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갑자기 되고 싶었던 초등학교 선생님. 주변 사람들마저 내가 학업이 아닌 다른 것에 빠지면 내게 ‘세진아, 교대가야지’하며 날 제자리로 이끌어 줄 정도로 교대에 가고 싶은 나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다녔다. 정말 간절히 바라고 원해서 온 전주교육대학교. 교대에 가기만 하면 참교사가 되기 위해 뭐든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1학년이 되자마자 과 생활, 음주가무에 빠져 시간 흘러가는 대로 1, 2학년을 보내고 3학년의 반절이 지나갔다. 과제며 과외며 여유가 없는 생활 속에서 나는 예비교사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뚜렷한 목적이 없이 수동적으로 살아왔다. 이제야 나의 교직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의 교사로서의 롤모델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보다는 본인이 직접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다니셨다. 아무리 아이들이 어리다고 해도 교사가 본보기를 보이고 항상 바르게 행동할 때는 아이들 역시 따라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언행일치하며 모범을 보이는 교사가 될 것이다. 또한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으셨다.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을 파악하고 계셨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4,5,6학년만 참가할 수 있는 학예회에 내보내주셨고 그 때 당시 내 특기를 살려주고자 노력하셨던 선생님의 마음을 2학년이었던 내가 지금까지 느끼고 잊지 못하고 있다. 나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자 하셨다. 나도 이처럼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그렇기 위해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쏟는 교사가 되고 싶다. 한 반에 30명, 너무 많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들 30명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힘들 뿐이지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의 꿈을 이뤄줄 수는 없지만, 키워줄 수 있진 않을까.
또한 나는 어떤 것에든 열정이 있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교사가 될 것이다. 나태한 교사, 게으른 교사는 이미 교단에 설 자격도, 아이들을 대할 자격도 없다. 힘들어서 하기 싫다가 아니라 힘들어도 열심히 해서 더 큰 것을 이뤄내는 교사. 그 교사 밑에서 자란 아이들 역시 교사를 닮아가지 않을까. 열정이 있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교사가 수업도, 아이들과의 관계도, 학부모와의 관계도, 더 큰 일에서도 성공하는 교사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말한 것을 꼭 실천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말만 번지르르 하게 써놓은 것 같지만 이것을 모두 실천한다는 것이야 말로 부족함 없는 참교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나의 바람이자 소망이자 다짐이자, 반드시 해야 할 교사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된 나의 모습은 어떨까?
먼저 5년 후에, 나는 열정이 매우 가득한 교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열정이 너무 앞선 나머지 학생과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 동료교사의 관계 등 모두 신경을 쓰려다가 속으로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 부분에서 너무 권위만 강조하는 교사보다는 친근하게 다가가는 교사가 되길 원하지만 그 선을 어디까지 그어야 할지 몰라 항상 고민할 것이다. 미숙한 단계라 실수도 종종 있어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얻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모든 면에서 고민을 끌어안고 있는, 몇 년 동안은 정신없이 학교 일에만 빠져 살아갈 것이다.
10년 후에는, 이젠 웬만한 학교업무라면 능수능란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친구처럼 가까운 교사이지만 어느 정도 카리스마를 가지고 아이들을 대할 것이다. 조금이나마 생긴 여유에, 다른 것을 배우기 위해 매 방학마다 연수도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쌓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조금 배운 수화를 이용하여 수화 동아리도 만들고 싶다. 아이들이 수화를 접하면서 농아인들에 대해 거리낌이 없어지고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봉사를 통해 느끼게 해주고 싶다. 또한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우면서 비록 가정에서의 생활도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에 역할 갈등을 겪을 수도 있겠다. 둘 다 소홀할 수 없으니 잠깐 육아휴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을 것이며, 꾸준히 여러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교사라는 나의 달란트를 이용해 몇 년간의 시간을 투자하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해외의 많은 아이들에게 교육 봉사를 제공해 주고 싶기도 하다.
20년 후에는, 내 아이도 초등학교에 다닐 만한 나이일 것이고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더 우리 아이들에 대해 애정도 커지고 이해 못했던 부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년 동안 해오는 반복되는 수업 내용도 변화해가는 아이들에 맞춰 더욱 더 참신하고 새로운 교육 방법을 갖기 위해 매일 밤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이다. 학부모와의 관계 역시 아이를 키우는 같은 입장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30년 후에는, 거의 할머니 선생님 소리를 듣게 되겠지만, 초임교사 때만큼의 열정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교사가 될 것이다. 나이가 먹었다고 손가락만 까딱하는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 역시 내가 노력하는 교사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수업 준비도 제대로 하고 실력도 좋은 교사가 되어있을 것이다. 또한, 오래 전에 가르쳤던 제자들이 찾아오는 그들의 추억 속에 남는 멋진 교사가 되어있을 것이다. 내가 조금 나태해졌다 싶을 때는 과감히 교편을 놓는 진정한 교사가 되고 싶다.
나는 교회 중등부 교사이다. 5월 28일 토요일 상경투쟁을 갔다 온 다음 날 지친 몸을 이끌고 교회에 갔다. 내가 맡은 반은 중1여반이고 5명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날, 나는 그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참지 못하고 너무 창피하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를 무시하는 아이들.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아이들이 너무 야속하기도 했고 정말 못해먹겠다 때려쳐야겠다 약한 생각은 다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5명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과연 내가 30명이 넘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목적교대 임용고시를 폐지하라 아이들 수를 줄여 달라 T.O를 늘려달라' 하기 전에 나를 다시 되돌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부족한데 내 밥그릇 챙기기에만 연연했고 정작 나를 갈고 닦지 않았던 것이다. ‘참’교사가 되기 위해 더욱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더 많이 노력하는 예비교사가 되기 위해 지금 당장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