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활동(방송 & 신문)

교사의 평가권을 보장해야!- <교육월보>1999년 11월

미래 교육 2008. 3. 7. 01:55

 교사의 평가권을 보장해야!


 

이 기사는 1999년 11월 <교육월보>에 게재된 기고문입니다!



최근 교육부가 제시한 여러 가지 정책들-절대평가제, 수행평가, 학생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은 우리 학교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교사의 자율적 권한을 보장하지 않은 채, 다른 나라의 제도들을 우리의 학교현장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교육부의 정책들은 일선 고교의 성적 올려주기, 재시험 파동, 학생들의 공부 안 하기, 학교수업의 파행적 운영 같은 문제들을 계속 발생시키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교사의 자율적인 평가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사회의 문화와 학교풍토를 무시한 정책들은 결국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일류대학을 나와야 출세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능력이나 적성에 관계없이 부모들의 의사에 의해 대부분의 중학생들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고등학교의 교육은 대학진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고등학교는 단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가는 정거장에 불과하다. 학교는 자기 학생들을 대학에 더 진학시키려 애쓰고, 학부모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기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고 한다. 치맛바람이라는 것도 그래서 생겼고, 촌지도 역시 그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고등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은 일류대학에 입학시킨 학생수이다. 교육의 목표는 훌륭한 시민을 양성하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이지만, 실제로 교육활동과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은 일류대학에 몇 명을 진학시켰느냐 하는 숫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학교는 자기 학생들을 대학에 더 보내기 위해 성적을 올려주는 경쟁을 벌이게 된다. 대학 진학을 위해 학교장 또는 교사의 추천서를 쓰는 경우에도, 모든 학교들이 학생들의 실제의 능력, 적성, 성품, 특기 등을 과장하여 좋은 말만 써서 자기 학교 학생들을 대학에 더 많이 보내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가족이기주의가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기 가족이나 친척만 잘 살면 되고 그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대부분의 학교들이 자기 학교 학생들을 대학에 더 많이 보내기 위해 비교육적이고 부정의한 일들을 서슴치 않고 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학교이기주의는 모두가 손해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 학교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들도 모두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줄 것이고, 그에 따라 내신성적의 변별력과 타당도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대학에서는 변별력이 있고 객관적인 기준이 될 새로운 시험(논술, 본고사, 구두시험 등)을 실시하게 될 것이다(중앙일보,1999.9.7).

결국 이런 학교이기주의와 성적 부풀리기 경쟁은 학생들의 수업의욕을 떨어뜨리고 학생의 시험부담을 더 가중시킬 것이다.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절대평가제 이후 시험문제가 쉽게 나오니까 약 70%의 학생들이 평소 수업시간에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학교수업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문화일보:1999.9.1). 학생들 스스로도 성적 올려주기로 인한 공부 안 하는 분위기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학생들의 43.3%가 절대평가제와 내신성적에 의한 대입전형이 시험부담을 줄여주지만, 공부 안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즉 중간층의 학생들이 학교수업에 참여할 동기를 부여받지 못해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공부 안 해도 된다는 분위기 때문에, 학교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중상위권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려가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사설입시학원의 경우 고1 학생들의 수강률이 10%정도 늘었다고 한다. 일부 사설학원들은 학교의 수행평가 과제물을 대행해주면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시험부담을 줄여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다양한 재능을 개발한다는 교육부의 정책들은 우리 사회의 이기적인 문화와 학교풍토로 인해 왜곡되어 여러 가지 문제점을 계속 발생시킬 것이다.
또한 교사의 수업과 평가과정에 학교장의 통제와 학부모들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예를들면 '왜 판서 내용이 적으냐', '요점을 정리 안 해주느냐', '반별 평균점수차가 크게 나지 않게 하라', '절대평가제이니까 대부분 평점이 "미"이상 되도록 시험문제를 출제하라' 등등 교장과 교감이 교사의 수업과 평가과정에 일일이 간섭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평가과정에서 학교장의 간섭은 더욱 심하다. 현행 제도에서 교사들은 시험문제와 수행평가의 방법과 기준을 교장의 결재를 받아야만 실시할 수 있게 되어있다. 실례로 지난 7월 기말고사에서는 교감이 평균 70점 이상 되도록 시험을 출제하라고 교사들을 종용하였었다. 평균 점수가 낮은 교과목의 교사들은 교감이나 교장으로부터 무능하다는 질책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수행평가의 경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교장은 최고와 최저 점수차가 약 10점 정도로 하고 등급간 점수차도 보통 2-3점 정도로 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등급간 점수차가 별로 나기 않기에 교사는 학생의 행동을 정확히 평가할 수 없고 학생들은 대충하거나 다른 학생들의 과제물을 베끼는 경우도 많다. 열심히 노력한 학생이나 남의 것을 베끼는 학생들 사이에 점수차가 별로 나지 않기 때문에 수행평가의 본래의 의미가 상실되고 있다.

게다가 학부모들은 왜 다른 학교보다 시험을 어렵게 내서 자기 자식이 피해를 보게 하느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교사의 수업내용이나 방법에 대해 간섭하는 학부모들도 종종 있다. 한국교원단체 총연합이 98년 12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사들의 50.3%가 학부모들의 간섭으로 인해 좌절감과 의욕상실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조선일보,1999.4.6). 이렇게 교육부, 학부모, 학교장들이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자율적인 평가권을 보장하지 않는 풍토 속에서는 수업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교사의 자율적인 평가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 절대평가제, 수행평가의 확대, 학생중심의 교육과정의 운영은 계속 여러 가지 부작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그런 제도들이 공부 안 하는 분위기를 줄이고 학생 스스로 공부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의 평가권을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급제도도 필요하다. 현재에도 유급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해서 낙제된 학생이 단 1명도 없다. 학생들은 공부를 전혀 안 해도 출석일수만 채우면 졸업할 수 있기에 공부 안 해도 된다는 생각과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다.

지난 1학기에는 교장의 통제와 학무보들의 압력에 못 이겨, 서울시내 전체 286개 고등학교 중에 26개 학교가 재시험을 실시하였다(조선일보:1999.9.3). 이 학교들은 평균점수가 50점이하인 과목들을 재시험을 쳐서 평균 80∼90점 정도로 성적을 올려주어서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청은 재시험을 통해 성적을 올려준 평교사들만 징계를 하였고, 실제로 재시험을 지시한 학교장에 대해서는 징계하지 않았다. 이렇게 실제로 시험문제 쉽게 내기와 재시험 등을 통해 성적 올려주기를 주도하거나 종용했던 학교장을 징계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다음 시험에서도 성적 올려주기와 재시험 파동은 계속 발생될 것이다.

교사의 평가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규시험과 수행평가의 방법과 기준을 선정할 때 거치게 되는 교장, 교감의 결재제도를 폐지하고, 교사에게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 2002학년도 7차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대학교처럼 교과목을 선택하게 한다면, 교사에게도 대학교수처럼 평가권을 확실히 보장하고 낙제제도를 두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지 학교장이 간섭하지 못하게 제도화하고, 담당교사가 자율적으로 시험을 실시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면 될 것이다. 특히 수행평가의 경우 평가방법, 채점기준 등을 교사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나중에 학교장에게 서면으로 제출하는(결재가 아니라) 방식을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거나 부정이 발생된다면, 그 교사를 엄중하게 처벌하면 될 것이다.

유급제도가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학생들을 낙제시켜서 학생 수급에 문제가 된다면, 최소한 40점이하의 학생들은 낙제시키는 제도가 필요하다. 특히 7차 교육과정에서 학생이 선택하는 교과목에서 유급제도가 없다면,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방치하는 것이요, 우리나라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떨어뜨려 국제적인 경쟁력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앞에서 보았던 것처럼,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가지 정책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교사를 신뢰하고 자율적인 평가권을 보장하며, 유급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문제 쉽게 내기와 성적 올려주기 경쟁, 재시험 파동, 학생들의 공부 안 하기 같은 문제들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최근 체벌도 금지하는 추세이고, 퇴학이나 정학 같은 징계도 사실 어렵고 교사의 자율적인 평가권도 보장되지 않아서, 교사들이 평소 수업시간에 공부하지 않고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을 통제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교권은 무너지고 있으며 학교수업은 붕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