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이란 초등학교 시절을 지내오면서 3번의 전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어린 나이에 저로서는 학교와 친구들과의 관계에 적응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환경에 가면 설렘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숫기가 부족한 제게는 새로운 환경이란 부담으로만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숙제를 안고 전학을 다녔지만, 초등학생인 제가 견디기 힘든 아픔이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선생님이 되고자 교육대학교에 지원을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취업 문제의 해결이 제 진로 결정의 중요 사안이 되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또 다른 꿈을 달성할 수 없다면 차라리 비교적 취업이 수월한 교육대학교에 원서를 안정적으로 넣고 제2의 길을 선택하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입시 합격 발표는 제 예상과 다르게 빗나가버렸고 결국 저는 차선책인 교육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야 어찌됐든 교육대학교에 입학한 이상 저는 제 나름대로의 교사가 되기 위한 원칙을 마련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마침 생각났던 기억이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초등학교 선생님의 안 좋은 추억들이 제 교사관에 대한 원칙을 마련하게 해주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어느덧 5학년이 된 저는 남원에서 전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떨렸기 때문인지 제 얼굴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이를 알아채신 담임선생님께서는 제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그 온정의 손길로 인해 마음을 가라 앉혔던 저는 잠시 후에 벌어질 선생님의 언행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1교시가 지난 후에 성적표가 이전 학교로부터 올라왔고 그 성적표를 보신 담임선생님은 학생 앞에서는 차마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제 바로 앞에서 말이죠. 당시 담임선생님의 그 말씀들은 여린 마음을 갖고 있던 12세 소년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한참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남들보다 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라는 생각만 반복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보통 초등학교 선생님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나도 그와 같은 훌륭한 선생님이 되리라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5학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가장 큰 교훈을 얻었고 이를 앞으로 제가 나가야 할 교사로서의 가장 큰 지침이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학생들을 동등한 마음으로 대우하려고 노력하자. 차별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라고 말입니다.
그 후로 수년간의 세월이 흘러 이런저런 사회경험도 쌓고 군대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초〮〮/중/고교 시절에는 수없이 그 선생님을 미워하고 싫어도 해봤지만, 26살이 되어 교대에 입학한 저의 생각에는 커다란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어쩌면 그 담임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내가 지금 교대에 입학해서 2년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조차 머릿속에 생각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라고 말입니다. 지금은 제가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아이들을 편견과 차별 없이 다가가자란 목표를 세울 수 있게끔 만들어주신 그 선생님께 감사하게 생각하며 제 교육 신념을 실현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5년 후에 저는 제 자신의 지적인 부분을 채워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교육이 시대 흐름에 따라서 겉잡을 수 없이 변화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교육청에 주어지는 기회를 충분하게 이용하여 대학원에 간다던가 아니면 해외 연수를 다녀오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또 다르게 꿈꾸고 있는 교육행정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바라보고 느끼고 배워왔던 교육 내용 전반에 대해 개선을 해보고자 하는데서 비롯되었습니다.
10년 후에 어느 정도 교사로서 노하우가 쌓인 베테랑 교사가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갖고 있던 아이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5년 전이나 변함없이 교육행정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고 있을 것이며, 장학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현장에서 바라보는 것과 교육행정직에 올라가 있으며 바라보는 것이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이런 차이점을 어떻게 하면 수정 보완해 좋은 학교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갖으면서 말이죠.
20년 후에 저는 약 10여 년간의 교육 행정직을 수행한 후에 저는 시골학교로 가길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아이들에게 때로는 동네 아저씨같이 포근하고 때로는 아빠처럼 자상한 모습으로 아이들이 의지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골에는 가정형편상 문제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남은 10년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30년 후에 저는 교직을 떠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보다 10년 정도 뒤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교직을 떠날 시간도 그만큼 앞당겨 진 것이지만, 이제는 교육자로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비록 몸은 교직을 떠나 있지만,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나이가 들었지만, 배움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는 어르신들을 곁에서 도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