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에는 나의 구체적인 가치관, 꿈꾸는 교사상, 구체적 행동 방침과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통찰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전 선언’이라는 것을 하기에 앞서 나에게 아직 명확한 교사상이 없을뿐더러 사실 교사의 비전이 내 안에 확고하지가 않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앞으로 꾸준히 고민해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은 학생의 신분이라 ‘교사’라는 직업을 통해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학업을 돕고, 학교 행정일을 하는 것 외에 어떤 것을 더 해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근 3년간 교대를 다니고 실습, 교육봉사로 만난 여러 아이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교사가 된다면 이 아이들을 학교로 인해 억눌리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초등학교는, ‘학업’을 배우는 곳이자 아이들이 가장 처음으로 겪는 ‘작은 사회’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작지만 여러 관계 속에서 학업을 비롯하여 가정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경험한다. 동시에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가정의 영향을 그대로 안고 온다. 때문에 각양 각색의 아이들이 각자 행동하는 방식이 다르고, 관계맺는 법, 학습하는 방법도 다르다. 하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교사는 학생에게 ‘교육자’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방식을 정답인양 강요하고, 선입견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본인이 자라오면서 내면화한 교육 방침과 생활 방식일 것이다. 나는 어떤 정해진 지침을 제시하고 그것을 따르기를 요구하는 딱딱한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 학생의 행동 하나하나에 잣대를 대고 이리저리 판단하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섣불리 결정 내리기에는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다. 내가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방식으로 대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이 달라지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학교의 영향이 크다. 일단 입시제도 부터가 그렇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정확히 외우고 학교가 요구하는 답을 제출하는 학생이 가장 똑똑한 줄 알았고 그렇게 자라왔다. 그러나 커보니 그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제야 안 것이 조금 억울했다. 그 아이들은 성실하거나, 암기력이 좋거나, 판단력이 좋거나, 혹은 어쩌면 부모님의 치맛바람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학교 안에서 의문을 품지 않고 당연시하며 내면화했던 가치들이 대학생이 되어 보니 그것들과 나란히 하는 다양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애석하게도 그당시에 나는 알지 못하였다. 왜 그랬을까. 나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은 그것을 몰랐을까? 그간 이어져온 교육방침을 무비판적으로 따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내가 아직 현실에 부딪히지 못해서, 너무 이상적인 눈으로 학교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각자의 스타일과 흥미와 재능을 인정받고, 공동선과 학교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학습하고 관계 맺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