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를 받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기까지, 참 많이 망설였다.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이 과제가 주는 막막함이 왜 이렇게 큰 건지. 기세 좋게 시작했다가 정리가 되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한숨만 쉬고 그대로 노트를 덮어버리기를 몇 차례. 좋은 교사란 어떤 것일까. 과연 나는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걸까.
초등학교 1학년 봄,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던 탓에 할머니 손을 잡고 갔던 입학식 날.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하는데 나는 반을 잘 못 찾아 서 있다가 그 반이 우리 반이 아닌 것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다시 반을 찾아가는데 1학년 꼬꼬마에게 학교 운동장은 왜 그리 넓고 사람은 또 왜 그리 많던지. 한참을 헤매고서야 찾은 우리 반에서, 담임선생님은 “네가 지현이니? 안와서 선생님이 많이 걱정했다.”라며 참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 때 씻은 듯 사라졌던 불안함,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던 두근거리고 설레던 느낌은 아직도 잡힐 듯 남아있다. 선생님은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우리를 보듬어주시는 분이셨고, 그 단 사랑을 받아먹으며 참 행복하게 1년을 보냈다. 해가 바뀌고 2학년이 되어서도 수업이 끝나면, 6학년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이 뵙고 싶어서 종종 그 반으로 쪼르르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많은 선생님을 만났고 그 중에 때로는 잊고 싶은 선생님도 계셨지만, 내 생애 첫 학교생활에서 부모님처럼 푸근한 선생님을 만난 것은 참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하게 된다.
그리고 수년 후 지금, 나는 그 분을 닮은 선생님이 되고자 달려가는 여정에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막상 학교 다닐 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었다. 세상엔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으니까. 고등학교 때는 부모님도 내가 교대에 진학하는 것을 원하셨고 나 스스로도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에는 ‘더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공대를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음을 알게 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냥 저냥 적응해서 다니는 와중에 우연히 성당에서 교사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한 주에 한 번씩 만나는 아이들은 어쩌면 그렇게 밝고 예쁘던지. 그리고 그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시간이 얼마나 즐겁던지. 그때 함께 교사생활을 했던 친구 중 교대에 다니는 아이가 있었는데 가끔 그 친구의 학교생활을 전해들을 때 마다 마음에 무엇인가 찌르르하게 흐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무래도 부러움이었던 것 같다. 일찌감치 교사를 꿈꾸고 그 길을 가는 친구와, 스스로의 선택이긴 했지만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부를 하며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비교되어 나중에는 자괴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 때 내 길이 아니라면 빨리 돌아서야 했는데 중도에 그만 둘 용기마저 없어 그 후로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렇게 먼 길을 돌아 돌아서 왔다.
하지만 그렇게 둘러서 온 시간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정말 이 길을 가고 싶다.’라는 다짐을 할 수 있게 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교사로서 10년 후, 2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 준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10년 후까지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볼 때, 처음에는 업무와 아이들 때문에 허둥대는 일이 잦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을 다루는 솜씨는 물론 수업이나 생활지도도 많이 능숙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시간의 흐름에 맡긴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력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잃지 않겠다.’는 나 스스로의 뚝심이다. 동료 교사에게서도, 나이 어린 학생의 모습에서도 언제나 배울 점을 찾는 자세를 갖고 싶다. 사실 이것은 쉬우면서도 실제로 실천하기에는 참 많이 어렵고 힘든 문제다. 하지만 10년 남짓 차이가 나는 동생들과 학교에 다니는 지금도 그 연습을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생들이지만 얼마나 배울것이 많은지.. 지금도 항상 자극을 받으며 지내고 있는 것처럼, 나이가 많은 것이 다가 아님을 알고, 일방적인 권위로 학생들을 대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는 교사이고 싶다.
20년후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학생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선생님이 되기위한 과정에 있을 것이다. 특히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아동 심리를 꾸준히 공부 할 계획이고, 관련된 분야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아이들 뿐 아니라 그 아이들의 부모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 공부는 30년 후, 정년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것이 나의 큰 바람이다.
사실 당장 몇 년 후의 미래도 손에 잡히지 않을 듯 아득하게만 느껴지는데 20년, 30년 후까지를 내다 본다는것이 부담스럽고 잘 와닿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려본 것 같아서 뿌듯하다. 이제 그 그림을 좀 더 다듬고 멋지게 채색할 수 있도록, 나태해지려고 할 때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을 떠올려보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