 하며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낼 것 같다.
15년 후,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이 뿐만 아니라 나의 아이가 나와 함께 등교하고 하교한다. 그러면서 교사의 입장이 아닌 학부모의 입장도 되어보고, 내가 처음 맡았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같이 과거를 회상하며 웃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보낸 10년여의 시간이 무색하지 않게 이제는 누구보다도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읽고 헤아려 줄 수 있는 교사로서의 자질도 갖추고 나름대로 아이들을 다룰 수 있는 노하우도 터득하게 될 것이다.
30년 후의 나는 솔직히 교사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아직까지의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내 평생을 걸 자신도 욕심도 없다. 살면서 다양한 직업을 가져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30년 후의 교사로서의 나의 모습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교사로서의 비전을 제시하기엔 아직 내가 너무 어린 것 같다. 선생님 소리 들을 줄만 알지 선생다운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선생님 소리 들을만한 자질을 갖추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이 과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의 막막함과 내가 내쉬었던 한숨에 대한 답이 아직도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 정답이 없는 문제이니만큼 힘들더라도 나 스스로 진정한 답을 찾기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