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스승이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서, 나이 서른부터 몇 년간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중국에서 국제기아대책기구 선교사로 만 3년 6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한국에 다시 돌아올 때가 되자 서른 다섯 나이에 뭘 해서 먹고 살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 때 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평교사로 40여년을 근무하고 퇴직하신 아버지의 영향 탓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삶은 정갈했고, 또 우리 가정이 중국에서 일할 때 생활비의 절반 가량을 매월 후원해 주셨다. 정갈한 삶과 경제적 넉넉함, 그리고 이와 함께 방학 때는 나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교사 외에 다른 일이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교사는 내 청소년 시절 꿈이었고, 그래서 가장 먼저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고3 시절에는 아이들이 싫어서 초등교사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그 때는 아이들의 세계가 답답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평소에 좋아하던 국어 과목 교사를 하려고 모 대학 국어국문학과에 갔다가, 1학년 때 엄청나게 놀고는 성적이 바닥을 기어 교직 이수 자격에서 제외되고 나서 잊었던 꿈이었다.
교사 자격증이 없는 탓에 한국에서 전공을 살려 국어 교사를 하려면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3년을 다녀 자격증을 얻어야 했다. 등록금만 몇천만원이 날아갈 판이었다. 그런데 IMF 탓에 시대가 좋아져서(?),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나이 서른에도 교대에 가서 대학생 노릇을 다시 한다는 사람들(소위 장수생)이 많지 않다던가. 등록금도 적고 장학금도 많다고 했다. 애도 키우는 지금은 초등 교사가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우리 애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으므로.
이처럼 내가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그것이 내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너는 선생님 하면 딱 맞겠다 하는 말을 많이 했다. 아이들을 먼저 고려해보거나, 아이들에 대한 사명감이나 불타는 사랑이 있어서 교사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자신을 잘 다스리고 바른 삶을 살고자 애쓰면 아이들이 날 보고 배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왕 하는 것이면 남보다는 열심히 잘해야겠다 하는, 일반적인 수준의 직업 윤리로 교사상을 그려보곤 했다.
그러던 중 교대에 다니며 각종 수업들과 여러 특강들을 통해 교육에 대한 생각의 폭을 나름대로 넓혀올 수 있었다. 특히 2학년 2학기 때의 교육과정 수업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수업은 2년간 듣고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한 나름의 소신이랄까 철학이랄까 하는 것을 총정리할 수 있게 해준 귀한 강의였는데(구체적으로는 '나만의 학교를 만들어 보라'던, 그 수업의 기말시험 과제 덕분이었다), 그 결과로 내가 만들 학교(학급)의 비전을 다음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1. 행복
2. 다양한 경험
3. 더불어 사는 삶
내가 맡는 학급의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자기만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한 번쯤 생각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과정들을 열심히 촉진시키는 교사가 되고 싶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매일 학교가 지겨운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에 가고 싶어서 설레며 집을 나서게 하는 일, 학교에서 매일 배우고 듣고 겪는 일들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것들이 되게 하는 일, 그리고 나 하나 잘 먹고 사는 일 이전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를 가진 이들, 어려운 이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일.
그래서 이런 것들을 추구하려면 굳은 소신과 그에 걸맞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는 이런 것들을 전해주려 했다는 이야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5년 후
늦게 교대에 온 탓에 5년 후면 나이가 42살이다. 교사로서는 초보인 4년차 교사지만 나이로는 중견 교사급에 해당되는 나이이다. 그동안의 인생 경험을 살려 어떻게든 초보 교사 딱지를 벗고, 아이들의 삶과 학교의 시스템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수준에 다다라야겠다.
행복한 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매력적인 교사가 되어야 한다. 썰렁한 유머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렵다. 뭔가 내 얼굴만 봐도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고, 아이들이 생각할 때 우리 선생님이 오늘은 또 어떤 재미있는 ‘꺼리’를 만들어올까 못 견디게 궁금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 교직 생활에 적응한 이 때부터는 매일 매일 재미있는 꺼리를 찾아보는 것이 나의 일이 될 것이다. 수업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 같은 말 한 마디라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까 하는 고민을 매일 해 보는 것이다.
아침마다 아이들이 생각해보고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꺼리’들을 찾아볼 것이다. 동화의 한 대목일 수도, 음악의 한 소절일 수도, 미술 작품 사진일수도 있다. 굶주리는 아이들의 짧은 동영상일 수도, 장애아 관련 다큐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 인근 양로원이나 독거 노인들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홍콩의 야경이나 몽고의 대평원을 보여주기도 하고, 몇 달 씩 낮인 알래스카, 유럽의 유적들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을 한두 마디씩 해 보기도 하면서. 세상은 참 크고 넓고 다양한 곳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10년 후
10년 후면 47살이다. 이 때쯤이면 아이들이 제발 한 번쯤 겪고 싶은 담임 선생님으로 내 이름이 올라 있을 것이고, 유머러스한 나의 수업은 이미 그 아성을 무너뜨리기가 어려울 정도의 경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쯤 나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잠시 접고, 중화권(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 중 어느 한 나라의 한국국제학교 교사를 지원할 생각이다. 우선적으로는 나의 두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해 주고 싶고, 세계 속에서 자기를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아울러 외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한국 어린이들에게, 3년 6개월 간의 해외 생활 경험과 그동안 쌓인 교사로서의 경험들을 가지고 ‘행복’한 학교 생활을 맛보게 해 주고 싶은 비전이 있다. 한국에서 지원하면 4년이고, 현지 학교와 직접 고용계약을 맺은 후 고용휴직을 하면 1-2년 정도만 해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3-4년 정도는 해 보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여력이 되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사로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분야이거나 한 번쯤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분야를 공부해 보고 싶다.
- 20년 후
그러다 보면 20년 후가 되고, 이미 57살이다. 정년을 5년쯤 앞둔 나이이고, 후배 교사들을 많이 둔 나이이기도 할 것이다. 워낙 늦게 출발한 교사 생활이라, 남들이 목을 매는 교장 교감 자리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겠다. 요즘 새로 도입되는 수석 교사는 조금 관심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평교사라 하더라도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 교사들을 잘 다독이고 필요한 안내와 도움을 주는 멘토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나갈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후배 교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 한두 권쯤은 쓰고 싶고, 또 혹시 교직 생활에서 한 분야에 대해 깊이 공부를 한 내용이 있다면 그 분야에 대한 책도 쓰고 싶다.
- 30년 후
살아 있다면 이미 퇴직하고 67살이 되어 있겠다. 62세 정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쓰고 싶은 책도 다 완결짓고 교직 생활은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겠다. 그리고 그 때부터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자녀 둘을 다 키우고 결혼까지 시킨 뒤에, 매월 나오는 퇴직 연금을 받으면서, 해외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기쁠 때 그들과 같이 웃고 슬플 때 같이 우는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여행을 다니며, 내가 보고 느꼈던 세상에 대해 여행기를 남길 것이다. 전국의 초등학생들을 설레게 할 만큼 흥미진진한 책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