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

20170038 국어교육과 박지형

미래 교육 2019. 6. 9. 23:28


그림이란 건 그리고 싶은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붓이 쭉쭉 나간다. 그리고 싶은 것을 알고만 있다면 혹여 망쳐도, 새로 그리든 그 위에 덧칠을 하든 완성할 수 있다. 재료가 뭐든 완성만 하면 그만 아닌가?

23살의 여름.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사회인으로서 나의 그림을 그려나가야 할 시기가 기어코 와버린 셈이다. 이 과제의 마지막 단락에 이를 때 즈음엔, 대략적인 스케치가 끝나있기를 바란다.

5년 후의 나는, 중국 국제학교에 파견교사로 나가있을 것이다. 초등 교원이 파견 나갈 수 있는 국제학교는 교민이나 주재원 자녀를 대상으로 한국의 교육과정과 현지의 교육과정을 적절히 조화시켜 가르치는 학교이다. 현직 경험이 3년 이상인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임용 발령 직후 착실히 중국어 공부를 하며 3년을 보낼 것이다. 대학원을 진학하여 한국의 초등 국어교육을 더욱 심도 깊게 배워보는 방향도 고려 중이다. 파견교사로 나가있을 때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목표는 하나이다. 나는 중국 국제 학교가 가르치는 현지의 교육과정이 궁금하다. 중국 초등 교육의 특징 중 하나가 국어 교과서에 고전 시구나 고전 소설의 인용구가 많이 삽입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중국의 사극이나 예능을 보면 잦은 빈도로 옛 시조를 읊는다. 아주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흥미가 일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옛날 옛적에 꼬부랑 할머니가 살았어요.”로 시작하는 전래동화 이후로는 고전과 담을 쌓고 살지 않은가? 초등 국어교육 전공자로서는 조금 슬픈 일이다. 어떻게 아동의 언어 생활 속에 고전 문학이 스며들었는지 살펴보고 싶다. 중국의 정식 교원으로 나아가기에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고, 나 역시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고전 교육 방식을 한국으로 가져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따라서 중국에 자리 잡는 것이 아니라 파견교사의 형태로만 생각하고 있다.

10년 후의 나는, 초등 고전 문학 교육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한 권 읽기 교육과정과 고전 문학을 연결시키거나, 국어 교과서의 연극 활동 부분에 고전 작품을 다수 포함시켜 초등 역사 교과와 연관시키는 방법 등 지금 당장 떠올리기만 해도 벅차오른다. 파견교사를 다녀온 후의 경험이 연구 분야를 좌우하겠지만, 고전 문학이 주가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신할 수 있다. 근거를 말하자면 나의 유년 시절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어릴 적부터 나는 고전을 좋아했다. 신데렐라보다 팥죽 할머니가 더 재미있었고, 로맨틱 코디미보다 정통 사극을 찾았다. 고등학교 때는 심심하면 고전소설을 읽었고 멋있는 시조를 필사하곤 했다. 보편적인 취향은 아니었다. 소위 덕메(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도 부족한 고독한 입맛이었다. 그래서 늘 생각해왔다. ‘어째서 친구들은 사극을 싫어할까?’ 친구들은 전래동화까지는 재미있었는데 갑자기 관동별곡부터 어렵더라구.”라던가 박소저, 김시랑 이런 말들부터가 어색하고 재미 없잖아.” 라고 말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국어 교육과정은 전래동화(유치원-초등)와 고등 고전 문학을 잇는 중간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취향을 조금 더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 아동이 쉽게 고전 문학으로 다가갈 수 있는 교육 방법을 연구하고 싶었다. 10년 후의 나는 이러한 열망이 담긴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20년 후의 나는, 내가 진행한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교육현장에 직접 적용하고 있을 것이다. 현실과 괴리된 이상은 힘이 없다. 강한 힘을 발휘한 이데올로기는 모두 현실적인 구현 방안이 존재했다. 나의 연구 내용이 실체 없는 이상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쓸모 있는 것인지, 쓸모있게 하려면 어떤 장치가 추가로 도입되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2~3년으로는 효용성을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의 방식으로 가르친 학습자가 성인이 되고, 고차원적인 사고 과정을 수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연구를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0년 후는, 앞서 거론한 고전 문학 교육 방법을 어느 정도 체계화한 뒤가 아닐까? 그리고 난 뒤 나는 죽음을 준비할 것이다. 유년 시절은 교사가 되기 위해 치열히 경쟁했고 청년 시절은 교사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했다. 중년은 나의 교육관과 교육방식을 세우기 위해 나 자신을 갈아가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연구는 차치하고서라도 새로운 교육 방식을 연구할 수 조차 없다. 50 즈음까지의 나는 교육자로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자유다. 교육자의 무게를 내려놓고, 그저 나 자신을 위해 죽음을 위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교사에게는 미련 없이 교직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두려움 없는 교사가 되고 싶다. 두려움 없이 해외에 파견 가고 싶고, 두려움 없이 기존의 교육과정과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고 싶고, 두려움 없이 나의 가치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두려움 없이 교육자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싶다. 영원은 쉬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민 없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교사로서 아동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없는 시기의 나이는 분명히 도래한다. 그 때에는 단호히 떠나야 한다.

교사라는 직업은 그 어떤 직업보다 내게 숭고하다. 평생의 꿈이었고, 아직도 내가 교육대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교사로서 가장 최후의 날 까지는 교육자로 남고 싶다. 교육 직업인이 아닌 교육자. 내가 교직 생활을 하며 남겨온 모든 발자취가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교육자여야 한다. 그 발자취가 내 삶을 증명할 수 있도록.

 

장 폴 샤르트르의 말이 떠오른다.

무기력한 피를 지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겁쟁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질은 기질일 뿐, 행위가 아니며 겁쟁이는 오직 그가 하는 행위로 인해 정의된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부디 마지막까지 용기있게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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