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

국어교육과 김지운

미래 교육 2009. 5. 30. 23:53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는 결코, 단 한 번도 교사를 꿈꿔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커서 어른이 된다면 교사만큼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이러한 생각은 딱히 어떤 특정 교사의 차별대우나 비인간적인 태도에 대한 경멸에서 비롯한 거부감이 아니라, 그저 내게는 교사라는 직업이 재미없는, 그래서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직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교육자 집안에서 자랐고, TV앞에서나, 식탁에서나, 심지어는 이따금씩 있는 집안 모임에서도 학교 교육 현장의 이야기들이 들러왔다. 덕분에 나는 교사, 특히 초등교사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결코 또래들이 가지는 담임교사에 대한 경외감이나 막연한 동경심, 환상 따위를 가질 수 없었다. 만약 반드시 미레에 대한 꿈이나 비전을 가져야만 한다면 그것은 조금 더 매력적인 것이기를 바랐다.

 

조금 더 매력적인 직업―나는 어려서부터 글을 읽고 쓰는 일을 몹시 즐겼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작가를 꿈꾼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 학창시절 10년간의 꿈은 단 한 번의 변동도 없이 확고하게 작가였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그 꿈이 방송작가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나는 대학에서 언론정보와 방송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다행히 한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와 시사정보프로그램의 구성을 맡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동경하고 상상하고 바라던 꿈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셈이었지만, 난 여러 이유로 3년 뒤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나는 스물여섯이라는―패배감과 절망만으로 세월을 허비하기에는 너무 어린―나이였기 때문에, 남은 인생을 꾸려나갈 또 다른 선택을 원하지 않더라도 해야만 했다. 만약 세상에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나뉘어 존재한다면, 이제껏 하고 싶은 일을 해왔으니 이제는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오만한 마음, 솔직하게 말해 그것이 내가 교대를 선택한 유일한 이유였다.

 

분명히 시작은 그랬다. 나는 좀 쉬고 싶었고 대학은 쉬기에 매우 적절한 공간이었으며, 나는 아직은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원하고 싶지 않았고 교사를 준비하는 것은 나에게 큰 부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교대를 다니면서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강력한 소명의식을 필요로 하며, 그러기 위해 나는 얼마나 더 많이 깨지고 다듬어져야 하는가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어릴 적 작가를 꿈꾸던 그 마음으로 교사를 꿈꾼다. 잘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교사를 꿈꾼다. 나는 이제 조금 더 제대로 된 교사로 바로 서기 위해서 공부하고, 준비하며, 기도한다. 비록 난 첫 번째 꿈에는 실패했지만, 내가 겪은 실패의 경험이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공부하고, 겪어온 모든 것들이 내 삶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으로 전해가는 것, 이것은 매우 무거운 책임감이기도 하지만, 놀랍도록 가슴 뛰는 일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내가 원하던 조금은 더 매력적인 직업―교사도 어쩌면 여기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내가 되고 싶은 교사상은 ‘중보기도자로서의 교사’이다.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사실 교사가 특정 종교관을 가지고 학생을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종교관으로 인해 나와 종교가 다른 학생이 인격적으로 상처를 받거나 학교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보기도자로서의 교사가 되고 싶다. 크리스천인 교사가 학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내 학생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학생들을 마음에 품고, 이해하고, 아끼며, 그들이 올바른 길로 나가도록 기도하는 교사,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중보기도자로서의 교사인 것이다.

 

*5년 후- 서른 넷.

나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초보 교사, 초보 아내, 초보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내느라 한창 버둥대고 있을 내 모습이 상상된다. 어쩌면 대학원에서 조금 더 깊은 학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매우 바쁜 날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졸업 후 바로 임용이 된다면 이제 4년차 교사일 것인데, 아직은 업무도 수업도 완벽하게 체득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못할수록 더욱 학생들에게 완벽한 수업을 제공해주고 싶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수업을 위한 연구와 연수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전공을 살려 방송반을 담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새로운 직장과 가정, 그리고 학생들을 겪으면서 생기는 많은 경험들이 글을 쓰는 데 많은 영감을 줘서 글을 쓰는 것도 쉬지 않고 있을 것 같다.

 

*10년 후- 서른 아홉.

아마 10년 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역할갈등이 될 것 같다. 내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것이고, 내가 초등학생일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엄마의 빈 자리였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비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마중 나오는 엄마가 있는 친구가 부러웠고, 하교 후 불 꺼진 차가운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나도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집에 있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마 이때쯤, 휴직이나 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더 늦기 전에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기도 하다. 학문적으로도 조금 더 깊은 성취를 얻고 싶고, 외국의 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을 병행하면서 다른 나라의 교육 체계나 이론들을 몸소 체험해 보고 싶다. 이십대 초반에 중국에서 1년간 유학하면서 그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데, 그런 경험을 살려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도 외국인이나 다문화가정 아동의 교육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년 후- 마흔 아홉.

아마 마흔 아홉쯤에는, 개인적인 공부를 마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고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한 두 강좌를 맡아 강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름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논문이나 학술지도 끊임없이 집필하면서 학생들을 올바로 가르치고 지도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할 것이다. 아마 이 시기에야 말로 진정한 소신과 비전이 필요한 때가 될 것 같다. 편부모, 다문화가정, 폭력가정 등의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도할 것이고, 이들을 위해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글들을 쓰고 싶다.

 

*30년 후- 쉰 아홉.

정년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정년퇴임을 했거나, 정년이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미 현장을 떠나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50살 이상의 나이차이가 나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한계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는 경험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이해와 공감인데,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 그리고 학생들에게 내가 그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일은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젊고 패기있는 교사들에게 맡기고, 나는 물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아마, 장서가, 아동문학가, 교수 정도가 가능할 것인데, 먼저 내가 그동안 모아왔던 책들을 모아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지어주고 싶다. 아이들이 와서 맘껏 책을 읽고, 느끼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나도 가끔 도서관에 나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도 해주고, 책을 고르는 것을 도와주고, 때로는 책도 읽어주는 삶을 살고 싶다. 또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으니 그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을 위한, 또 예비교사를 위한 글들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현장의 경험을 살려 예비교사를 위한 강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그리고 30년 후에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삶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교대에 왔고, 진정한 교사가 되겠다는 소명을 가졌고, 중보기도자로서의 교사로 내가 앞으로 만날 아이들 한명 한명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겠다는 목적도 이제 겨우 가졌다. 이러한 내 비전들이 앞으로 몇 십 년 후가 될지라도 잊지 않고, 변하지도 않고, 내 마음과 삶에 남아 있기만 한다면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든, 그것이 ‘행복한 교사’의 모습임은 분명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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