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인 친동생이 고등학교 1학년 말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인 2년동안 꼬박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학교에 다니느니 차라리 죽고싶다"라는 말을 2년동안 반복했습니다. 동생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모두 힘들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경험이나 생각을 들어보고, 대안학교를 보내도 되는지, 혹은 어느 대안학교가 동생이 들어갈만 곳인지를 알아보느라 바쁜 2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지금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원래다니던 졸업만을 기다리며 학교생활을 "참아내며"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동생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동생도 힘들었지만, 보고있는 가족과 저는 더 힘들었었고, 지금도 제도권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수동적으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동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동생은 결과적으로는 대안학교를 가지 못했지만, 동생 일로 인해서 저는 “대안학교”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또한 동생이 한참 힘들어하던 초기에, 저는 학교에서 2학년 때 선택과목으로 "대안학교의 이해"를 선택해서 들었습니다. 그 수업은 주로 화면에 띄워지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며 어떤 수업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었습니다. 제가 그 수업을 들으면서 놀랐던 것은 화면에 보여지는 학생들의 표정이 집에서 항상 보던 동생의 표정과 너무도 달랐단 것입니다. 두 학교 학생들 모두 “배우는 입장”이라는 것만 같고, 모든 것이 달라보였습니다. 대안학교의 학생들은 어느 하나 배움을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과장을 조금 보태면 머릿속에서 느낌표가 짠 하고 생겼습니다. 아 ‘나는 학생들이 행복하게 무엇인가를 배우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싶어하는 선생님이 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또한 일반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라도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며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행복일테구요. 하지만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여러 개의 학원을 다니고, 선행학습이 당연한 “제도권”안에서 교사의 역할을 하며 학생들이 ‘진심으로’ 배움을 행복해하는 일을 보는 것은 아무래도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울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안학교라는 곳에 마음이 가게 되었습니다.
대안학교 영상들을 보며 보낸 한 학기 수업을 듣고 또한 놀란 것은 교사들의 태도에 놀랐습니다. 솔직히 지금의 교사분들은(안 그러신 분들도 많겠지만)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수업과 학생이 주된 관심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직업”의 하나로 교사의 직무를 수행하고 계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영상에서 접한 선생님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말그대로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교대 입학 후 계속 생각해오던 ‘“선생님”과 “스승”의 차이는 도대체 뭔가?’ 라는 생각에 답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달리 스승이란 배움과 결부시켜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타 다른 사람과 저의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만, 그 영상에서 보인 대안학교 교사분들은 “좋은 삶의 태도”를 학생들에게 말해주신것 뿐만이 아니라 스스로 수업에 대해 아이들을 접하면서, 그리고 수업준비를 하면서 “보여” 주시고 있었습니다. 학생들 개개인에 대해 “선생과 제자”로서의 태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으로의 대면을 통해 학생들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영상을 통해 접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강의 후 꽤나 많은 학생들이 대안학교에 재학중이라는 것은 기존 교육체제에 불만을 갖고 적응을 못하는 학생들이 제 동생뿐만 아니라 꽤 많다는 반증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필요로 하고, 제가 말 뿐만이 아닌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생각만으로도 설렙니다. 제가 지금 쓰려는 5년, 10년, 20년, 30년 비전은 제 완벽한 비전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20대의 한 시점에서만 쓰는 대안학교 교사로서의 소명과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초안을 삼아 실제로 직접 일반학교와 대안학교 생활을 해보면서 비전을 계속 수정해 나가 원래 ‘목표했던’ 도움을 ‘나를 필요로하는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앞문장에서 언급했던 나를 필요로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실제 대안학교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것’과 ‘대안학교 경영과 확대’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5년 후
우선은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발령받은 일반학교에서 재직을 하고 있을것입니다. ‘우선은’이라고 앞 문장에 썼던 것은 일반학교 생활에 소홀히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도권 안의 일반학교에서 학생들이 어떤 점을 힘들어하는지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실제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문제점에 대한 관점들을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생각해보며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눌 것입니다. 제도권 안에서 줄 수 있는 대안은 그리 많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교장선생님과 동료 교사의 눈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그런 상담을 하며 경력을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10년 후
딱 10년째 되는 해에 대안학교를 가고 싶습니다. 앞서 “5년후” 비전에서 쓴 것과 더불어 대안학교는 경력이 부족하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하신 대안학교 교수님의 말처럼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동안의 소양을 쌓은 뒤, 대안학교에서 생활할 것입니다. 일반학교에서 ‘상담’에 대한 경력을 쌓고, 이제는 대안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실질적인 이야기를 듣는것에 주력하여 이제는 정말 실천해봄직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또한 대안학교에서 심리치료 프로그램 같은 수업을 개설하자고 건의하여 제도권에서 상처받고 온 아이들을 최대한 상처가 잘 아물 수 있고, 또한 대안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대안학교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습니다.
20년 후
경력이 오래된 선생님들과, 투자자들을 모아 큰 경제력이 없이도(대안학교에 입학하고 생활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경제력을 요구합니다.) 들어올 수 있는 대안학교 설립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대안학교의 이해’강의를 들을 때 그 교수님께서는 ‘녹색대학’의 설립에 자신도 도움을 주었다고 설명하셨는데 저도 그런 학교를 만드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실제적으로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더욱 더 맞는 프로그램과 학교 운영체제, 그리고 학생들과의 더 이상적인 관계 형성에 대해 배우는 시기가 되어 훗날 목표로 하는 ‘학생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이상에 가까운’ 학교 설립에 참고할 것입니다.
30년 후
일본의 키노쿠니 학교같이 학생들이 실제로 배움을 받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학교를 목표로 삼아 실제 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 10년 전 밑그림 그린 대안학교를 설계도 삼아 실제적인 대안학교 설립에 힘을 쓰고 싶습니다. 제가 목표로 삼는 학교는 많은 대안학교가 그렇듯 ‘학부모-학생-선생님-지역공동체’ 모두가 학교의 주체가 되는 그런 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 또한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소규모 대안학교 시스템을 전국 곳곳에 알리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동생이 들어갈 만한 대안학교를 알아봤을 때, 여러가지의 ‘특성화’된 대안학교의 위치는 지역적으로 각각 하나뿐이거나 멀리 떨어져있어 ‘특성화된’ 대안학교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부득이하게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런 단점을 보완하고자 시스템 자체가 지금보다 더욱 소규모화되면 여러 지역에 설립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맺음말
제가 원하는 대안학교도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실제로는 언제나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겠지요. 일반학교에서 느끼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떻게 보면 제 꿈인 대안학교는 제가 충분히 겪어보지 않아서 모두가 행복해보이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대안학교란 학생과 교사 모두가 더 행복한 학교를 만들려는 노력이 실천으로 되었다는 것, 꿈이 꿈으로만 끝나지 않은 실체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매력을 느끼고, 제가 느낀 그 매력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대안학교 교사, 대안학교 경영자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