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근본적으로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모든 이치를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지혜의 빛'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그 빛을 비추어 모든 이치를 알게끔만 도와주는 것이 교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나의 태도가 교사로서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며 묻는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는 나의 신념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절대적 신뢰의 표현이고, 교사라는 지위를 내세워 상명하달식의 가르침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거울'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 내 앞에 서는 귀중한 인격 하나 하나가 나를 통해 스스로를 더 잘 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선생님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학생 스스로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지혜의 빛'을 발휘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오물이 묻었거든 스스로 털어내고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자신들의 모습을 자각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거울로서의 나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다면 나는 정말로 행복한 선생님인 것이다.
광채가 나는 맑고 깨끗한 거울이 되려면 나 자신을 부단히 마탁해야 함을 알고 있다. 어떤 것이든 다 비춰줄 수 있고,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춰줄 수 있는 거울이어야만 한다. 다 비춰줄 수 있는 거울이 되기 위해 아직 모르는 것들을 더욱 성실히 알아가고, 있는 그대로 비춰줄 수 있는 거울이 되기 위해 인격을 더욱 맑혀야 한다. 이 두가지 작업이 교사라는 직업의 본질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업을 학생들과 더불어 평생을 해 나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교대를 선택했다.
5년 후 나는 서른 중반에 접어든다. 가르치기 마냥 쉬울줄로만 알았던 초등 교과목에도 상당한 배경지식이 필요함을 뼈져리게 느낄 것이다. 학부때 공부를 더 깊게 못 해놓은 것을 한탄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내어서 관련 공부도 더 하고, 대학원 과정이 도움이 된다면 등록하게 될 것이다. 또한 만나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매력을 느끼고, 선생님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를 내 자식을 키우는 마음을 미루어 본능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이 시절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쏟고 있을 것 같다.
10년 후 나는 40줄에 들어선다. 이즈음 나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인격을 닦는 일을 되짚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 위해 박학 다식한 선생님이 되어 있을지는 몰라도,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 다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에는 많이 부족할 것 같다. 이때의 나는 종교 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고 있을 것 같다. 나의 인격과 영성에 눈을 뜨기 위해서이다. 또한 학생들과 함께 애정으로 부딪히면서,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아갈 것이다. 이 시절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됨으로써 진정한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20년 후 나는 50대가 된다. 지난 20년간 아이들과 함께해 온 세월 덕분에 나는 청국장 같이 푹 익은 구수한 선생님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빛만 보아도 그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 지를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 역시 나를 신뢰하고, 나와 함께 있는것 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무언가 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생겨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것 같다. 하루 하루 내가 선생님이 된 것에 감사할것 같다.
쓰면서 무척 기분이 좋아진다. 왜 비젼을 쓰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다. 지금 세운 나의 비전을 앞으로 더 가야할 나의 삶의 지표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