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학년의 중반을 지나가고 있다. 그 동안 적지 않은 세월을 교육대학의 대학생으로서 지내왔지만, 아직도 갈 길은 한참 멀어만 보인다. 교사가 될 것이라는 실감 역시 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교사로서의 나의 비전'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역시도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일단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가 교사가 되기로 다짐한 계기부터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내가 교사가 되기로 다짐한 이유는 그다지 거창하지 않다. 단지 나의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서이다. 재수학원에서 재수를 할 적, 나는 가장 친했던 동생에게서 '언니가 회사에 다니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한 나의 아버지 역시도 내가 회사에서 버텨낼 성격이 아니라고, 이 길이 너에게 있어서 최선인 것 같다고 아직도 종종 내게 말씀하신다.
아마도 그 두 사람이 나에게 그런말을 한 이유는 평소 그들이 보아온 나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기인할 것이다. 그들의 말마따나 나는 가끔보면 강박적일 정도로 아부같은 세상의 부조리를 혐오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들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처세술이라 하지만, 아직도 다는 그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교사가 되고자 한 이유이다. 내가 아는 한, 교사가 바로 소위 처세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부조리함이 가장 적게-승진을 배재했을때의 이야기지만-필요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가치관이나 성향을 바탕으로 나의 교사로서의 비전을 말해보자면-물론 교사로서 뿐만이 아닌 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비전이기도 하다-,바로 '바른 교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른 크고 원대한 목표에 비하면-예컨데 정의로운이라거나 우리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과 같은-'바른 교사'라는 나의 비전은 다소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바르지 못한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본다면, 이 비전이 마냥 쉬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조광조 선생이 임금한테 어린아이나 읽는 '소학'을 권하면서 모든 사람이 소학에 적힌 바대로만 행동한다면 군자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였겠는가. 그만큼 세상을 바르게 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또한 내가 바르게 사는것을 내 교사로서의 비전으로 설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도 있다.나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세기의 천재가 아니다. 그렇기에든 분야에서 아이들의 이상적인 롤모델이 되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올바른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물론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을 떠나, 삶을 살아가는 전반적인 태도에 대한 것이다.
나는 교사라면 적어도 부당한 권력 앞에 분연히 맞서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에 허리를 굽히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친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복종시키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자신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강요하고 주입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작은 실천을 통해 교사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바른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씨앗'을 심어주는것이 교사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가 가르칠 아이들이 세상을 뒤엎을 혁명가나 내 이름을 추켜올려줄 천재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삶의 매 순간 마주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양심적이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란다.
그것의 실천은 거창한 문제 뿐만이 아닌, 바닥에 침이나 껌을 뱉지 않는 사소한 일에도 적용된다. 앞서 언급한 조광조의 말대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의 선택들에 있어 양심적인 선택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군자의 나라이며 소위 말하는 유토피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나의 비전에 대한 간략한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