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와서 처음에 신입생이 되었을 때 선배*동기들과 모이는 자리가 많이 있었다. 그럴 때 선배들이 꼭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왜 우리학교 왔어? 어렸을 때부터 꿈이 선생님이었어? 왜 교사가 하고 싶어?”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항상 머릿속이 멍해져 있다.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는 다른 꿈이 있었다. 그런데 수능을 여러 번 보면서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그냥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이 학교에 오게 되었다. 나의 1학년 생활은 암울 그 자체였다. 학교생활과 공부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번 다시 공부를 해볼까 고민하기도 했었고 그러다 보니 매일 친구들과 놀기가 다반사였고 하는 일 없이 흥청망청 지내기가 일쑤 였 다. 특히 내가 이 학교를 오기 싫어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 싫다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싫어하는 것이 징징대고 떼쓰는 아이였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엄하셨기 때문에 안되는일은 아무리 때를 써도 절대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밑에 동생이 둘이나 있어서 맏언니로써 항상 동생에게 양보를 해야 했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진 나에게 공공장소에서 울며 떼쓰는 아이를 보면 정말 진절머리 날 정도로 싫었다. 재수학원 다닐 때도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교대는 절대 안 간다고 교대를 왜가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아이들이 너무 싫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교사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교대에 가기 싫은 또 다른 이유는 선생님이 싫어서 이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선생님은 항상 좋지 않은 이미지였다. 뇌물을 받는다거나, 극단적인 처벌을 하거나,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오고 선생님께 선물 공세를 하는 정도에 따라서 아이들을 차별하는 그런 선생님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내가 학교 다닐 때 항상 가지고 있었던 신념이 하나 있었다. “절대 선생님과 친해지지 않으리, 선생님과 멀어지자.”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고 웃긴 생각 인 것 같다. 선생님들이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잘못된 일반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때 일부러 반에서 말썽쟁이인 아이들과 어울려서 선생님을 힘들게 하고 못살게 굴었다. 나도 참 이상한 아이였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에 대한 반발심으로 가득 찬 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과 절대 엮이지 않을 것이라고 죽는 날까지 확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학교에 오게 된 것이다. 나는 패닉 상태가 되었다. 부모님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원서를 쓴 후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4일 동안 방에서 나가지 않고 울었다. 좀 극단적이기는 했지만 재수의 실패와 원하지 않았던 직업에 대한 좌절로 나에 대한 증오가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하나 있었다. 점점 학년 이 올라가면서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됨에 따라서 아이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참 신기했다. 예전 같았으면 몸서리를 칠 아이들이, 그냥 지나가는 아이들이,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가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교생실습이 참 큰 것 같다. 선배들이 말했었다. 교육 실습을 갔다 온 후 자신이 이 학교에 남을지 떠날 지가 확실히 결정이 된다고 말이다. 교생 실습을 나갔는데 우리 반에 왕따인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공부시간에는 칼을 가지고 놀았으며 쉬는 시간에는 혼자 노는 아이였다. 처음에는 칼 심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위험한 칼을 손목에 그으는 시늉을 하면서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이 무서웠다. 그래서 내가 “ 정인야 이거 위험 한 거야. 가지고 놀면 안 되요.” 라고 했더니 정인이가 그랬다 “선생님도 해보실래요? 이거 정말 재미있어요.” 하면서 나의 손목을 칼로 긋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나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정인이가 멈칫하더니 그러는 것이다. “선생님 장난이에요. 왜 그렇게 긴장하세요?” 라며 크게 웃는 것이다. “선생님 안 죽어요.” 하면서 말이다.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정인아 이건 위험한 물건이야. 네가 이걸로 노는 것은 나쁘진 않지만 선생님은 정인이가 칼이랑 노는 것 보다는 친구들이랑 노는 모습이 더 보고 싶은데? 아마 칼 가지고 혼자 노는 것보다는 친구들이랑 노는 게 훨씬 재미있을걸? 선생님도 칼이랑 혼자 노는 것보다는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재미나거든?” 하면서 웃었다. 그 다음날부터 정인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칼이랑 대화를 하던 정인이는 친구들과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칼이랑 노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교생실습 시간이 끝나는 마지막 날 아이들이 음악시간에 노래를 하고 댄스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항상 혼자 부끄럼 타던 정인이가 아이들의 맨 앞에 나가서 아이들이랑 어울려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말 신기 했다. 나의 말 한마디가 일주일 만에 아이 한 명을 이렇게 달라지게 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나의 원래 꿈은 의사였다. 내가 의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내 존재 자체로서 다른 사람에게 정말 큰 힘이 되고 싶었고 나의 의술을 통해서 아픈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물리적인 아픔을 치료한다면 교사는 마음의 아픔을 치료하는 마음의 의사인 것 같다. 가족에서 폭행을 당하거나 아니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다거나 이성 친구를 좋아하는 고민이 있다거나 하는 이런 모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바로 교사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후부터 아이들이 모두 예뻐 보이고 나의 존재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서 나에게 인식되었다. 그래서 “나는 꼭 교사가 되어서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주고 바른길로 나가도록 인도를 해 야해” 라는 신념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교사는 바로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는 교사” 이다. 물론 가르치는 능력은 기본이고 말이다. 지식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마음으로 대하고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는 전인격적인 교사가 될 것이다. 중고등학교 선생님과 초등학교 선생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중고등학교 선생님은 과목별로 선생님이 다르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은 전과목을 한 명의 선생님이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만큼 초등학교 교사에게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소중하고 방대하다. 정부 차원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한 명의 선생님에게 할당하는 데는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에는 아이들과 면대 면으로 마음으로 교류하는 시간을 늘리라는 의도 인 것 같다. 자신의 전문 과목만을 수업하고 홀연히 떠나버리는 교사가 아니라 하루 종일 아이들과 몸을 부대끼고 함께하며 아이들의 모든 면을 지도해주고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교사가 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면 주기적으로 아이들 개인의 소소한 말을 들을 수 있는 상담 시간을 가지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학교에서 받은 상담은 고등학교 때 대학 입시를 위한 진학 상담을 받은 것이 전부이다. 나는 초등학교에서도 주기적인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은 아직 인격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미성숙 되었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어려움과 고민이 많을 것이다. 또한 맞벌이하는 부모가 많아져서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고 어려운 일을 도와줄 사람이 부족할 것이다. 나는 그래서 매주 돌아가면서 한 명씩 상담을 해 주고 싶다. 그래서 권위적인 선생님이 아니라 엄마 아빠처럼 언제든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움을 얻을 수 있고 고민 있을 때 찾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상담, 미술치료, 음악 치료 등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대학원에 갈 것이다. 거기에서 공부하여 정말 전문적으로 아이들의 고민을 효과적으로 상담해 주고 싶다.
5년 후의 나는 아마도 29살 이니까 일단 초임교사로 발령이 나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고사리 같은 아이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재미있고 알찬 지도를 하려고 밤낮으로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취미활동을 많이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교사는 전과목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두루 섭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올린도 배우고 벨리 댄스도 배우고 마술도 배우고 여러 가지 동호회 활동도 많이 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상담 공부에 전념 할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학원에 가서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 전문적인 상담에 관해서 공부하고 싶다.
10년 후 나는 안정된 교직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교사 집단에서 동료교사들과 협력하는 방법도 배울 것이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방법과 전문적 지식을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는 방법에 익숙해 질 것이다. 나는 이쯤 되면 수석교사 제도에 도전해 보고 싶기도 한다. 열심히 나만의 교육방법과 내용을 연구하여 적응 안된 신임교사에게 도움이 되거나, 효과적인 수업으로 고민 하는 선생님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20년 후 나는 학교를 휴직하고 외국에 있는 의학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 나의 오랜 세월 꿈이었던 의사를 하고 싶기도 하고 마음의 병과 몸의 병을 동시에 치료하는 멀티 교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응급 상황이 일어났을 때 나에게 의학적인 전문 지식이 있다면 아이들을 위험한 상황에 있을떄 훨씬 신속하게 대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외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교직에 복귀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도움에 되는 선생님이 될 것이다.
30년 후 나는 교직을 그만 둘 것이다
나의 교육자로서 역할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세상에 교육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해외로 교육 겸 의료 봉사를 떠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문맹으로 고민하는 아이들의 정신적 위로가 되고 싶다. 그리고 또한 의학이 발달 되지 않아서 인간의 기본적인 생명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여 공부할 기회 조차 갖지 못하는 아픈 아이들을 도울 것이다. 나의 정신적 모토인 한비야 처럼 여기저기 오지를 다니면서 문명에 뒤떨어진 아이들의 정신을 계몽하고 그들의 아픈 몸을 치유해 질 것이다. 솔직히 누가 보면 일장춘몽이라는 소리를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지금 노력하고 있기에 나는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에프런 페나플로리다 같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등불이 되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교직이란 나의 뜨거운 열정과 도전을 닮을 수 있는 그릇이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통하여 무지하고 나태한 나 자신을 변화 시키고 더불어 타인을 변화 시킬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변화된 학생이 모여서 이 사회가 변화 될 것이고 나아가서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가져 올 것이라고 믿는다. 삶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정신을 놓고 무엇인가에 몰두 해 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인생에 있어서 그 대상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의 모든 아픈 아이들 그리고 무지한 아이들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