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

국어교육과 조소영

미래 교육 2018. 5. 27. 15:52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나는 지금보다 더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고 여린 만큼 더 쉽게 상처받았던 아이였다. 같은 반 아이들은 철이 없는 만큼 남에게 상처 줄 말들을 서슴지 않고 뱉어냈고 별 생각 없이 하는 인신공격성 발언과 같은 막말이 난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그때 무척이나 어렸고 나 또한 남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의 자신을 결정한다고들 한다. 유년 시절 불행했던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도 지나간 유년 시절에 눈물지으며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어 하는 것을 보고 이르는 말일 것이다. 당시의 나를 상처받게 했던 또래들의 거친 말은 함께, 같이 철없던 시절의 치기어린 투정이라 사실 지금 기억이 잘 나지도 않고 상처로 남아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면 나는 불행했던 기억이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불행했던 기억에는 꼭 선생님이 있었다. 그 시절 선생님은 나에게 지금보다 더 어른이었고, 그래서 어른은, 우리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경우에는 더더욱 성숙한 존재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그 믿음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깨졌지만.
초등학교 3학년 과학시간에 나는 친구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내 뺨을 때렸다. 그 때 맞은 뺨은 지난 몇 년간 아팠다.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장난 친 것은 분명 나의 잘못이었다. 그런데 과연 이게 뺨을 맞을 일이었던가? 뺨을 맞은 나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았다. 반발심만 커졌다. 어린 나는 그 때 ‘아니, 내가 시끄럽게 떠든 것도 아니고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옆 친구랑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지 않고 딴 짓만 한 것인데 뺨을 맞았어야 해?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그럼 옆 친구는? 걔도 같이 장난쳤는데 왜 나만 맞아?’라고 생각했고 다시는 수업시간에 옆 친구와 장난을 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그 선생님을 평생 미워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싸운 같은 반 친구 두 명 때문에 반 전체 학생들에게 화를 내셨고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서 있으라는 벌을 주셨다. 나는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다. 저는 왜 벌을 받는 건가요? 선생님은 몰라? 반문하셨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대답해주시지 않으셨고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아이들에게 칭찬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잘못을 하고 살며 이에 대한 교사의 지도가 필요하고 때로는 처벌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교사는 처벌을 할 때 그 처벌의 정당성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내가 이 처벌을 함으로써 이 아이의 행동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아이의 행동이 내가 보고 있지 않은 곳에서도 교정이 될 것인가? 처벌의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하다. 과연 ‘연대책임’이라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아무 잘못도 없는 희생양을 배출하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 것인가?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인 만큼, 아이들의 평생의 성격을 좌우하는 시절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처벌의 당위성과 종류, 정도, 그리고 처벌 후 교사의 행동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이메일로 과제를 제출하도록 하셨다. 당시 내 이메일 닉네임은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한마음’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그 닉네임을 보고서는 다른 모든 아이들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마음같은 소리하네.
같은 내용이어도 낱말 선택에 따라 그 느낌은 매우 달라지고 나는 이것에 매우 민감하다. 같은 말이라도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낱말을 바꿔보고, 문장의 분위기와 어투를 바꾸어 보면서 어떻게 해야 충분히 알아듣도록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할 수 있을까를 고려하는 것도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나는 언어의 분위기에 일희일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린 시절 많은 상처를 받으며 성장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상처를 안고 산다. 지난 학기 어떤 과목의 강의를 들으며 강의 내용을 자신의 경험과 관련지어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내 생각보다 꽤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사촌 동생들을 모아놓고 ‘작은 학교’를 만들어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주고 그것으로 인해 동생들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교대생이 되었다. 교대생이 되기 전, 아니 좋은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기 전 상처는 그저 아픈 상처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제 나의 신분이 달라졌고, 그 상처를 돌아보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상처를 활용하는 것이다. 과거의 선생님들의 행동을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에 나는 생각했다. 나는 저러지 말자.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상처받을 것이다, 저렇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현재 내 삶 평생의 큰 부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장차 내가 가르치게 될 아이들은 내 행동 하나하나에, 내 언행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수 있고 어쩌면 그것이 평생 그 아이의 삶의 방향을 바꿔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벌의 당위성에 대해 생각하는 교사, 행동하기 전, 말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는 교사, 내가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력에 대해 항상 의식하는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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