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의 꿈은 법조인이었다. 드라마 속의 화려한 변호사를 꿈꾸기도 하고, 수사권을 가지고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를 꿈꾸기도 했다. 한 때는 호텔 경영인을 꿈꾸기도 했었다. 그랬던 내가 교사의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마지막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그냥 공부도 잘하고, 실장도 하고, 선생님들도 예뻐하고 친구들과도 그럭저럭 지내는 학생이었다. 지금 교대의 다른 학생들처럼 말이다. 그냥 그런 평범하고도 소소한 일상을 보내던 나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시골의 한 중학교로 전학을 가라는 것이었다. 내 부모님은 처음에는 중학교 입학 당시 전교에서 손가락 안에 꼽던 아이가 점차 성적이 떨어지게 되자 걱정이 커지셨다. 그러던 나머지 나를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고 친구도 없는 시골로 전학을 보내려 했던 것이다. 아마 그렇게 되면 친구가 없으니 자연히 놀게 될 사람도 없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공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나보다.
그런 부모님의 의견에 맞서 나는 울며불며 애원을 하고, 그것도 안되자 단식투쟁까지 벌였지만 결국 집안의 모든 경제권과 부모라는 지위를 가지신 부모님께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것도 내 생일 다음날.
이런 나의 힘들었던 시간 속에 내 이야기를 들어 주고, 내가 울을 때마다 휴지 한 장을 건네주신 선생님이 한분 계셨다. 그분은 내 담임선생님도 아니셨으며 나를 오랫동안 가르치신 선생님도 아니셨다. 그냥 일주일에 한번 한 시간씩 수업에 들어와 역사를 가르치던 옆 반 담임선생님이었는데 난 그 선생님이 믿음이 갔고 이 선생님이라면 나의 고민을 들어주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난 그렇게 그 선생님과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 시간동안 난 그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살고 싶지도 않았고 세상 그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었다. 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병자처럼 하루하루를 세고 또 세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난 후 난 그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 교사라는 직업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며, 그들의 마음의 울림에 동참해 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가슴으로 울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난 법조인이라는 꿈을 버리고 교대에 오게 되었고, 현재 상담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상담동아리 회장으로써 너무 힘들고 지칠 때도 많았지만, 아이들의 가슴 속 상처를 어루 만져 줄 내 꿈을 위해 난 오늘도 하루하루 더 노력하고 살아가고 있다.
5년 후의 나는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하며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학교 선생님으로써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겠지만, 대학원에 진학하여 상담에 대해 배우며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소통하고 아이들을 위해 귀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초보 교사이기에 아직은 서툴고 아이들이 상담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겠지만, 사소하게는 아침밥 반찬부터 시작해서 가정문제, 교우관계까지 아이들의 문제를 들어주며, 그에 대한 적절한 반응으로 아이의 상처가 아물게끔 노력하고 있다. 또, 매년 방학마다 해외로 여행을 다녀 견문을 넓힌다. 굳이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여행이 아니어도 그냥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그 지역사람들과 교류를 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 아이들에게도 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고 싶다.
10년 후 나는 열심히 상담연수를 다니고 있을 것이다. 상담학 석사가 된 나는, 전국에서 열리는 상담캠프에 참가하기도 하고, 뜻이 맞는 교사들끼리 상담캠프를 열어 아이들과 함께 집단상담도 하고, 부모관계검사, 가족동적화 검사 등 현대사회 가족에게 필요한 검사들을 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도 열어 보고 싶다. 또, 현재의 동아리 선·후배와 지속적인 모임을 해서 상담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하며 나의 꿈에 대해 한발자국 한발자국 내딛고 있을 것이다.
20년 후 나는 국제학교 교사로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상담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은 나는 해외에 있는 학교로 교환교사로 초청되어 갔다. 그 곳에서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을 해주며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아이들의 마음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 있을 것이다. 흔히 상담이나 치료라고 하면, 미술치료 등을 생각하는데 나는 미술 치료보다 교우관계나 인간관계에 상처받은 아이들에게는 강아지 등 동물과 함께 하는 치료를 병행함으로써 아이들이 생명의 따뜻함을 느끼고 동물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
30년 후 나는 어쩌면 교직에 서 있지 않을 것 같다. 대신 난 전문상담원이나 상담센터 등에 자리를 얻어 그곳에서 날 필요로 하는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 변화과정 등을 책으로 펴내어 내가 직접 도움을 주지 못하는 아이들까지도 너무 힘들지 않게, 그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또한, 인터넷으로 멘토사이트를 만들어서 아이들과 면대면의 상담은 아니지만 사이버 상담 등을 통해 좀 더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내가 받아온 사랑만큼 아이들에게 그 이상을 베풀어 그 아이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