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저는 ‘커서 뭐가 돼야겠다.’ 라는 그런 거창한 꿈은 없었습니다. 다만, 어릴 때 말을 잘해서 나중에 크면 변호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 장래희망을 쓰는 일이 있으면 큰 고민 없이 변호사를 써넣곤 했었습니다. 학교는 그냥 다녀야겠기에 다닐 뿐이지, 장래희망이나 비전 같은 것에는 어떤 고민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이제 뭘 해야 되나?’ 라는 생각을 가진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진학상담을 할 때, 담임선생님께서 ‘진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싶은 게 뭔가, 꿈이 뭔가.’ 라는 질문을 하셨을 때, 대뜸 했던 말이 “저는 뭐 딱히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좀 소박하긴 하지만 그냥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선 안정된 직장을 다니면서 기본적으로 소득이 웬만큼 있어야 할 텐데 그렇게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를 가도 뭘 해도 상관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저희 집안이 전형적인 가부장적 집안이라 아버지의 권위 아래 어머니와 저를 포함한 형제들이 억눌리고 복종하는 것을 보고 경험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이 제가 사춘기를 경험할 때인데, 이런 아버지와 마찰이 자주 생겨 갈등이 꽤 많았던 것이 이유였습니다. 꽤 오랜 시간 고민해왔던 일에 대해 저는 정말 진지하고 솔직하게 말했지만 결과는 담임선생님이 주시는 매를 달게 맞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맞으면서도 참 억울했습니다. 선생님이 물어 보신 질문에 대해 아주 진지하면서도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 건데 아마도 선생님은 제가 장난으로 대답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화가 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이후로 저는 다시 꿈과 장래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뭐 아무렴 어때? 일단 수능을 보고 점수 맞춰 대충 가서 졸업하고 회사 들어가면 되지. 다들 그렇게 산다는데․․․ ․․․.’ 그냥 그렇게 안일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게 참 아깝고 부끄럽습니다. 이과였기 때문에 대학은 과를 공대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한 학기 다니면서 재미도 흥미도 없었습니다. 물론 대학을 재미로 다니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지만 수업이 너무나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냥 고3 때 수능공부가 더 재밌겠다고 생각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재수를 하고 삼수까지 하게 됐습니다. 재수 땐, 일단 서울로 가야 겠다 라는 생각에 시작했지만 막상 가서도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한 달도 채 안다니고 자퇴를 해버렸습니다. 아버지와 약간의? 다툼 끝에 다시 수능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재수학원 생활에 빠져 버렸습니다. 친한 친구들이 있어서인지, 그냥 계속 이렇게 살았으면 했던 아주 철없던 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삼수의 결과는 재수 때보다도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낙담도 많이 했지만,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다 군대를 갔다 오자고 생각했습니다. 2년 2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나를 돌아보고 정말 뭘 하고 싶은지, 무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오자고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저만의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일상에 치여서 나가면 뭘하지? 하고 생각했던 게 전역을 어느덧, 세 달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해답도 찾지 못하고 전역을 해서 다시 수능 공부를 하게 됐고 교대에 오게 됐습니다. 일단은 안정적이고 괜찮은 직업이라는 생각에 선택을 한 것이었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더 이상의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학교를 다닐 때, 처음으로 수업이 그리고 그 내용이 정말 재밌었습니다. 또 처음 실습을 나갔을 때, 저 자신도 놀랄 만큼 아이들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내가 갈 길은 여기였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주 오래 걸려 이렇게 돌아서 온 이 길이 제가 가야할 길이라는 데에는 조금의 의심도 들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만 일찍 왔다면 인생을 낭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1학년 첫 실습을 나가던 중에 아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저처럼 뭘 할지, 뭘 하고 싶은지 하는 꿈과 목표가 없다면 저 같은 아이들이 대량으로 양산되는 비극이 생길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교사가 됐을 때,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저와 함께 하는 동안 꿈에 대한 목표와 계획을 세우게 도와주고 지도해야겠다는 교사로서의 비전을 세우게 됐습니다.
그에 따른 첫 번째 목표는 아이들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이 제대로 되어 있도록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수준과 능력에 대해서 한정하고 단정해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저는 미래에 과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했을 때, 그건 공부를 잘해야 되는데 너는 공부를 못하니 다른 꿈을 찾는게 좋겠다 라는 말을 한다면 그건 교사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행동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교사라 할지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깊이 새기고 그것을 어떻게 개발해 주는 가는 교사의 몫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저 개인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사가 된 후에도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싶은 것이 이런 부분입니다. 아이들의 특기와 관심분야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하고 그러한 점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도 방법에 대한 노력과 연구가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도 필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아이의 꿈이 과학자라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기본적인 학습 방법과 진행 과정에 대한 여러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목표는 아마도 정년퇴직을 한 후가 되겠지만, 현직에 있는 교사들이 그런 지도를 하는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에 도움이 되는 책을 써보는 것입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런 책을 남겨놓는다면 제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름 원대한 목표를 세워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제 비전과 그에 따른 목표를 간략하게 써보았습니다. 다소 긴 서두는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모든 일에는 분명 이유가 있듯이, 제가 교대에 오게 되고, 교사가 되는 것 또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하늘이 “이게 네가 갈 길이고 할 일이다.” 라고 정해준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먼 훗날, 제 손을 거쳐 간 아이들 중에 “제가 선생님 덕분에 제 꿈을 이뤘습니다.” 라고 해주는 학생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럼 나는 교사로서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며, 실현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