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전투를 이기는 것은 위대한 장군이로되,
전쟁에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무명의 병사로다.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은 이름 높은 교육자이로되,
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의 교사로다. 」
-반다이크(Henry Van Dyke) '무명교사 예찬론'의 첫 구절
아름다운 바다 속을 구경하기 위해서 무방비 상태로 인어공주처럼 풍덩 뛰어들 수 있을까. 더 깊고 깊은 곳으로 갈수록 온몸 구석구석 달아야 할 장비들이 굉장히 많다. 바다 속에서는 사람이 숨쉴만한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산소통도 달아야 할 것이고 더 유연하게 수영하기 위해서 수영복이나 오리발도 착용하고 시야를 잘 확보하기 위해서 수경도 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압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다 속 진풍경을 보면서 뿌듯함과 설렘을 동시에 느낄 것이라 짐작을 해 본다.
그렇다면 교육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마음가짐을 ‘착용’해야 할까. 교육대학교에 입학한 후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이 ‘왜 교사가 되려고 하느냐’라면 가장 많이 해본 숙제는 아마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 일 것이다. 나는 참을성이 없기 때문에 ‘인내’를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가 아니고 생각구조 자체를 변화시켜야 함을 느낀다. 아이들을 ‘참아준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주 대단한 오만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의 이해의 척도와 고집은 그 아이의 특성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격분포이다. ‘아동 발달학’을 공부하면서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잡담을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활동이라는 걸 알았다. ‘참는 것을 배우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가장 우선적으로 꼽을 것은 아이들을 잘 아는 교사가 될 것, 물론 가장 우선적인 이 항목은 아주 많은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두 번째로 내가 생각하는 교사상은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이 현실 사회를 아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는 아주 객관적인 사실에 대하여 윤리적으로 어긋나지만 않는 다면 그들의 가치관을 존중해 주는 교사이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의 가치관이 정립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내가 더 많이 생각하고 더 큰 범위에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알았다. 사실, 나는 자연과 더불어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나는 것, 교사가 손대지 않는 교육을 지향했다. 정치, 경제와 같은 것들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시기적으로 다루기 이른 문제이기 때문에 나와도 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육관을 가진다는 것, 교육철학을 정립한다는 것은 현실사회와 거리를 두고서는 성숙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아이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들은 밖으로 점점 내 몰리고 있다. 그리고 자연인으로서의 권리도 가진다. 그러기에 아이들에게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하는 것은 사회를 완성해가는 첫 발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창원이 쓴 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가지 안 왔을 거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죄책감과 책임감을 한꺼번에 느끼게 되는 구절이다. 그 무엇보다 증거로 확인하고 가지는 확신보다는 이유 없이도 믿을 수 있는 사랑,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누군가(아마도 예비교사 인 듯한)의 블로그에서 ‘역사책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역사책에 이름을 남길만한 아이들을 길러내고 싶다. 내 이름 석 자를 역사책에 넣지 않는 대신 다른 이름 300자를 꼭 책에 넣겠다.’는 포부를 다지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모두가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아이들을 훌륭하게 길러내어 역사 속에 그들을 살아 숨 쉬게 해 주고 그들의 마음속에 내 이름 석 자를 새기겠다.
5년 뒤, 교육대학교를 졸업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게 될 교단에 서 있을 것이다. 매체를 통해서, 혹은 현직 교사의 강연을 통해서 그리고 해마나 다가는 교생실습을 통해서 교직에 나가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희미한 그림은 있다. 하지만, 잔상과 같은 계획이라면 앞일을 내다보기는커녕 하루하루가 급급하게 흘러가버릴 것 같다. 경력이 오래 되지 않은 나는 나만의 교과 노트를 차곡차곡 만들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 6학년을 맡게 된다면 완벽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과목마다 단원마다 차시마다 내가 어떻게 가르쳤는데 다음번에는 이런 건 이렇게 저런 건 저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나만의 노하우가 담긴 교과노트를 만든다면 나는 좀 더 나은 수업을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교단일기를 쓰면서 아이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그 추억을 기록할 것이다.
10년 뒤, 나의 나이는 32살이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30살 즈음에 결혼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결혼은 역시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을 했을것이라는 추측을 하기가 힘들다.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 전의 교사생활과는 아이들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더 애틋해지고, 품을 수 있는 마음이 넓어 질 것이다. 우선, 10년 뒤 나는 대학원을 졸업했을 것이다. 2학년 때, 교육철학을 공부하면서 한 나라의 교육과정과 교과내용, 그리고 수업하는 방식등은 교육철학의 가닥에 의애서 좌우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 한사람 혼자의 힘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철학을 송두리째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현재 우리의 교육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조금 더 배우고 익혀서 좀 더 행복한 교육을 만들고 싶다. 만약, 대학원을 다니고 공부하면서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좀 더 좋은 교육과정을 시행하는 나라로 유학을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20년 뒤, 이제 두 갈래의 삶을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반다이크의 '무명교사 예찬론'의 첫 구절처럼.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드는 이름 높은 교육자가 되어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무명의 교사가 되어 있을 것인가. 어떤 것이 더 가치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나는 여전히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고뇌하는 교육자 일 것이며, 사소하지만 더욱이 중요한 '오늘'을 감사하게 사는 무명교사이기도 할 것이다. 두 가지 갈래 길은 사실은 합하여 갈 수 없는 전혀 다른 삶이 아니라는 말이다.
30년 뒤, 나는 이제 베테랑 교사이다. 교과 노트는 빛이 바래서 누렇게 되었지만 해마다 늘어나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좀 더 알찬 내용과 다른 잉크색들이 훈장처럼 줄을 이룰것이다. 교단노트는 이미 수십여 권. 아이들과의 추억이 담긴 이 노트를 책으로 낼 것이다. 좀 더 이를수도 좀 더딜수도 있지만, 나와 아이들과의 추억을 비단 나만의 추억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면 아이였을 때 하는 생각과 행동들에 대해 당위성을 붙여서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시간여행을 하게 해 주고 싶다.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아이들,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아이들, 그리고 소중한 자기자신. 아이들을 모래 한 줌이라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반은 아이들과 보내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인생의 반은 결정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내가 생각지 못한 일로 인해 교편을 잡다가 놓아버리는 일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비전을 세우면서 노련미가 느껴지는 중견 교사의 내 모습을 그려보고 다시 돌아왔다. 내 인생에 정점을 찍고 내려 오는 길은 아이들이 없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순간 순간 힘들고 어렵더라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도 그것은 다 과정일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마지막 숨을 쉬는 그 날까지 나는 그 과정을 거칠 것이다. 끝나지 않을 내일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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