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교에 스승 사, 가르치는 스승이 바로 교사이다. 그런데 나는 가르치는 스승이 되기 이전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정한 스승이 되고 싶다. 교사로서의 전문적 지식 함양과 그를 바탕으로 한 지적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아이들과의 심적인 교류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비전인, 마음이 소통하는 교사는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해서는 안된다. 쌍방간에 내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목표인데, 이는 아마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한다는 것은 상대의 내면 깊숙이까지 이해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연령도 다르고 위치도 다른,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이야 말로 내가 가진 최고 난이도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눈빛만 보고도 학생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일단 그들의 일상에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학생들과 부딪히면서 그들의 행동, 말투, 생각등 여러면에 걸쳐서 소통할 기회를 많이 가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와는 다른 인격체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며, 그 이해는 직접 부딪혀 봐야 생기는 것이지 머리로만 해석해내는 건 자신의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몇 년이 지나도, 아니 교직생활이 끝날 때까지도 나의 통찰력을 믿기보다는 아이들과 계속 호흡하며 생활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굳건하게 만들어준 나만의 롤모델이 있다. 내가 교대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꿈꿔왔던 바람직한 교사상이자,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지향점이 될 분, 바로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시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시간에는 자던 아이들도 똘망똘망한 눈빛을 갖게 해주신 분이었다. 과연 아이들이 왜 그랬을까? 그땐 그저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시니까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빛나보였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교실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기존의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뛰어넘어, 우리의 관계가 일상적인 만남이 되게 하셨다.
정말 많은 일화가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선생님께서는 중학교 3학년이나 된 우리에게 일기를 쓰게 하셨다. 처음에는 우리도 귀찮고 왜 이 나이에 이런 걸 하고 있나 한탄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일기를 쓰고나면 그 밑에 항상 달려있는 선생님의 답글이 우리를 변하게 했다. 선생님은 우리의 성적만을 바라시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진정한 발전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걸 은연중에 배우게 되었다.
내가 교대에 와서, 가장 희망찬 이유도 선생님이고, 가장 좌절하게 되는 이유도 선생님이다. 매년 선생님께서 맡으신 아이들을 보면, 공교육 파괴라는 요즘 상황에서도, 교사가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끝없이 다가가면 아이들은 다시 학교를 돌아보게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는 분명 앞으로 내가 교직에 나설 때의 꿈을 부풀리게 하지만 과연 선생님 같은 교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에 자주 고민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비전, 나의 롤모델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더라도, 좀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지향점을 향해 나갈 것이다.
●5년 후에 나는..
아직 초심의 상태로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아이들과 호흡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들을 떠안고 시작한 교직생활이 3~4년 쯤은 이어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겪어온 시행착오들을 바탕으로 내가 더 길러야할 것들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것들을 실행할 준비를 할 것 같다. 교직에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면, 대학원과 강연등을 들으러 다닐 것 같고, 아이들과의 트러블이 해결이 안 된다면,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들과의 정기적인 연구회를 마련해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해 볼 것이다.
●10년 후에 나는...
그동안의 공부를 바탕으로 그때쯤이면 정말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을 것 같다. 다른 것은 잠시 멈추고 오로지 교사 일에 전념하고 있을 것 같다. 발전적이지 못하다는 걱정도 되지만 너무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나의 본래 신념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달리는 것은 멈추기로 했다. 10년 동안 부단히 노력하는 사이에, 아이들에 대한 나의 마음이 덜 해질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동안 전문성을 열심히 키웠다면 이제 그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때이다. 아침을 시작할 땐 오늘은 과연 아이들과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구상하고, 교실안에서는 그걸 실천해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오늘을 반성해보고, 아이들과의 특별한 하루하루를 준비하는 시간. 그야말로 전적으로 아이들 중심으로, 아이들을 위한 교사가 되어있고 싶다.
●20년 후에 나는....
20년후에 나는 잠시 교직을 떠날 것 같다. 좀 더 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교직에 대한 전문성 신장뿐만 아니라. 학교 경영에 관한 공부도 할 것이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모범적 학교들을 돌아보면서 안목을 키워나갈 것이다.
●30년 후에 나는.....
작은 학교를 하나 만드는 게 바램이다. 공교육의 틀에서 조금은 벗어날지도 모르겠다. 분명 경제적인 한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아이들이 좀 더 따사로워 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어느 매거진에 실린 글에 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있었다. 폐교 직전의 상주남부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해 몇몇의 뜻있는 교사들이 전근을 신청했고, 그분들의 열정적인 노력 덕에 지금은 시내에서도 전학을 오는 제법 튼튼한 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김주영 선생님은 아이들이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나와 같이 살아가는 공동 인격체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교사들이 직접 실천한 덕분에,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싶은 곳, 즐거운 곳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나도 이처럼 아이들의 웃음이 떠나질 않는 학교, 작지만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