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선언

미술교육과 하늘빛

미래 교육 2010. 5. 30. 16:01

  나는 어렸을 적부터 교사가 ‘장래희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교사라는 직업도 ‘가르치는 사람’으로 인식했을 뿐, 별다른 생각이나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하게 교대에 입학한 것 같다. 사실 마땅히 잘하는 것도 없고, 정확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지 않았던 나의 나쁜 습성이 그 선택을 부추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스물셋에 입학 후 ‘이게 또 나에게 안 맞으면 어쩌지’ 조바심을 내며 한두달을 보냈다. 그러다 같은 과 선배의 권유로 나무네 공부방활동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도 ‘싫다고 확실하게 거절을 못해서’였다.

 

  게으른 내게 있어 부지런함을 요하는 공부방 활동이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처음엔 수업시간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다. 아이들은 천방지축 뛰어다녔고 너무 솔직했다. ‘선생님, 오늘은 화장이 진하네요?’ ‘목소리가 굵어서 남자같아요’ 아이들의 짧은 한마디에도 소심한 나는 토라졌다. 아 이 아이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학교의 잘 짜여진 정규수업에만 익숙했던 나는 공부방의 아이들을 내가 생각하는 틀 안에 가두려고만 했다. 나는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길 바랐다. 때문에 아이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지나고, 아이들끼리 싸우는 것에, 혹은 내가 아이들과 싸우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공부방에 나가는 것이 여전히 귀찮았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대화를 틀 수 있어서 좋았다. 많이 부딪치고 겪으면서 내 자신도 아이 같아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면 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사소한 진리를 나는 왜 몰랐을까.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은근한 강요와 억지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관심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공부방이라는 공간에 와서 편안함을 느끼지는 못할망정, 나로 인해 얼마나 더 답답했을지...... 세월이 흘러 3학년인 지금, 공부방은 없어졌지만, 다시 공부방 동아리의 부회장을 맡아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아이들과의 거리가 좁혀지게 된 것도 내겐 큰 수확이다.

 

  우리가 맡아야 할 아이들은 우리가 그래왔듯 12년의 세월을 학교에서 보낸다. 우리는 아이들의 소중한 인생을 6년간이나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책임감이나 소명의식이 없는 교사 밑에서 답답함을 토로한 적이 많았던 우리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진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나의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은 아이들이 마음대로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이 먼저 떳떳한 어른이 되어야한다. 사회의 불편한 진실, 답답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5년 뒤의 나는 아마 전북 어느 곳에서 작은 시골학교 교사가 되어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일들이 여럿 있겠지만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될 것이다. 아이들이 경쟁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강박관념이 없어도 되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 나의 반은 교사로서의 권위를 강요하지 않는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의 교실이 될 것이다. 나의 제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소신있고 올곧은 아이들이다. 그들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다. 또한 나는 아직 젊어서 체력도 왕성하니, 방학 때면 학부모님들 농사일도 도와드리고, 아이들과 함께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

 

  10년 뒤의 나는 교직생활을 하는 중에 대학원을 다니며 미술교육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난 전공인 미술교육에 흥미가 있다. 그림은 다양한 메시지를 품고 있어 알면 알수록 흥미롭다. 아직 현장에서 예체능 과목은 홀대받고 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과목들임을 나는 확신한다. 영어와 수학은 번역기나 계산기 같은 기계가 대신해줄 수 있지만 예체능은 영원히 우리의 몫일 수밖에 없다. 즉,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선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들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그저 관련 서적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만,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 제자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싶다. 그 때 쯤이면 한 아이의 엄마로서 단란한 가정도 꾸리고 있을 것이다.

 

  20년 후의 나는 제자들을 데리고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니고 싶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우리의 발칙한 여행담을 담은 에세이를 발간할 것이다. 또한 미술교육에 관한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홈페이지도 만들어 현직교사들과의 교류도 활발할 것이다. 아이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낄 신입교사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나 스스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30년 후의 나는 여전히 교직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을 것이다. 가끔 제자들의 결혼 소식을 듣고 흡족해하겠지. 나는 여전히 수더분한 할머니같은 편안한 선생님이길 바란다.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교사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는, 비록 육체적으로 늙었지만 여전히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쉼없이 도전하는 날을 세운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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