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나에게는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 가를 결정하는 이유이다.
교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문과 학생인데도 수학을 좋아했었기에 수학교사가 되고 싶은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요새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여러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접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학생들인 많은 듯 하다. 하지만 내가 게을러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인생 최대의 목표는 오로지 대학입학뿐이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아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입학 후 6개월 만에 군에 자원입대하고, 30개월을 꽉 채워 제대한 후 고등학교 시절 갖고 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범대 교학과에 교직과목 이수여부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학기수가 맞지 않기 때문에 교직과목을 들어도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는다. 이때 가능하였다면 지금 아마도 어디선가 수학선생님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꿈을 잠시 접어두고 기업체에 입사한다.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를 광분하게 만든 인터넷 사이트가 등장한다. '아이러브스쿨'. IMF를 거치면서 정신적으로 지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로 그 허기짐을 메워주었다. 이것이 나의 사그러져 가는 교사에 대한 꿈을 다시 지핀 계기가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을 만난다. 내가 이들을 만난 이유는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했지만 더욱 궁금한 이유는 한 동급생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몇 일 남겨둔 수업시간에 담임선생님은 맨 뒤에 앉은 반장과 그 짝을 일으켜 세우신다. '니네 둘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조심해라. 싸움에 휩쓸리지 말고, 나쁜 짓 절대하지 말고 등등' 정확한 얘기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초등학생인 나에게는 '반장인 학생'에게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오히려 내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이 얘기를 그 친구에게 했다. 그 친구는 깜짝 놀라면서 내가 그걸 어떻게 여태 기억하고 있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많은 유혹이 있었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주먹질 좀 하는 아이들과 어울려도 일정한 선을 넘을 수가 없었고, 특히 고등학교 때는 나와도 친구였던 아이가 우발적으로 쉬는 시간에 저지른 살인사건의 당사자가 본인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폭력 조직에서의 가입 권유 등 너무도 많은 검은 유혹들이 있었지만 선을 넘어 갈수 없었던 이유는 단지 한 가지. 졸업에 임해서 담임선생님께서 해주신 그 말씀 덕분이라고 했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른 직원들이 쉽게 해보지 못한 업무를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승진도 하고, 많은 성과급도 받아 간다. 업무상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접대를 할 경우도 많이 생겼다. 그때마다 갖는 생각이 이 사회가 좀 더 착해질 수 없을까하는 바람이었다. 이런 고민의 근원은 내 자신이 모태신앙이었기 때문에 갖는 소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해 내 자신이 좀 더 착해질 수 없을까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라는 책이 유행한 적도 있지만 실제 배운 것과 실천의 문제는 별개임을 많이 느꼈다. 술, 권력, 비리, 회피, 멸시, 학력, 남녀 성차이 등 조금만 더 사람들이 착해지면 이런 문제들로 인해 가슴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적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착하게 살자'라는 나의 모토가 조직을 떠나고자 하는 조폭의 다짐처럼 들린다고 피식 웃는 동료들도 있었다. 이 사회가 착하게 살기 힘든 사회가 되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착하게 살 수 없게 된 사회가 벌써 되어 버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사회가 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rapport"를 이 사회가 갖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 다른 길도 있었겠지만 내 인생에서 교사가 되고 싶어했던 그 소망을 이룰 수도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또한 내가 겪은 교사에 대한 그 강렬한, 막강한, 긍정적인 체험은 나에게 그 동안의 쌓아온 세상의 성과물들을 미련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5년 뒤, 10년 뒤에 무엇을 할까하는 생각보다는 지금처럼 봉사하는 마음과 행동으로 살고 싶다. 현재처럼 기도하고 봉사하는 생활을 5년 뒤, 10년 뒤, 정년 뒤에도 변치 않고 싶다. 수급가정 또는 차상위 계층 가정의 아이들을 방과후에 보살펴주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한가지이다. 이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바닥을 형성하겠구나. 부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은 책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일이다. 이런 센터에서 공부도 가르치나 이 아이들이 이곳에 오는 목적은 공부를 하기위해서라기 보다 밥을 먹기 위해, 낮에 갈 곳이 없어서라고 느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가 되어도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아이들, 학업성취도 평가를 준비하기 위해 나눠주는 학습지의 오답을 어떻게 푸는지 보다는 풀이과정을 베껴 써 제출하기에 급급한 6학년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인 방법을 제시해주기보다 할당된 문제집 풀기를 강요하는 센터직원들.
내가 소망하는 '착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이 '착한 아이'들을 위해, 그것이 단 한명이 될지라도, 그곳이 비록 낮은 곳이라도 지금처럼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몸으로 실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