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늦은 나이에 다시 교대의 문을 두드려 3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솔직히 어떤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끔씩 과제로 자신이 바라는 교사상에 대해 써 보라는 주제가 던져졌을 때,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교사상들을 적었을 뿐 왜 그런 교사가 되고 싶은지, 그런 교사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제가 왜 교사가 되려는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계기를 돌아보았습니다. 짧은 삶을 돌아보니 두 가지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한 가지는 10년이 넘는 학창시절 동안 잊히지 않은 은사님과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제 담임선생님은 어쩜 제가 바라는 교사상의 role model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선생님들은 솔직히 제게 어떤 선생님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서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중학교 때 대부분의 과목 담당 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들은 공부만을 강조했을 뿐 그 이외에 중학교라는 학창시절에 쌓아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지도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을 판단할 때 그 아이의 성적으로 대부분을 이해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습니다. 이런 중학교의 시절을 보내고 난 뒤,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제가 다니게 된 고등학교는 같은 중학교 출신의 친구들이 20여명 밖에 오지 않은 학교였기에 제게는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습니다. 전 내성적인데다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이런 환경 적응과정을 거치다 보니 자연히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고등학교의 성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떨어졌습니다. 성적에 의한 평가를 받던 중학교 시절을 보내다보니 당연히 전 성적이 떨어진 지금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그저 평평한 학생이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한 반 전체 학생 하나하나에게 보여주신 담임선생님의 모습은 저의 선입견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저의 선생님에게 있어서 성적은 학생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현방법일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공부에 얽매이기 보다는 지금의 생활에 항상 만족하고 즐겁게 생활하기를 늘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성적에 관계없이 반 아이들 하나하나를 세세히 살피셨고 모두에게 동등한 관심을 가져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이런 선생님의 바람과 노력 때문인지 몰라도 저희 반은 학년에서 성적으로는 늘 꼴지를 하는 반이었지만 선생님과의 유대감은 어떤 반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끈끈했습니다. 학년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전근을 가시게 되었을 때, 반 전체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쉬워했고 제가 11반이었는데 2011년 1월 11일에 다시 만나자는 선생님과 약속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저의 담임선생님의 교육관은 어쩌면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의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바라는 성적을 올려주는 교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입시 전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초등학교의 경우라면 담임선생님과 같은 교사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의 공교육이 무너진 이유 중에 하나가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신뢰감은 단숨에 쌓아지는 것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오랜 시간에 걸친 관계 형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사가 학생을 한 가지 기준에 의해서만 판단하려하지 않고 다각도에서 학생을 바라보고 학생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바라봐 준다면 학생 또한 자연스럽게 교사에게 마음을 열게 될 것입니다. 전 이런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의 은사님처럼 성적을 강조하기에 앞서 아이들이 저와 함께 매 생활이 즐거울 수 있도록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그저 그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봐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중학교 때 우연히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아이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단돈 몇 백 원이 없어서 굶어죽거나 학교가 없어서 배우지 못하는 모습 등이 그 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입시라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런 생각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대학을 다니면서 교회에서 선교에 관한 얘기들을 많이 듣게 되었을 때 다시 아프리카에 관한 얘기를 접하게 되었고 예전의 결심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언젠가는 아프리카에 가서 학교나 병원을 세워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교사 자격증을 획득한다고 해도 의사자격증과는 달리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경험은 늘 인생의 약이 되기 때문에 교사로서의 경험이 언젠가는 가게 될 그곳에서 제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합니다.
저의 은사님을 통해 얻는 교사의 모습을 이루기 위해, 또한 제 원대한 꿈을 위해서 늘 노력하는 교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5년 후에 나는......
직장생활을 하던 주변 사람들 얘기로는 어떤 곳에서든 3년째 되는 해가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합니다. 교직도 여느 직장과 다르지 않을 테니 5년 후면 저도 교사로서 가장 힘든 때인 3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행정업무에 익숙해지면서 학교의 여러 가지 일들을 맡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사라는 업무에도 물론 충실해야 하겠지만 아이들 하나하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 자신이 많은 분야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각 교과의 교육과정을 익히는 것에도 물론 충실히 하겠지만 제가 가장 싫어하고 어렵다고 생각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분야들부터 경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아이들은 스펀지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교사가 넣어준 경험을 그대로를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사인 제가 특정 분야에 대한 편견으로 그 경험을 아이들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면 제게 맡겨진 아이들은 평생 그 경험을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각 아이들이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아이의 가능성을 키워줄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그 또한 교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맡겨진 아이들에게 대한 이해를 하다보면 그 아이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을 테고 그 특성에 맞게 길을 안내해 주는 것도 아이와 제가 신뢰를 쌓아가는 길이라고 여겨지기에 제 자신이 먼저 그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추는 작업을 필요하다고 봅니다.
10년 후 나는.......
늦은 나이에 교대 공부를 시작했기에 이 때 쯤이면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 것입니다. 이제는 제 인생의 원대한 꿈인 교육 선교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쌓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 간에 대화가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이 통해야 겠지요. 전 비록 어학연수를 가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이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가장 빠른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도전해 볼 것입니다. 최대한 현 교직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하거나 아님 이 때쯤이면 제 배우자가 유학 중일 것 같은데요, 잠시 교편을 내려놓고 배우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어학공부를 할 것입니다. 어학 공부를 하면서 아프리카와 그 이외에 교육선교를 할 수 있는 나라에 대해 공부를 할 것입니다.
20년 후 나는.......
제 아이들이 이 정도 시기가 되면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한 5~6년 정도 더 한국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아이들에게 늘 즐거움을 주며 자신의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아이들로 이끌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는 교사가 될 것입니다. 그 후에는 더 늦기 전에 교육 선교를 위해 교직을 그만 둘 것입니다. 제가 교육 선교를 하고자 하는 나라나 배우자가 선교하고자 하는 나라를 선택하여 우리 부부가 각자 해야 할 일들과 준비해야 할 것들을 위해 매진할 것입니다. 저는 특히 교육선교가 목표이니 정해진 나라의 교육현황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저와 함께 해 줄 동역자들을 찾을 것입니다.
30년 후 나는.......
한국에서 누린 편안한 생활은 아니겠지만 제가 가진 미약한 경험이 너무나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한국에서와는 다른 또 다른 기쁨을 누리면서 즐겁게 교사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저 한 사람으로 인해 제가 있는 곳들이 변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변화의 씨앗이라고 심어줄 수 있는 계기라고 마련해 줄 수 있는 교사로서, 늘 함께 한 아이들과 믿음을 쌓아가는 교사로서.... 교사라는 직분을 마치는 그 날까지 아이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