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전주교육대학교
영어교육과 20070365 김현미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다른 사람들은 굉장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시험을 치고 입학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했거나, 부러워만했던 그 초등학교에서 그 시절에 나는 이렇다 하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없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선생님들을 떠올려보면, 어린마음에 생각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무섭고 딱딱하고, 어려운 사람으로 비춰졌다. 나는 그저 조용하고 숫기하나 없는 수동적인 아이였다. 워낙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 많았고 그 아이들은 항상 활발하게 교실을 장악하곤 했다. 각종 발표회나 낭송회 반장선거는 물론 회장선거에, 주말만 되면 배달되는 간식들, 모두 그네들의 어머니들의 교육열이 한 몫 한 결과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 아이들과의 이질감. 그 아이들에게만 신경 쓰시는 선생님의 모습, 하지만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관심받기를 간절히 바란 적도 많았던 거 같다. 가끔 받는 그림대회 상이라든지, 모범상을 탈 때면 나도 모르게 으쓱해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훗날 종종 초등학교 소식을 들을 때면 가끔 씁쓸한 적도 몇 번 있다. 촌지로 인해 그 학교의 몇몇 교사들이 구속된 적도 있다는 소리도 들렸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2학년 때 만났던 그 수학 선생님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모두가 그 분의 엄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지만, 수업 외에는 무척이나 다정하신 분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2학년 문과, 우리 때는 수학이란 과목은 그저 대학진학을 위한 수단이었고 많은 아이들이 수학이라는 과목을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 선생님께서는 많은 아이들이 수학을 쉽게 따라오도록 지속적으로 격려하고, 많은 관심을 쏟아 부으셨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교무실까지 찾아가 선생님께 이런 저런 질문을 해댔다. 가끔은 엄마처럼 이런저런 따끔한 말씀도 해주시고, 수업내용이든 그 외의 내용이든 잘한 일에 있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하락세만 보였던 내 점수도 그 선생님의 지도 덕에 수학실력은 일취월장하였다. 나는 그 선생님이 그저 수학적 지식만을 우리에게 전달했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 선생님께서 보이셨던 학생에 대한 따뜻한 관심, 그게 수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선생님을 믿고 의지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이를 계기로 나는 교사가 되기를 원했고 교대라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간절한 목표에 비해 나의 고3 생활은 그저 부족한 내 자신을 발견하게만 했다. 결국 첫 수능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나는 재수라는 또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또 다른 1년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고 마침내 교대에 입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교대에 들어온 후 시간이 지날수록 교대생활에 대해 무기력함을 많이 느꼈었다. 이미 짜여 진 시간표나 자유스러움이 없는 교양과목들, 뭔가 대학은 고등 적 학문을 추구하는 기관이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나에게 교대는 오히려 고등학교 때보다 느끼고 깨닫는 지식이 별로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3학년이 되고나니 전공과목으로 채워진 시간표에서 많은 버거움을 느끼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년간 내가 예비교사로서 무엇인가를 해왔는지에 대해 아무런 뿌듯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교과목 이외에 외부 활동이라든지 어떤 지식탐구에 있어서 내 자신을 고양시키는 데 아무런 노력도 내 스스로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예비교사로서 나에게 부족한 점이 드러나고, 그 주어진 시간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해왔었는지, 점점 자신 없어지는 내 학교생활과 부족한 내 자신을 어떻게 하면 매울 수 있는지에 대해 자꾸만 고민이 들었다.
이와 더불어서 최근에 나에게 찾아온 고민은 바로 매너리즘 이었다. 1학년 중반부터 용돈도 벌 겸 학생을 가르치는 노하우나 경험도 쌓을 겸 과외라는 활동을 시작했었다. 여러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쳐 봤었는데, 확실히 아이들마다 성격이 각각이고, 공부하는 방식이라든지, 고민하고 있는 문제라든지 모두가 제 각각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 그들을 가르치는 나는 모든 일에 열성적이고,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기억하게 하고 뜻 깊은 지식으로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을 하고 준비를 했었다. 오히려 과외 활동을 하면서 내가 배우는 지식이 많았고, 내 스스로가 풍부해 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그 아이들이 기뻐하는 일이 있으면 나도 기뻐했고, 종종 그 아이들의 성격이 나와 비슷해지는 것을 느낄 때도, 가르치는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 크구나, 내가 그 아이들에게 어떠한 신뢰와 믿음을 받고 있을 때, 이 아이들이 따라오는 그 느낌이 이런 거구나 하면서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 아이들이 갖고 있는 고민을 어떻게 하면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아이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제 2의 언니나 누나처럼 편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던 거 같다. 그러나 1,2년이 지나고 나니 이미 그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지식도 바닥을 드러내고, 이미 내가 풍족하게 알게 된 지식이니 더 이상 그 지식에 대한 탐구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다. 그네들의 고민을 들어주기보다 한 문제라도 더 풀게 하고 외우게 해서 진학이라는 목표, 성적 향상이라는 목표에 어떻게 하면 좀 더 다가갈 수 있을까. 주어진 2시간이라는 과외 시간 동안 어떻게 해야 이 정도의 진도를 끝내고, 부모님에게 눈치를 받지 않고 과외비를 타낼까 라는 등등. 점차 그 아이들에게 가르치러 가는 시간이 지루해지고, 부담이 되고, 재미가 없고, 하지만 과외비라는 명목 때문에 가기는 해야겠고, 아무런 보람도 없이 그저 시간만 채워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나를 너무 괴롭혔다. 내가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한다면, 내가 훗날 교사가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또 하게 되진 않을까 그 때의 나는 어떻게 그 상황을 대처할 수 있을 까 하는 생각 들. 교사라는 직업이 정말 나에게 맞는 직업일까, 나로 인해 그 아이들이 올바른 길로 가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나는 정말 부족한데. .. 라는 생각들이 나를 항상 옭아맸다.
그렇게 지난 달 모든 과외를 그만 두고, 마음에 안정을 갖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 박자 물러서서 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교대에서 2년을 보내고, 그리고 3년째 접어든 나에게 교대라는 틀이 굉장히 나를 선생님으로서 고민하게 만드는 환경을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게 되는 관련 서적이나, 고민하게 되는 거리들, 접하게 되는 사례 등등이 모두 아이들과 관련된 일. 봉사활동이든, 독서이든, 투쟁이든, 학교 행사이든, 실습이든 그 것이 무엇이든 간에 예비 교사로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들고, 그러나 나는 그 상황에 주어졌을 때 그것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안일하게 시간을 보내기만 했던 거 같다.
이러한 외부적 상황과 내 스스로의 고민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 스스로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처음에 이 과제를 받았을 때, 이런 과제는 보다 1학년 때 해야 뭔가 명확하게 목표가 잡히고 교대 생활이 더욱 즐겁지 않을 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시점에 와서 이러한 고민을 하게 만든 이유에 대해 감사하게 느끼는 것이 내가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고, 좌절했기 때문에 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던 교사라는 직업에 더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내가 이 안일함과 무기력함 속에서 바둥 거리는 오늘날, 내가 이러한 외부적 고통이나 고민, 번뇌들로부터 초심을 잃지 않고, 교사로서 아이들을 향한 자세를 온전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바로 비전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그렇다면 어떠한 교사가 되고 싶은가. 초,중,고 그리고 재수학원의 강사분들이나, 학원선생님들, 과외선생님들, 숫하게 많은 분들을 만나오면서, 그리고 그들을 돌아보면서 그리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들었던 각종 고민과 생각들, 그리고 교대에 들어와서 3년째 보내는 동안 내가 느끼는 교사란, 물론 전문적인 지식도 필요하고, 그것을 열정적으로 전달하는 사람 또한 무엇보다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교사가 아닐까. 아이들의 성적만을 향상시키고 그들은 등수로 서열화 시킨다거나, 다른 반과의 경쟁으로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것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 그렇게 서로 교감하고, 서로의 생각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공부이든, 자기 내면의 문제 이든, 집안의 문제이든 간에 그것을 파악하고 같이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교사상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러한 교사가 되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해야 할까.
대략적인 계획이지만, 나는 위와 같은 교사가 되기 위해 다음의 노력을 하고 싶다.
졸업을 한 뒤 5년 후 나는...
대전으로 임용을 지원한 뒤, 한국교원대학교의 대학원에서 좀 더 교육학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세부전공으로 교육심리학을 배우고, 교육 연구 방법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탐구를 하고 싶다. 중간 중간 미술치료라든지, 상담이나 심리치료와 같은 모임 등에 참여 하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지적, 심적으로 준비를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사실 간절한 목표 중에 하나가 해외에 나가서 다른 학교의 교육 현장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교육학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완전히 심도 있는 전공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학을 가서 아동의 심리나 미술치료 등에 관련 경험을 배우고 싶다. 또 내가 영어교육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학창시절에 가장 많은 고민과 노력을 들였던 것이 영어라는 과목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영어에 대해 학생들이 갖는 두려움이나 어려움 등을 탐구해 보고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영어를 학습할 수 있는지, 사적인 교육기관의 도움 없이도 공교육 내에서 영어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탐구하고 경험하고 싶다. 이러한 지적 탐구를 통해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길러내고, 각종 교구의 개발 등 교육방법들을 고안하고 싶다.
10년 후 나는,
학교 현장으로 돌아와 담임교사 혹은 영어 전담 교사로서 능력을 다할 것이다. 지식만 충만하고 경험이 부족하다면 이는 죽은 지식에 불과할 것이다. 앞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담임교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면서 아이들의 지적, 심적인 호기심과 고민을 들어주고 싶다. 학생들의 학습이 주가 되지 않고, 아이들의 말 하나하나 표정과 몸짓 하나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이들이 갖는 고민거리 고통 등을 미술, 심리치료를 기반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또한 영어 전담교사의 기회를 갖게 된다면, 그 동안의 고안하고 탐구했던 결과물을 현장에 적용하여 보완 수정하는 방식으로 전문성을 보다 향상 시킬 것이다.
20년 후 나는..
아이들을 교수하는 중간 중간 영어 교수관련 서적 혹은 교수 방법 기구들을 학교 현장에서 어느 교사든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이때쯤 되면 교직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배우는 내용이 많을 거 같다. 이를 기반으로 나의 학교생활과 관련된 아이들과의 일을 글로 엮어 내어 나의 일생의 기록처럼, 그리고 누군가에게 교수방법으로서 전달 되도록 하고 싶다. 이제 막 현장에 적응 하는 교사들에게 아이들 사이에서 혹은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일 들을 어떻게 풀어가는 지 하나의 지침서로서 말이다.
30년 후 나는...
이 정도의 시기라면, 어느 정도 은퇴할 나이가 되었다고 본다. 이때에 나는 숲속에 작은 생활학교를 하나 만들고 싶다. 그 학교에서 소일거리를 하면서, 주말이나 휴일에 아이들이 이 생활학교에 놀러 와서 일반 학교 현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연 환경 속에서 하나 되는 삶을 경험하게 하거나, 일상생활의 삶에 지친 아이들이 그림이나, 상호 상담 활동을 통해서 마음을 치유하고 다시 활기차게 한주를 생활하도록 하나의 쉼터 역할을 제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