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비전 세우기’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조금 고민이 되었다. 비전?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들어왔던 익숙한 말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한없이 낯설기도 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이라고 나와 있다.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비전=미래에 대한 구상’과 같은 맥락이다. 비전이 그런 뜻이 맞다면, 나는 비전이 없다. 나는 내 삶의 모든 과정을 내가 아닌 절대적인 존재가 주관하고 계신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해도 그대로 될지 안 될지는 모두 그 분의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자기 주관이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실제로도 지금까지 내게는 뚜렷한 목표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었고 그대로 되지 않아도 크게 실패감이나 절망감을 느끼지는 않았다.교대에 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어쩌다보니 교대에 오게 된 것은 아니다. 단지 교대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가 아니라 가게 된다면 교대가 좋겠다, 였을 뿐이다. 물론 주위 환경의 영향도 많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결국에는 내가 ‘교사’라는 방향의 진로를 선택하는 것처럼 되었지만 나는 이것 또한 내 삶의 주인이신 그 분의 인도라고 믿는다. 참 감사하다. 생각해보면 다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고난과 역경도, 이렇다 할 굴곡도 없이 평탄하게 살아왔다. 그렇기에 너무도 안일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질 때도 있지만, 이 또한 그 분의 인도하심 덕택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 감사하다.
나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당장 내일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20년 후, 30년 후를 생각하면 일반적인 삶은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새로운 길이 예비 되어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나는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면서 살 것이다. 그 분이 나를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낼 것이다.
따라서 비전이라고 내세우기는 조금 망설여지지만 좋은 교사,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다짐과 희망 몇 가지를 적어보겠다.
먼저 끊임없이 나 자신을 수양할 것이다. 이는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실망할 때가 많지만 항상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는 사항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가장 먼저 점검하고 준비되어야 할 것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되어 아이들과 마주한다면 말보다 행동으로 본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측면에서 자신을 갈고닦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양이 목표나 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10년 후의 나도 20년 후의 나도 수양을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나의 모든 삶의 장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직에서의 삶도 모두가 나를 수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그 모든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죽는 날까지 이어져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아이들 개개인의 가치를 발견하는데 힘쓸 것이다. 이것은 내가 교사가 되어서 항상 마음에 지니고 있어야 할 사항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절대적 가치를 지닌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면만을 가지고 아이들을 비교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아이들의 좋은 면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교사가 되어야 하겠다. 또한 개개인이 지닌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그들에게도 구체적인 칭찬과 격려를 통해 인지시켜 자존감을 키워주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양심적인 사람, 이타적인 사람, 감사하는 사람, 자립하는 사람으로 길러내고 싶다.
아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부족하기에 좋은 교사란 어떤 존재인지 정의내리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인지적인 면의 향상은 교사의 당연한 의무이므로 제쳐두고,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면을 성장시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면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저 네 가지로 압축시켜보았다. 나는 나를 만나는 아이들이 양심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좋겠고, 남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고,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할 것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부터는 이 다짐들을 마음에 새기고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선은 하루하루를 기쁜 마음으로 충실히 살아낼 것이다. 지금은 이것조차도 온전히 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언젠가 지금 생각하고 다짐했던 모든 일보다 더 멋지고 좋은 일들이 이루어진 미래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